"낙태 여성 처벌, 여성의 자기결정권·건강권·생명권·재생산권 등 침해"
"낙태 형사처벌 않는 것, 바로 낙태 합법화 의미라 보기 어려워...낙태죄 조항은 생산적 논의 가로막아"
헌재, 낙태 관련 현행법인 형법 269·270조 관련 위헌 여부 선고 예정

이화여대 기독교학 학사, 동(同) 대학원 여성학 석사를 거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이화여대 기독교학 학사, 동(同) 대학원 여성학 석사를 거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목적으로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으로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공식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인권위는 17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과 생명권, 재생산권 등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민주 국가에서 임신을 국가가 강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임신의 중단, 즉 낙태 역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며 “낙태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 것이 바로 낙태의 합법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회적 논의를 통해 조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음에도 낙태죄 조항은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법은 예외 사유를 두지 않고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고,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도 매우 제한적”이라면서 “이로 인해 여성이 낙태를 선택할 경우 불법 수술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의사에게 수술을 받더라도 불법이기 때문에 안전성을 보장받거나 요구할 수 없으며, 수술 후 부작용이 발생하여도 책임을 물을 수 없어서 여성의 건강권, 나아가 생명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낙태죄는 모든 커플과 개인이 자신들의 자녀 수, 출산 간격과 시기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을 얻을 수 있는 재생산권을 침해한다”고도 덧붙였다.

헌재는 오는 4월 11일 형법상 낙태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선고할 예정이다. 헌재가 위헌 여부를 따지는 사건은 2017년 2월 산부인과 의사 정모 씨가 낙태를 시술한 뒤 ‘(낙태가) 위헌이라는 점을 확인해달라'고 청구한 헌법소원에 대한 것이다.

청구인 측에서는 “자기낙태죄(헌법 제269조 제1항) 조항은 여성이 임신·출산을 할 것인지 여부와 그 시기 등을 결정할 자유를 제한하고 ‘자기운명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지만, 반면 낙태죄를 처벌하는 것이 합헌이라 주장하는 측은 “태아는 어머니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격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 태아에게도 생명권의 주체성이 부여된다”면서 “태아의 생명권 보호 정도는 그 성장단계나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왔는지(출산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태아의 생명보호는 공익으로, 낙태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낙태와 관련한 현행법은 형법 269조와 270조다. 1953년에 제정된 두 법률은 낙태한 여성(1년 이하 또는 벌금 200만 원 이하)과 이를 도운 의사(2년 이하)를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인권위는 현행 낙태죄가 낙태를 막는 수단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서 임신 경험 여성의 19.9%가 학업이나 직장 등으로 낙태했다. 낙태죄로 인해 낙태율이 줄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낙태죄는 상대 남성이 여성에게 관계 유지나 금전을 요구하며 이를 거절할 경우 낙태 사실을 고발하겠다는 협박이나 보복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라고 했다.

인권위의 이같은 공식입장 표명은 처음이다. 헌재는 2012년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들어온 위헌시비에 4:4 의견으로 합헌을 결정한 바 있다. 인권위는 2012년에는 의견을 내지 않았었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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