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14년간 연임에 성공한 차베스 집권 아래 무상의료·무상교육·국유화 실시
마약과도 같은 사회주의 정책, 처음엔 황홀해도 끝내는 파멸과 가난에 직면
차베스 "부자인 베네수엘라가 사악한 자본주의와 악덕 기업인의 도적질로 가난해져"
文 대통령의 '경제적 불평등 가장 극심', '대기업에 성장 과실 집중' 주장...다를 바가 뭔가?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차베스가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해가 1999년이다. 1999년을 기점으로 삼으면 2019년이 만 20년 되는 해이다. 반(反)미, 반(反)서방, 석유자원 국유화, 무상복지 등 사회주의 실험의 대가(代價)는 처참한 경제실패이다. ‘베네수엘라의 눈물’인 것이다.

산유국의 정전(停電)이 앗아간 생명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회생불능으로 보인다. 최근 정전(停電)으로 인해 수도 카라카스에선 지하철이 운행을 멈췄고, 신호등조차 들어오지 않는 도로에는 차들이 뒤엉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교통이 막힌 시민들은 몇 시간씩 걸어서 출퇴근을 해야 한다. 정전으로 가장 치명적 피해를 입은 곳은 병원이다. 중환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의사들이 수술은커녕 출근조차 제대로 할 수 없고, 수술 등에 필요한 의료장비들이 정전으로 멈춰 섰다. 정전으로 최소 15명의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확인된 사망자 중 13명은 신장병을 앓던 사람들이다. 정전으로 투석기가 멈추면서 투석을 받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정전 사태에 대해 외신들은 “정부·공기업이 전력 시스템을 제대로 유지·관리하지 않은 탓”이라고 했다. 대정전의 직접적인 원인은 베네수엘라 전체 전력의 3분의 2를 담당하는 '엘 구리' 수력발전소의 고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리·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가 누적돼 오다 설비가 통째로 고장 난 것이다. 정전이 되면서 다른 발전소도 순차적으로 멈추었다. 전체 전력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화력발전소도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마두로 정권은 정전 사태를 ‘미국의 사이버 공격과 야권의 사보타주’로 그 원인을 돌리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베네수엘라 국민의 11%인 340만명이 자신의 모국을 탈출했다.

차베스 집권과 무차별적 무상복지

차베스는 대중의 마음을 읽고 대중에 다가서는 기술을 가졌다. 1999년 그의 선거 구호는 ‘변화(change)와 희망(hope)’이다. 그는 선거과정에서 “경제적 불평등의 책임을 정부부패와 경제 엘리트 탐욕”으로 돌렸다. 실제로 그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대중의 가슴에 불을 지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는 “베네수엘라는 원래 부자 나라였는데, 사악한 자본주의와 악덕 기업인의 도적질로 가난해졌다” (Venezuela is nation of great wealth, but it’s being stolen from its citizens by the evil capitalists and evil corporations)고 선동했다. 빈곤층의 마음을 얻은 뒤, ‘사회주의 낙원’(개혁)을 약속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차베스는 1999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4차례나 당선해 14년간 집권하면서 남미 좌파연대의 맹주로 군림했다. 차베스는 생전에 중남미의 여러 혁명 지도자들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다. 차베스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남미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1783~1830)다. 차베스는 그를 존경한 나머지 나라 이름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꾸고 그의 정신을 계승한 볼리바르주의를 국정 지표로 삼았다. 볼리바르주의는 남미의 ‘경제적·정치적 자주 추구’로 요약된다. 자연스럽게 반(反)미·반(反)서방으로 이어진다. 차베스는 쿠바 사회주의 혁명가 ‘카스트로’를 멘토로 삼았다. 무상의료·무상교육의 아이디어도 카스트로에게 배운 것이다. 그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해 얻은 수입을 포퓰리즘 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차베스는 석유가격을 2중으로 차등화해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에콰도르 등 이웃 좌파국가에게는 싼값에 공급해 좌파연대를 유지했다.

차베스는 석유를 순차적으로 국유화했다. “민간기업보다 경영을 더 잘할 수 있으며 이익을 대중과 공유하겠다”는 선전이 주효했다. 석유 및 가스 ‘다국적 기업’에게는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해 그들을 축출했다. 사회주의는 처음에는 ‘국유화할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착취 없고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을 건설한다는 사회주의 구호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국유화할 그 무엇이 없으면’ 경제는 거기에서 멈춘다. 외국자본을 내 쫓고 민간석유회사를 국유화해 경쟁이 없어지면서 국영석유회사의 효율은 급전직하했다.

오일 달러를 복지에 쏟아 부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산업진흥과 장기 투자 없이 그리고 국유화와 무상분배 정책으로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서 경제는 침몰했다. 미국을 악(惡)으로 보는 반미(反美)주의 정치구호는 오히려 식량과 소비재의 부족을 심화시켜 살인적인 인플레를 유발했다.

유가 폭락과 ‘마두로 다이어트’

차베스는 대통령에 재임 중 암에 걸린다. 그는 암에 걸린 것을 숨기고 대통령 4선에 나섰으며, 국민들은 ‘그가 암에 걸린 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지지했다. 유권자와 후보자 모두 극심한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것이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취임식을 무기 연기한 채 2013년 사망한다. 그리고 차베스가 지명한 부통령 마두라가 집권한다. 하지만 마두라는 차베스 같은 카리스마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도 없었다.

차베스의 무상복지 세례(洗禮)는 유가 급등과 무관하지 않다. <그림-1>은 서부 텍사스산(産) 원유가격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원유가격은 2004년부터 급격히 상승한다. 차베스가 무차별적으로 무상복지 정책을 펼친 것도 이 때부터이다. 고공행진을 하던 원유가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 12월에 31달러로 급전직하 하지만 곧 회복된다. 마두로가 대통령직을 승계하고서 한 2년 정도 유가는 높은 수준에서 유지됐지만 2016년 1월에는 30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친다. 석유 이외 산업기반이 전무한 베네수엘라에게 재앙이 닥친 것이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유가가 하락할 경우 경제를 지탱할 수 없게 됐고, 당연히 무상복지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국민들의 삶은 비참해졌다. 2016년 한 조사에 의하면 베네수엘라 성인의 75%가 19파운드 체중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마두라 다이어트’로 명명되어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림-1> 서부 텍사스산(産) 원유(WTI) 가격 추이 (연합뉴스 제공)

베네수엘라의 교훈과 한국경제에의 시사점

나라가 한번 ‘사회주의 길’로 들어서면 다시 빠져 나오기가 매우 힘들다. 정신 차라고 나오면 될 것 같지만 ‘사회주의의 진탕’은 생각보다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사회주의에 물들면 ‘국가에의 의존’이 타성화되기 때문이다. 무상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을 ‘노동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사회주의는 마약(drug)과 같다. 처음에는 황홀하고 행복하지만 종국에는 파멸과 가난에 이르게 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도 그 사례인 것이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한국에 주는 함의(含意) 또는 시사점은 무엇인 가. 한국과 베네수엘라를 비교하는 것이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전에 예의주시 하지 않으면 우리도 베네수엘라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어떤 나라도 사전에 망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 못 끼면 조금씩 ‘불가역적’으로 망한다.

앞에서 “차베스가 경제적 불평등의 책임을 정부부패와 경제 엘리트 탐욕으로 돌림으로써” 대중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고 기술했다.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벌어졌다.

2018년에 한국은 일인당 소득(GNI) 3만 달러를 달성했다. 2018년말 현재 ‘30-50클럽’(1인당 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에 이름을 올린 국가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와 한국” 등 총 7개국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국가는 많지만 대부분 인구가 적다.(스위스 810만명, 홍콩 720만명, 스웨덴, 957만명) 카나다, 호주,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은 경제규모는 크지만 1인당 소득이 3만달러가 안 된다. 식민지를 가진 경험이 없는 국가, 오히려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가 30-50클럽에 진입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그 자체가 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 1.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함께 이룬 경제성장의 혜택이 소수의 상위 계층과 대기업에 집중되었고 모든 국민에게 고루 돌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장기간에 걸쳐 “GDP 대비 기업 소득 비중은 경제성장률보다 계속해서 높아졌지만 가계소득 비중은 계속해서 낮아졌으며, 낙수효과는 오래 전에 끝났고, 어느덧 우리는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고 했다. ‘헬 조선’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성장했지만 불평등이 커져 ‘지옥 같은 삶’이라는 것이다. 시중의 떠도는 말과 대통령 기자회견문은 차원이 달라야 한다. 소득불평등은 이념이나 주장이 아닌 사실관계에 기초해 해석해야 한다. OECD 온라인 소득분배 통계는 세계주요국의 소득불평등 정도를 지표로 보여준다, 한국은 절대적으로 불평등 극심한 나라 아니다.

지니(gini) 계수로 측정한 불평등도를 보면, 2016년 기준으로 한국(0.295)은 프랑스(0.291)보다 높고 그리스(0.333) 미국(0.391) 보다 낮다. 최상위 20% 소득계층의 소득을 분자로 최하위 20% 소득계층의 소득을 분모로 놓고 계산한 5분위 배율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5.1, 2015)은 프랑스(4.3, 2016) 보다 높고 그리스(6.0, 2016), 미국(8.5, 2016) 보다 낮다. 전체적으로 중간 혹은 약간 평등한 쪽에 위치하고 있다.

상론할 겨를은 없지만 낙수효과는 여전히 존재하며 ‘기업이 정당한 몫 이상을 가져가거나 가계의 몫을 뺏어가지’는 않았다. 최근의 가계소득 증가속도가 감소한 것은 자영업자의 영업이익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논거가 부족한 양극화 주장은 불필요하게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무상복지를 퍼붓는다고 주장하면, 분명 과장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실질성장률을 더한 경상성장률 이상의 재정확대를 통해 복지예산을 우리 실력 이상으로 편성해 종국적으로는 미래 세대에 재정 부담을 안기고 있다는 주장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30-50’ 안착에 기여한 것은 없다. 과거 우리가 흘린 땀의 결실이다. 헬조선으로 자학(自虐)하는 나라, 충분한 논거 없이 반(反)기업 정서에 불을 지르는 나라가 3만달러 소득을 이어갈 수 있을 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부모세대 보다 못사는 첫 자식세대의 비극이 씨를 잉태하고 있지는 않는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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