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국제경쟁정책워크숍 기조강연
전날 사전배포 자료에 ‘재벌, 사회적 병리현상' 표현
비판 의식해 수위조절 "재벌은 한국경제의 소중한 자산" 강조

 

"나는 재벌을 좋아한다 (I like 'chaebol')"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2일(현지시각)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경쟁정책워크숍 기조강연에서 한 말이다. 지난 11일 기조강연 자료 내용이 미리 공개되면서 '대한민국 관료가 해외에 나가 자국 대기업을 악(惡)으로 매도한다'는 언론의 비판이 제기되자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미리 배포한 자료에 있었던 ‘재벌은 사회적 병리현상(social-ill)이다’ 같은 과격한 표현을 실제 기조강연 때는 하지 않았다. 또한 "재벌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precious) 자산으로,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 과정 및 부작용과 공정위의 출범 및 경쟁법 도입 이유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재벌 관련 얘기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수출중심 전략을 추진하면서 한정된 자원을 일부 성공적인 기업들에 분배하는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며 "이 과정에서 국내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삼성, 현대자동차등 재벌이 탄생했지만, 독과점 문제가 발생하는 등 단순하고 효율적인 전략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표현을 다소 완화했지만, 재벌에 대한 비판은 이어갔다. 그가 지적한 재벌의 문제점은 ▲독점적 지위에 따른 권력의 오남용 ▲소유지배의 괴리에 따른 오너 이익 극대화 등 2가지다. 그는 "재벌은 국내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기에 막대한 경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며 "모든 권력은 잘못 이용될 여지가 있고 이는 경제적 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 종교, 언론, 이데올로기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른바 '오너'들이 회사의 지분 일부만 소유하면서도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주주의 이익 극대화가 아닌 오너들의 이익 극대화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에는 재벌이 지분의 대부분을 보유했지만, 현재는 5% 내외에 불과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소수 주주(minority shareholder)"라며 "재벌은 순환출자 등을 이용해 기업 집단 전체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등 다른 기업이나 주주들의 이익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1980년대 이후 한국 정부의 정책이 자율·개방·경쟁으로 전환하면서 1981년 공정위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본연의 경쟁정책 뿐 아니라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까지 규율하게 된 것은 한국의 특수한 시장 상황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김 위원장은 "경쟁당국은 비즈니스 분야에서나 정부 내 다른 부처에서나 아무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는 외로운 존재"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공정위와 세르비아 경쟁당국)는 친구"라고 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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