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전문가들은 靑·與 "국가원수 모독" 운운에 '발끈'…"나도 잡아가라" "정권 말기증세"
자유한국당이 12일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현장에서 물리력 행사까지 시도하며 연설을 방해하고, 폐지된 지 30년이 넘은 '국가원수 모독죄'를 들먹인 집권여당을 겨눠 "국회 헌정사상 초유의 폭거"라고 항의했다. 상대당 교섭단체 대표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겁박한 데 대해서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까지 참전(參戰)해 "부당한 조치가 있다면 정말 단호하게 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앞서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안보·경제·민생파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시름을 생생히 전달하는 내용이었다"며 "진실의 소리는 아픈 법이라지만, 오늘 의사당에 울려퍼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고함과 야유, 발언석까지 나와 이어진 연설방해는 의회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생생한 현장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자당 의원들의 이런 행태를 저지하고 말리기는커녕 본인이 직접 나 원내대표가 연설하는 단상까지 나와 앞장서서 연설을 가로막는 모습까지 보였다"며 "지금 민주당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광경"이라고 지적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나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 중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내용은 외신의 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진 내용"이라며 "그런 소리를 듣지 않도록 대북관계와 북핵문제를 잘해야 한다는 게 연설에 담긴 뜻이자 안보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요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21대 총선) 공천 1년을 앞두고 청와대의 눈도장이 다급했던 것인지, 청와대를 향한 충성경쟁을 벌이느라고 자신들의 행태가 국민들에게 목불인견으로 비치는지 그것조차 망각한 민주당"이라고 꼬집었다.
한국당 뿐만 아니라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역시 집권여당의 제1야당 원내대표 연설 방해행위에 비판과 유감을 표명했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의 신중치 못한 발언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민주당은 집권여당으로서의 품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과도한 반응으로 교섭단체 대표의 연설을 가로막은 데 대해서도 유감"이라고 논평했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며 민평당 실세로 꼽히는 박지원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야당 원내대표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국회의장도 '비판을 들어줘야 합니다'라며 진정을 호소한다", "저도 나 원내대표의 연설에 비판적이나 듣고 있다"며 민주당에 자제를 요구했다. "민주당의 전략은 나 원내대표를 '잔 다르크'로 만들어 주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또 뒤이어 올린 글에서 "김정은 수석대변인 운운하면서 국가원수에 대한 정치 금도를 넘었다"고 나 원내대표 연설을 비난하면서도, "민주당도 몇번의 항의와 샤우팅(고함)은 할 수 있지만 제1야당 원내대표의 연설을 저지하는 것도 금도를 넘은 것"이라고 충고했다.
두 당의 대변인 논평과 달리, 바른미래당에서 소신행보로 주목받는 이언주 의원의 경우 "나 원내대표가 언급한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말은 이미 외신에서 나왔다"며 "그 말이 여당에선 듣기 싫을지 몰라도 얼마든지 비판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과거 운동권 시절에는 그렇게 마구 행동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그러는 것은 정말로 철없고 무지한 행동이며, 대한민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공화국 원리, 삼권분립 정신 등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자기들만이 정의고 자기들 듣기 싫은 말은 재갈을 물리며 독재적 행태를 서슴지 않는 모습은 용납돼선 안 된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까지 나서서 나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을 "대한민국 국가원수 모독죄에 해당한다"고 근거없이 공격하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청와대마저 이해찬 대표의 '국가원수 모독죄' 발언에 편승한 부대변인 논평을 내놓으며 나 원내대표와 한국당에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한국당은 이만희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 대표가 나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이 국가원수모독죄라 하고, 청와대마저 이에 동조한 것에 대해 실소를 금치 못한다"며 "또 다시 달은 안 보고 손가락 타령만 하며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 누구인가"라고 반격했다.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이미 30여년 전 삭제된 (국가모독죄) 조항을 되살리겠다는 것인지, 누가 군사독재적 발상과 과거 정치의식에 사로잡혀 있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의 수석대변인' 표현은 작년 9월 미국의 유력 통신사(블룸버그)에서 제목으로 삼았고 이미 국내에도 다수 보도됐다. 이 말이 전혀 근거가 없다면 아무 호응도 기대 못하고 비판만 받을텐데 왜 사용됐겠느냐"며 "북한 주민들 앞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못하고 '남쪽 대통령'이라고 한 게 누구인가", "북한 우선주의를 밀어붙여 외신조차 비판하도록 자초한 게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거듭 반문했다.
그러면서 "무엇이 망언이고 무엇이 국민의 목소리인지, 모독을 당하고 있는 게 누구인지 국민은 모두 알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당은 이양수 원내대변인 논평에서도 "오늘 본회의장의 민주당 의원 대부분은 내년 공천용 청와대 눈도장 찍기 충성경쟁 대회를 벌이는 듯 막말과 고성으로 제1야당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이유 없이 방해했다"고, "국가원수 모독죄는 없어진지 이미 오래됐는데 도대체 이해찬 대표는 지금 어느 시대를 살아가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민주당 이 대표와 본회의장에서 고성 막말을 한 의원들은 나 원내대표와 국민께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며 "이분들이 정작 윤리위에 회부돼야 할 당사자들"이라고 촉구했다.
황교안 당대표도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청년 사무처 당직자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한 뒤 기자들을 만나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연설하는데 중간에 달려들어 고함을 지르고 이야기를 못하게 하는 게 어떻게 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 본질의 모습이 아니다"며 "오히려 이런 부분에 대해 민주당이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있지도 않은 국가원수 모독죄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도 우리대로 부당한 조치가 있다면 정말 단호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우리 당 입장을 함부로 폄훼하는 건 옳지 않다"며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갈망하는 당"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여당과 청와대의 행태를 두고 전문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크게 술렁이고 있다. '민주'를 자임하면서도 '권위주의'를 고집하는 이율배반, 내로남불 식 태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행범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을 겨눠 "수석대변인이면 말이라도 잘 해야지"라며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말에 가장 기분나빠할 인물은 북한 (조선중앙)TV의 리춘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정도 말로 국회를 난장판 만든 여당 의원들, 총선 공천 앞두고 '애교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한 야당 관게자는 "제1야당 교섭단체 대표연설마저도 못 듣겠다며 거의 병적인 수준의 반응을 보이는 '파쇼'들이 뜻하지 않게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내셔널(국가적인) 이슈로 띄워줬다"며 "거기에 청와대까지 참전해 '국가원수 모독'? 한국당이 밥 한번 거하게 사야겠다"라고 조소를 보냈다.
정호성 전 한국당 수석부대변인은 "이 정권 뭔가 이상하다. 불안, 초조감이 오히려 히스테리, 폭주로 표출되는 '정권 말기 증세'를 보이는 듯하다"며 "국가원수 모독죄! 나도 잡아가라"라고 일침을 가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있지도 않은 국가원수모독죄 가지고 뭐 하자는 것이냐" "문재인 욕하면 잡아 갈 거냐" "이거 무서워서 세상 어떻게 살겠냐"는 반응이 잇따랐다. 특히 청와대가 나 원내대표에게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 사과'를 요구한 논평을 페이스북 공식계정에 게재하면서, 네티즌의 비판이 청와대로 직접 쏠리고 있다.
웹툰작가 윤서인씨는 청와대 게시물에 "이님들 미세먼지에도 이렇게 바로바로 반응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국민들은 국가원수 모독이고 뭐고 당장 다들 숨도 못 쉬고 죽겠구만"이라고 댓글을 남겼고, 300건에 가까운 공감을 얻었다.
네티즌 이모씨가 "니들은 다른 대통령 모욕 안 했어요? 벼룩도 낯짝이 있댔는데 너네 공산주의자 XX들은 대체 낯짝이란 게 얼마나 두꺼운 거예요?"라고 쏘아붙인 댓글에는 330건 이상의 공감이 달렸다. 북한 김정은의 이름과 얼굴 사진을 사용하는 네티즌은 "내 대변인 맞는데"라며 "맞는 걸 아니라고 하니 내래 좀 서운하구만 기래"라고 풍자성 댓글을 남겨 호응을 끌어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북한은 비핵화 하지도 않겠다는데 돈이나 퍼 줄 생각이나 하니까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거 아냐. 핵시설 다 폐쇄한대? 핵무기 만든거 다 없앤대냐고? 핵은 그대로 있는데 그게 평화냐?"라고 청와대를 강력히 성토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