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새 유동성 공급책 발표…각국 금리동결 행진속 추가 완화책 고심
통화정책 정상화 도중 정상기준 바뀌어…"美중립금리, 2007년 절반수준"

뒤로 ECB 본부가 보이는 프랑크푸르트 아파트 공사 현장

 

글로벌 경기에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긴축을 멈추고 통화정책 기조를 경기부양을 위한 '완화'로 되돌리고 있다.

금융위기 후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을 밟던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경제성장 전망 하락, 좀처럼 목표치에 접근하지 못하는 물가, 무역전쟁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등 산적한 악재에 직면하자 '통화정책의 뉴노멀'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7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에서 정책 금리를 '제로(0)'로 동결하면서 새로운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Ⅲ)을 도입할 계획을 발표했다.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종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완화적 정책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 배경에는 물론 유로존 경기 둔화가 자리잡고 있다.

ECB의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는 1.7%에서 1.1%로 대폭 하향 조정됐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유로존 경제에 대해 "우리는 계속되는 약세와 만연한 불확실성의 시기에 있다"고 요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가 대출프로그램을 도입키로 함으로써 주요국 중앙은행 중에서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응해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돌아선 첫 사례가 됐다고 전했다.

ECB가 통화정책 선회의 선봉에 서게 됐지만, 유로존보다 경기가 훨씬 나은 미국에서도 이미 변화는 감지됐다.

지난해까지 긴축을 주도했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연일 통화정책에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긴축 방식의 하나인 보유자산 축소도 조만간 종료한다고 예고했다.

연준은 지난 1월 연방기금 금리를 2.25∼2.50%에 동결했으며 오는 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불과 1년 전 중앙은행들이 경기 확장 또는 뚜렷한 회복세 속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대응해 돈을 풀었던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기에 바빴던 것에서 180도 달라진 것이다.

이런 변화 때문에 중앙은행들이 통화 긴축이 아니라 완화로 돌아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은행 총재는 지난 6일 성장률이 둔화하고 그에 맞춰 금리도 낮아지는 추세가 '뉴노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완화적이지도 긴축적이지도 않은 '중립금리'를 현재 연방기금 금리 상단인 2.5% 정도로 제시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5.2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상적' 통화정책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으로, 이는 이미 낮은 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추세가 장기화한 일본 경제에서 나타났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7일 낸 보고서에서 "선진국들은 매우 낮은 균형이자율이 반영구적 특성이 된 듯한 일본의 경험을 그대로 따를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를 장기간 유지하고 있지만, 물가상승률은 목표치 2% 달성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추가적인 통화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금리동결은 미국, 유럽, 일본뿐 아니라 세계 주요 선진·신흥국에서 일제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하순 이후로만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헝가리, 호주, 폴란드, 터키, 캐나다 중앙은행이 줄줄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필립 로 호주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5일 28차례 연속 동결 결정 이후 "올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시나리오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각국 중앙은행의 '비둘기파 변신'에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중앙은행들의 결정이 경제 상황 악화를 반영한 것인 데다, 통화정책 정상화의 초기에제동이 걸린 만큼 다음번 위기가 찾아왔을 때 대응할 정책수단이 부족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 격인 국제결제은행(BIS)의 클라우디오 보리오 통화·경제부문 총괄은 "통화 긴축 과정은 멈췄고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며 "정상화를 향한 좁은 길이 험로가 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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