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칼럼] 비트코인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력
[박정자 칼럼] 비트코인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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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 전공.
박정자 객원 칼럼니스트

비트코인을 비교적 초기에 경험하다

아직 일반인들이 비트코인이니 랜섬웨어니 하는 말을 잘 모르던 몇 년 전에 나는 비교적 일찍 비트코인을 경험했다. 어느날 원고작업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파일을 클릭하는 순간 갑자기 모든 파일의 확장자가 crypt로 바뀌면서 컴퓨터 안의 모든 문서와 이미지 데이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드롭박스에 저장해 놓은 데이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확인하느라 새 파일을 누르는 순간마다 도미노처럼 확장자가 크립트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치 서양 교회당의 지하 납골당(crypt는 지하 납골당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우리가 암호화폐라고 번역하는 영어 단어는 cryptocurrency이다)에라도 들어간 듯 서늘한 두려움에 온 몸이 덜덜 떨렸다. 해킹 프로그램 랜섬웨어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알림판에는, '당신의 계정이 암호에 걸려 데이터가 차단되었으니, 2 비트코인을 지불하면 암호를 풀어주겠다'는 내용이 떴다. 비트코인이라는 가상 화폐가 있다는 것을 신문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은행을 통하지 않기 때문에 마약거래나 인질의 몸값 같은 범죄 행위에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도 생각이 났다. 과연 내가 범죄에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2라는 단순한 숫자에 안도했다. 별 것 아니라는 인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비트코인 값이 1천 달러라는 업체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2백만 원 넘게 랜섬을 지불하고 데이터를 복구해야 할지,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내게 데이터는 거의 생명과 같이 소중했으므로 결국 2비트코인을 지불하고 데이터를 다시 살려냈다. 이 가상의 전자 화폐가 투자 대상이 되리라고는 그때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백만 원도 비싸다고 생각했던 1비트코인의 값이 지난 12월에는 2천만원까지 올라 거의 20배가 되었다. 2비트코인만 사 놨어도 지금 몇 천만 원의 돈을 벌었을 텐데.

화폐의 역사

'비트코인 열풍은 화폐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먼 옛날 고대인들에게는 당연히 화폐가 없었다. 그들은 자기에게 남는 곡식을 다른 사람의 가축과 교환하여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는 식의 물물교환을 했다. BC 9천 년 전 이집트의 기록에 물물교환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지금과 비슷한 작은 동전이 주조된 것은 BC 1100년 경 중국에서였다. 곡식이나 소 같은 물물교환의 물건들을 동으로 작게 주조한 복제품이었다. 비슷한 시기 인도양 해안 지대에서는 자패(紫貝)라는 조개껍질이 화폐로 사용되었다. 왕에 의해 국가 단위로 주화가 주조된 것은 BC 600년경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였다.

예수 탄생 이후의(AD) 시대로 넘어와 13세기(1250년대)가 되면 이미 피렌체에서 주조된 주화 플로린이 유럽 전체에서 통용되고 있었다. 종이 화폐도 이 즈음에 도입되었다. 최초로 은행에서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한 나라는 1661년의 스웨덴이었다. 지폐는 기업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금이나 은 같은 원석에 의존하지 않고도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은? 고려 시대, 송나라에 유학을 다녀 온 대각국사 의천이 건의하여 1102년에 해동통보·삼한통보·삼한중보 등의 동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유통되지는 못한듯하다. 조선시대 중기까지 한국은 화폐 없는 사회였다. 화폐가 없었다는 것은 경제활동이 활발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숙종 때인 1678년에 와서야 상평통보를 만들었지만, 이 역시 화폐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현대식 화폐가 등장한 것은 조선 말기. 결국 우리가 화폐를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 20세기초의 근대 이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근대적 화폐가 도입된 지 불과 백 수 십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현재 한국은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에서 전체 거래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GDP가 전 세계 경제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선인데 한국인들은 그 10배 이상의 역량을 가상화폐 분야에서 펼치고 있는 셈이다.

지폐도 처음에는 가상화폐였다

동화 속에 흔히 나오는 “금화 한 잎” 등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 시대의 화폐(貨幣)는 금, 은, 동으로 만들어진 실체적 광물질이었다.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실물일 뿐만 아니라 금이나 은 같은 귀한 금속이어서 다른 모든 상품처럼 그것들도 실질적 가치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즉 금화는 금의 값이, 은화는 은의 값이 매겨져 있었다. 그런데 실제의 물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유통 과정에서 물리적 가치하락이 일어났다. 즉 처음 나왔을 때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아 ‘좋은’ 화폐였던 금화가 많이 사용할수록 닳아빠지고 마모되어 ‘나쁜’ 화폐가 되었다. 좋은 새 주화와 마모된 나쁜 통화 사이에 필연적으로 간극이 생겨, 거기서 환전차액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일찍이 상업이 발달한 국가들은 이른바 ‘은행 화폐’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폐를 발행하였다. 주화가 통용되던 시대에 나온 지폐는 지금의 가상화폐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정확히 조폐국 기준에 따라서만 가치가 정해지는, 즉 사용에 의해 가치가 저하되지 않는 화폐였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화폐는 물질로 구현될 수 없었으며, 오로지 가상의 기준치로서만 존재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상인이 은행에 제시하면 은행이 그에게 일정한 액수를 지불한다는, 은행과 개인 사이의 약정이었다. 이렇게 해서 종잇장에 불과해 본래는 아무런 가치가 없던 지폐가 화폐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폐도 처음에 나왔을 때는 가상화폐였다.

이처럼 “좋은 화폐이지만 단지 가상의 것일 뿐인 화폐와, 마모되지만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나쁜’ 금 화폐로 이원화되는 과정에서 “실질 화폐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즉 내 손에 쥐고 있는 이 금화는 마모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으며, 그 자체로 ‘진정한’ 가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지폐는 아직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지폐는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어떤 특정 수취인의 서명에 직증(直證)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었다. 즉 특정 이름의 개별 상인에게 은행이 금을 지불할 것을 보증하는 금융적 약속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지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직증적 약속이 비인격화되어야만 했다. 다시 말하면 종잇장에 쓰인 대로 구체적인 날짜에 특정한 사람에게만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종이를 갖고 가는 모든 익명의 ‘지참자’에게 지폐에 적힌 액수의 금-등가물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마치 항구에 정박했던 배가 닻줄을 끊고 바다로 나아가듯, 구체적인 개인에 직접 연결되어 있던 화폐는 개인과의 연결을 끊고 익명의 바다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익명의 ‘지참자’라고 해서 보편적 중립적 권리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도 마찬가지다. 거액의 돈을 현금으로 갖고 있는 사람은 범죄자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또 거액의 수표를 바꾸기 위해 은행에 가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의 은행 잔고가 있는지 또는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졌는지를 증명해야만 한다. 안 그러면 당장 은행원으로부터 의혹의 눈초리와 함께 범죄인 취급을 받으며 경찰에 신고 될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국민을 통제하는 기구인 국가는 익명성을 매우 불순하게 생각한다. 태생적으로 국가에 저항하는 개인들은 모든 종류의 익명성 속에서 매우 편안함을 느낀다. 작금의 비트코인 열풍에는 익명성에 대한 개인의 욕구와 그를 규제하려는 정부의 대립이라는 무의식적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금, 은, 동의 실체적 광물질에서 한낱 종잇장으로 된 가상의 지폐로 넘어갔듯이, 이제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경험적 사물인 지폐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가상의 암호 화폐로 넘어가는 단계를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전자 화폐가 세상에 나온 것은 2009년 1월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사람에 의해서였다(이 사람의 정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인류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신 개념의 아이폰을 출시한 지 딱 2년만이었다. 이 화폐는 완벽하게 탈중앙화(decentralized)하여 익명의 일대일(P2P, peer to peer) 거래를 통해 작동되므로 해킹이 불가능하고, 개인 정보가 필요 없으며, 거래의 투명성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통화 시스템이라고 나카모토는 말했다.

그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응용해 비트코인을 만들었다. 블록(block)이란 원래 ‘연속된 데이터를 저장하는 일정 길이의 비트 단위(sequence of bits)’를 뜻하는 컴퓨터 용어다. 제어 프로그램의 연산 시간을 단축하고, 데이터 흐름의 조작속도를 높이기 위해 일정 부분의 데이터를 한 덩어리로 묶는 것이다. 문서 작업을 할 때 우리는 파일의 한 부분을 삭제하거나 이동하기 위해 그 부분을 한꺼번에 검정색으로 ‘블록 설정’을 하는데, 이 때의 블록이 아마도 가장 단순한 형태의 블록 개념일 것이다.

가상화폐 시스템은 ‘A가 B에게 비트코인 몇 개를 줬고, 다시 B는 C에게 이 비트코인을 주었다’는 식의 개인 금전 거래 내역을 시간 순으로 블록에 저장한다. 이 블록들을 사슬처럼 엮어 띠를 만들고, 이 체인을 순식간에 복제하여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 저장하는 것이 바로 블록체인 기법이다. 블록은 통상 10분 단위로 만들어진다.

한 마디로 블록체인은 은행의 중앙 서버에 모든 것을 기록하는 대신 인터넷으로 연결된 모든 참여자 개개인의 컴퓨터에 각기 복사본을 저장해 놓는 방식이다. 예전에 종잇장 위에 펜으로 써넣던 거래 장부를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납작한 종이의 2차원적 거래장부와 다를 것이 없는데, 이것을 블록이라고 이름 지으니 갑자기 어떤 덩어리 또는 입방체 같은 3차원의 세계가 펼쳐지는 듯하다. 과연 컴퓨터의 세계는 철두철미하게 가상의 세계다.

“온라인을 통해 일대일로 직접 전달되므로, 거래 과정에서 금융기관은 필요하지 않다”라고 나카모토는 말했다. 그러니까 핵심은 은행이 독점하던 거래 장부의 분산 보관이다. 기존의 방식은 거래 기록이 중앙 서버 단 하나에 저장되어 모든 데이터가 중앙 집중 되었으므로 보안이 취약하고, 또 서버 증설도 필요했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을 네트워크 참여자에게 분산 저장하여 수많은 복사본이 생겨나므로 해킹이나 조작이 불가능하고, 서버 증설 같은 대규모 비용도 불필요하다는 것이 나카모토의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개개인들이 거래 장부를 인터넷으로 공유하게 되면 은행이 독점해 온 중개인(middlemen)의 기능은 사라지게 된다. 아울러 거래 수수료도 사라지고, 거래 보증 기능도 물론 잃게 된다. 더 근원적으로는 과거에 독점적으로 갖고 있던 통화 발행의 권한마저 잃게 되므로 중앙은행의 권위 자체가 무너진다. 그러나 지금 현재 대부분의 가상화폐 거래자들이 일대일 거래가 아니라 거래소를 통한 3자 거래를 하고 있고, 거래소가 대형의 해킹도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체제가 완벽하게 안전하고 익명적이라는 나카모토의 주장은 그리 신빙성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다만 블록체인에 송금·결제 같은 단순 거래 뿐 아니라 선물(先物)거래 같은 복잡한 거래를 저장할 수도 있고, 금융만이 아니라 개인 정보, 물류·유통,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의 다양한 데이터도 담을 수 있어서, 블록체인이 4차 산업을 이끌 꿈의 기술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비트코인과 포스트모던 철학

포스트모던 철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가상화폐 현상은 너무나 낯익은 개념들이다. 실체에서 가상(假想)으로 향해가는 트랜드라든가, 중심에 집중되었던 데이터를 분산시키는 탈중심화(decentralization) 현상, 또는 모든 요소들을 평등하게 생각하는 탈권위적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블록체인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거래 당사자 모두가 동등한 권한을 갖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분산형 네트워크 기술이다”라는 나카모토의 주장은 그대로 포스트모던 철학의 요약 설명문 같다. 비트코인 열풍은 지극히 포스트모던한 현상이다.

포스트모던이란 근대(모던)를 벗어난 탈근대(脫近代)의 시대라는 뜻이다. 근대란 대략 데카르트(17세기) 이래 20세기 중반까지의 시대를 말하고,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까지를 포스트모던(탈근대)이라고 한다. 그러나 근대의 뿌리는 실상 고대 희랍의 플라톤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의 모든 기본 개념이 플라톤에서 연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와 포스트모던의 중요한 차이 중의 하나가 실재와 가상에 대한 인식이다. 근대는 실재의 시대였는데, 포스트모던은 가상의 시대이다. 가상현실이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이미 실재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VR(virtual reality) 기기들은 오락과 스포츠만이 아니라 의료,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이미 상용화되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가상의 잠수함을 타면 푸른 산호초 군락 위로 눈앞에서 물고기 떼가 지나가, 직접 작살을 던져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고, 가상의 스키에 발을 올린 뒤 VR 안경을 쓰면 스키대에서 빠른 속도로 급하강 점프를 해 볼 수도 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특수 안경을 쓰고 의자에 앉으면 해리포터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고, 호그와트의 드넓은 창공을 고속질주하기도 하며, 엄청난 크기의 용이 내뿜는 화염에 혼비백산하기도 한다.

거실 소파에 앉아 간편한 VR 안경 하나만 착용하고 가상현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이 있다. ‘반 고흐의 방’이라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고흐의 그림 속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문으로 나가 방 옆의 화장실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다. 만일 누군가가 고성(古城)을 무대로 한 공포물을 이 프로그램으로 보다가 놀라 기절했다면 그건 가상의 현실일까 실재의 현실일까? 이미 우리는 실재와 가상의 구분이 어려워진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던 현상이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가상현실이 실체적 현실을 압도할 만큼 실재보다 가상이 더 중요하게 된 시대이다.

근대와 포스트모던 사이의 또 하나의 차이점은 중심과 탈중심이다. 근대는 하나의 강력한 중심과 그에 종속된 주변부들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또는 단 하나의 권위 있는 동일자(同一者)에 모든 대상들이 종속되어 전체화를 이루고 있는 삼각형의 세계였다. 이때 권위 있는 중심 또는 최고 권위의 동일자가 바로 ‘실재’(實在)였다. 근대인들은 실재를 가장 중요시하고 거의 절대시 했다. 그리고 가상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현대인들은 실재와 가상을 차별하지 않으며, 어쩌면 가상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연예인들의 실재에 상관없이 그 가상의 이미지에 열광하는 우리의 대중문화가 바로 그 적나라한 증거이다. 탈 권위와 가상 개념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이처럼 하나의 개념으로 수렴된다.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근대의 ‘실재’ 개념은 플라톤의 것이다. 근대 사상이 플라톤에서 연원한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우리 주위의 물건들을 견고한 실재(實在)라고 믿고 있는데, 플라톤은 그것들이 모두 한갓 그림자에 불과한 환영(幻影)이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저 높은 세계에 있는 해당 이데아(Idea)의 복제품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수많은 침대들이 있지만 침대의 이데아는 오직 하나가 있을 뿐, 세상의 모든 침대들은 그 이데아-침대의 그림자 혹은 복제품이다. 이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사물의 본질 또는 개념이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하튼 플라톤은 이데아가 실재이고 우리의 감각의 대상인 실제 사물들은 한갓 허상,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실제 사물들을 현상 또는 가상(假象, Appearance)이라고 불렀다. (virtual의 假想이 아니라 주관적 환상이라는 의미의 假象이다). 이처럼 ‘실재’의 개념이 우리의 상식적 개념과 다르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실재를 대문자 R로 써서 the Real로 표기한다.

실재와 가상, 그러니까 이데아와 감각적인 것 사이에는 유사성(resemblance)이 있다. 예를 들면 세상의 모든 사과들은 사과의 이데아와 형태가 유사하다. 물론 사과의 이데아와 완벽하게 똑같은 사과란 있을 수 없다. 이데아란 유일한 단 하나의 영원한 본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되는 현실 속의 사과는 비록 이데아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열등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데아와 최대한 닮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높은 곳에 있는 이데아를 닮지 않고, 자기와 비슷한 급수의 다른 사물들을 닮은 물건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나무에서 열린 현실 속의 사과가 사과의 이데아를 닮은 제1급의 복제품이라면, 화가가 그것을 다시 모방하여 물감으로 그린 사과라든가, 조각가가 석고로 반죽하여 만든 사과, 또는 가정주부가 코바늘 뜨개로 둥그렇게 만든 사과들은 모두 자연의 사과를 다시 한 번 복제한 가짜 사과들이다. 자연의 사과 자체가 이미 이데아의 그림자거나 복제품인데, 이 사과를 또 모방한 두 번째의 사과는 그림자의 그림자여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라고 플라톤은 생각한다).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유사함이라는 미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불길한 존재로 여겨진다. ‘사과’라는 영원한 이데아를 모방하지 않고 다만 그 복제품의 겉모습만 조악하게 다시 한 번 모방한 복제의 복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복제의 복제 또는 원본 없는 복제가 바로 시뮬라크르다. 이데아와 현상 사이에는 닮음 (유사성)이 있지만, 시뮬라크르들 사이에는 ‘서로 비슷함’(상사, 相似, similitude) 만이 있다. 상사(相似)로 번역한 similitude는 similar(비슷한)라는 형용사의 명사형이다. 그러니까 서로 비슷한 고만고만한 것들의 다수가 바로 simulacre다.

플라톤과 팝아트

Andy Warhol, 'Marilyn Monroe diptych'
Andy Warhol, 'Marilyn Monroe diptych'

이데아를 원본(original)으로, 현상을 복제(copy)로 바꿔 놓으면 플라톤의 도식은 글자 그대로 팝아트의 이론이 된다. 메릴린 먼로나 체 게바라 같은 유명인들을 여러 색깔로 변형시킨 엔디 워홀의 그림들을 생각해 보자.

우선 제일 처음에 유일무이한 견고한 실재로서의 메릴린 먼로라는 실제 인간 즉 원본(original)이 있다. 이 원본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 최초의 복제품(copy)이다. 오리지널을 모방한 것이 카피이므로, 원본과 그 사진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머리 색깔, 얼굴 색깔, 옷 색깔이 모두 비슷하다. 그런데 워홀은 그 최초의 복제품에 여러 가지 색깔을 입혀 실크 스크린으로 다양한 판본을 찍어냈다. 복제의 복제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뮬라크르다. 이것들은 원본과 아무 관계가 없다. 메릴린 먼로의 얼굴이 언제 빨강, 노랑, 초록이었던가. 시뮬라크르들 자기들끼리만 서로 비슷하게(상사) 한없이 비슷한 모양으로 무수한 복제품을 증식시키고 있을 뿐이다.

원본과 복제의 관계는 권위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원본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복제품들은 당연히 가치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도식에는 엄격한 위계가 있었다.

그러나 시뮬라크르들 사이에는 위계의 높낮이가 없고, 방향의 좌우가 없다. 빨강 얼굴을 초록 얼굴 옆에 놓아도 좋고, 노랑 머리칼을 겨자색 머리칼 옆에 놓아도 좋다. 초록 얼굴이 빨강 얼굴보다 더 위에 있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무한한 가역성이 있고, 위와 아래로 얼마든지 높낮이가 변형될 수 있는 것, 이것이 시뮬라크르의 특징이다. 시뮬라크르는 원본의 권위를 부정한다. 여기서 탈중심, 탈권위의 개념들이 도출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뮬라크르는 위계질서의 파괴, 권위의 파괴를 가져온다.

플라톤 사상의 극복이 포스트모던의 핵심

미국에서 팝아트가 기세를 올리던 1960~70년대에 푸코, 들뢰즈 등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팝아트에 대한 존경심과 경의를 감추지 않았다. 플라톤은 원본 없는 복제인 시뮬라크르들을 사갈시(蛇蝎視)하고, 아무 가치가 없는 것으로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불길한 것으로 치부했는데,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시뮬라크르들의 다양성이야말로 실재보다 더 가치 있고, 더 아름답고, 더 역동적이라고 했다. 그들이 내세운 구호가 탈중심(decentralization)과 수평적 다양성이었다. 플라톤의 중앙집권적 사상을 전복(顚覆)해야만 서구 철학이 근대를 극복하고 탈근대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러니까 포지티브한 면에서나 네거티브한 면에서나 팝아트에 끼친 플라톤의 영향은 매우 근본적이다. 우선 시뮬라크르의 개념 자체가 플라톤의 것이고, 이데아와 현상이라는 플라톤의 도식 자체가 원본과 복제라는 포스트모던 미학과 그대로 일치한다. 이것이 포지티브한 면이라면, 이미지의 이미지인 시뮬라크르에 가치를 부여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는 두 사상을 정반대로 갈라놓는 핵심적이면서도 네거티브한 관계이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은 근대 철학의 원조이며, 또 역설적으로 포스트모던 철학의 원조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던 철학의 금융 버전인 가상화폐

지금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가상화폐는 포스트모던의 금융적 버전이라 할 만하다. 원시시대의 물물교환에서부터 비트코인이 화폐로 등장한 2009년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사실상 원시적 개별 인간들을 국가라는 제도의 틀 속에 가두어 간 역사였다. 화폐에 권위와 가치를 부여해 주는 중앙집권적 정부가 있어야만 화폐가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발달한 은행을 매개로 거래와 교환을 하기에 이른 인류는 이제 다시 개인 대 개인(P2P)의 원시적 교환방식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 같다. 긴 세월을 거쳐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하지만, 그러나 물론 원시로의 회귀는 아니고 일반인은 이해도 하지 못할 복잡하고 어려운 수식의 전자계산을 통한 과거회귀이다. 일반인은 이해도 하지 못할 난해한 세계라는 점에서 권력분산이니 수평적 평등이니 하는 말들은 어쩌면 사람들을 속이는 또 하나의 미혹일 수 있다.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이 그렇게 구가하던 수평적 평등의 세계는 결코 오지 않았고, 오늘날 사람들은 더 심하게 권력의 노예가 되었듯이 말이다.

박정자 객원 칼럼니스트(상명대 명예교수)

※ 필자 소개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불어불문학 전공(학사, 석사, 박사)
푸코, 데리다 등 포스트모던의 철학과 미학, 그리고 프랑스 혁명에 관심.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현대세계의 일상성>, <푸코 전기>, <사상의 거장들> 등의 번역서와, <빈센트의 구두>, <시선은 권력이다>, <눈과 손, 그리고 햅틱>,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등의 저서가 있다.
최근에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 <여혐의 희생자,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획,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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