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단 1원도 챙기지 않은 현직 대통령에 "뇌물죄 해당한다'며 '파면'한 한국의 헌법재판소
과연 박근혜 前대통령이 임기 도중 파면될 만큼 중대하게 헌법위반하고 국정농단했나?
대한민국 헌재, '촛불의 겁박'에 휘둘려 미리 답 정해놓고 탄핵심판 진행한 것 아닌가?
당시 재판관들, '졸속과 날림으로 결정한 정치탄핵' 반박에 뭐라고 변명할 건가?

2년 전인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받아들여 박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날 '헤어롤'을 말고 나타나 두고두고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정미 재판장(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선고 요지문을 읽어내려간 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결정이었다. 더구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때도 없던 재판관 전원 일치 결정이었다.

헌재의 탄핵 심판으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당시의 헌재 결정이 '졸속적인 정치탄핵'이었다고 여기는 국민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원초적인 의문은 "재임중 개인적으로 단 1원도 받지 않았던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점이다. 또 '탄핵 정변' 과정에서 기승을 부린 수많은 거짓과 왜곡, 과장과 선동에 휘둘려 사실상 '탄핵 인용'이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무리하게 탄핵재판을 진행했다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2년 전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문은 한국의 사법역사와 세계 법조계에서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것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2017년 3월 10월 헌재의 탄핵 결정은 탄핵정변 과정에서 국정(國政)에 '농단(隴斷·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이라는 거창한 어휘가 따라붙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이 과연 말 그대로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했는지를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 '정치적 부관참시' 격인 이후 형사재판 추이를 봐도 박 전 대통령의 사익(私益) 추구는 입증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어느 누구도 이같은 의문을 해소해주지 않고 "감히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판결에 도전하느냐"는 식의 잘못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로 입을 막으려는 이들이 나타날 뿐이다. 

비단 돈 거래 없는 뇌물수수 혐의 씌우기만이 문제는 아니다. 탄핵 후 만 2년이 지나는 동안, JTBC의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가 정국을 뒤흔들고도 최서원(최순실 개명 후 이름)씨의 지문 하나 나왔다는 말조차 없고, 최씨와 직접 접촉했던 태블릿PC 개통자에게만은 유독 공세가 향하지 않았으며, JTBC는 '최씨가 국정농단에 태블릿PC를 이용했다고 단언한 적이 없다'고 발을 빼는 등 진상규명의 상식을 벗어났다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및 형사재판 변호인을 지낸 채명성 변호사가 2019년초 낸 저서 <탄핵 인사이드 아웃>을 통해 강조한, 고영태(前더블루K 이사) 일당 녹음파일로 드러난 '기획폭로에 의한 탄핵' 의혹의 불씨도 꺼지지 않았다.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애시당초 탄핵 인용 판결이 지닌 '무책임'의 소산으로 보인다.

●'최순실 꼭두각시' 낭설 시비는 안 가리고 "국정개입 허용"이라고 단죄?

당초 2016년 10월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국정농단설' 보도가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 등 가짜뉴스와 맞물려 '박 전 대통령은 최서원(최순실 개명 후 이름)의 꼭두각시'라는 낭설을 낳고, 탄핵론이 힘을 받은 게 당시 여론 동향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 야권 정치인들도 박근혜 정부를 '최순실 정부'라 칭하거나, 자신들이 반대하던 주한미군 사드(THAAD)배치·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국정현안마다 '최순실 정책' '최순실 예산' 딱지를 붙이며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이어갔다. 박 전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를 대리하기 시작한 이후 알게 된 최씨의 부친인 최태민 목사를 엮어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낭설 중 하나로 300인 공양 굿판설이 끼어드는 데에도, 언론에 긍정에 가까운 침묵으로 응대하는 비열함을 보인 정치인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2017년 3월10일 헌재의 판결문(2016헌나1)을 보면 '최태민'은 단 4번 등장할 뿐이다. 딸 최씨와 박 전 대통령 관계를 설명하는 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판결문은 "피청구인(대통령)은 최태민의 딸인 최서원과도 친분을 유지하였는데"로 시작한다. 

그 다음은 "(정계진출 전) 피청구인의 개인적 일을 처리할 때 최서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1998년) 최서원의 남편 정윤회가 피청구인의 비서실장으로 불리며 피청구인의 보좌진을 이끌었다",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에도 관저에서 최서원과의 사적 만남을 꾸준히 지속하였다", "최서원은 정호성을 비롯한 피청구인의 일부 보좌진과 차명 휴대전화 등으로 상시 연락하였고, 피청구인의 일정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의상을 준비하기도 하였다"고 간접정황을 제기하는 데 그쳤다. 

그러면서도 무책임한 '꼭두각시설'에 올라탄 청구인(국회 소추위원단) 측의 "국정을 비선 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로 운영하여 법치국가원칙을 파괴한 것"이라는 프레임을 누차 인용했다. 주된 판단은 문화·체육분야 관련 인사에 대한 '추천'과정에 최씨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고 최씨가 이권을 도모한 정황에 집중됐음에도 헌재는 이같은 수사를 남발했다. 

또 '피청구인을 파면할 것인지 여부'를 설명하면서도 헌재는 "이른바 비선 조직의 조언을 듣고 국정을 운영한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으나, 그때마다 피청구인은 이를 부인하고 의혹 제기 행위만을 비난하였다"거나, 2014년 11월 세계일보의 이른바 '정윤회 문건' 보도에도 "피청구인이 대외적으로는 최서원의 존재 자체를 철저히 숨기면서 그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박 전 대통령을 탓하는 데 그쳤다.

'국정 개입'의 범주를 여전히 특정하지 않으면서, 박근혜 정부 국정 전체가 무분별하게 '비선조직의 전횡'으로 여론에 각인되는 상황을 방치한 격이다.

그래픽=연합뉴스

●대통령 연설문 전달되거나 일부의견 들으면 崔에 휘둘린 건가?

헌재는 탄핵 주문에서 "피청구인에게 보고되는 서류는 대부분 부속비서관 정호성이 피청구인에게 전달하였는데, 정호성은 2013년 1월경부터 2016년 4월경까지 각종 인사자료, 국무회의자료, 대통령 해외순방일정과 미국 국무부장관 접견자료 등 공무상 비밀을 담고 있는 문건을 최서원에게 전달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론된 국무회의자료, 대통령해외순방일정 등은 JTBC가 최씨를 소유주라고 주장하던 태블릿PC와 박영수 특검팀 수사에서 기인했다. 태블릿PC 진위 공방이 이는 중이었음에도 헌재는 탄핵심판 증거채택 대상에서 이를 배제했다. 2017년 1월10일 강일원 주심재판관은 피청구인 측의 '태블릿PC 분석보고서' 문서송부촉탁 신청에 "태블릿PC 감정결과서(분석보고서) 존재 여부를 모른다. 청구인측 증거자료에 태블릿PC 자료가 일부 있는 건 맞지만, 아직 증거조사가 안 돼 현재로선 쟁점이 아니다"라며 기각했었다.

그래놓고 앞선 전제에서 나아가 "최서원이 피청구인의 해외순방 일정을 상세히 알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하였고 피청구인이 이를 수용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관련 문건이나 정보가 최서원에게 전달된 사실을 피청구인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면서 "이런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인사에 관한 자료나 정책보고서 등 '말씀자료가 아닌 문건을 최서원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피청구인의 주장도 믿기 어렵다"는 추론을 덧붙였다.

한술 더 떠 "더구나 피청구인의 주장과 달리 최○원은 공직자 인사와 대통령의 공식일정 및 체육정책 등 여러 분야의 국가정보를 전달받고 국정에 개입하였다. 또한 피청구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 용도로 남용하였다"면서 "결과적으로 최서원의 사익 추구를 도와 준 것으로서 적극적ㆍ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풀이했다.

이어 "특히,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국가의 기관과 조직을 동원하였다는 점에서 그 법 위반의 정도가 매우 엄중하다"고 덧붙였다. 그 어떤 의혹에 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이 공직자 또는 기업에게 '최씨를 도우라'고 지시했다는 물증(物證)을 찾지 못한 가운데 '결과적으로'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단죄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불투명한 사실조사를 토대로 헌재가 스스로 쌓아올린 논리는 "피청구인이 최서원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최서원 등의 사익 추구를 도와주는 한편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것은,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행위로서 대통령으로서의 공익실현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직접적으로 '꼭두각시'설과 같은 관계를 형성했는지 긍정도 반박도 하지 않은 채로였다. 헌재 스스로가 사인(私人)의 국정 개입으로 논의를 한정시키는 등 쟁점을 비틀었다. 채명성 변호사는 저서에서 "세부적인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이 국가를 파국으로 이끌 만한 과오 없이 국정을 수행해온 점에 대하여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사진=연합뉴스)

●특검發 허무맹랑한 '경제공동체' 프레임도 이어받은 헌재…판결문엔 등장 안해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건 2016년 12월이었고, 당월 말쯤에는 JTBC가 <[단독] 특검, 박 대통령·최순실 재산 내역 및 돈 거래 조회>라는 보도에서 국정농단에 이어 '경제공동체'라는 근본없는 용어를 등장시켰다. 

이 보도에서 JTBC는 "특검은 박 대통령과 최씨가 경제적으로 한 몸이라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40년간의 재산 형성 과정과 돈거래 내역 등을 조사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법률적으로 부부간에도 사용되지 않던 '경제공동체'가 등장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1원도 받은 게 없는'데도 최씨가 얻은 경제적 이득 일체를 뇌물로 몰아세우는 프레임이 자리를 잡았다.

이는 이후 탄핵심판에서나 형사재판에서도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자체를 '공동 재산 불리기'로 전제하는 등 제3자 뇌물공여 혐의 적용을 강행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공동체'라는 용어 등장에 졸속 탄핵을 경계하는 여론은 크게 술렁였다. 공교롭게도 관련 논란을 의식한 듯 헌재 판결문에서는 '경제공동체'나 '경제적 공동체' 따위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황을 제시하고 자체 추론을 기정사실화하는 논법에서 이런 관점이 묻어났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최서원이 추천한 인사를 다수 공직에 임명하였고 이렇게 임명된 일부 공직자는 최서원의 이권 추구를 돕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피청구인은 사기업으로부터 재원을 마련하여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설립하도록 지시하였고,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들에게 출연을 요구하였다. 이어 최서원이 추천하는 사람들을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임원진이 되도록 하여 최서원이 두 재단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 결과 최서원은 자신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를 통해 위 재단을 이권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전제로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한데 묶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이 플레이그라운드ㆍ더블루케이ㆍ케이디코퍼레이션 등이 최서원과 관계있는 회사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 특정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해 그 권한을 남용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므로,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등 위배에 해당함은 변함이 없다"거나 "이런 회사를 우수 중소기업으로 알고 지원하였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채 변호사는 "만약 경제공동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드르이 형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들의 아들들의 비리도 전 대통령들에게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며 "대통령과 최서원의 관계보다 형이나 아들과 같은 친족관계가 경제공동체 논리에 보다 적합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대 그런 논리로 대통령을 탄핵하거나 형사처벌한 경우는 없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최서원과 대통령이 경제공동체라는 사실은 전혀 입증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최서원에게 옷 심부름을 시킬 때도 윤전추 전 행정관이나 이영선 전 행정관을 통해 일일이 비용을 지급했다"고 밝히고 있다. 전대미문의 경제공동체 개념이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및 형사재판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도 특검과 헌재 논리에 의문을 품게 한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강일원 주심재판관(그래픽=연합뉴스)

●청구인 측 주장 받아든 채 급속 재판, "피청구인 못 믿어" 연발…'답정너 판결'

2017년초 헌재의 재판 행태는 일반인의 시각으로 봐도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기각 결정)과 사뭇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4년 탄핵심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해 4월 총선을 불과 두달여 앞두고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총선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발언을 다수 언론 앞에서 내놓은 것이 핵심 계기였고, 재판부는 청구인 측의 소추사유와 피청구인 측의 절차상 문제제기에 고루 반박한 흔적이 당시 판결문(2004헌나1)에 남아 있다.

헌재가 피청구인 측과 '진실공방'을 벌이는 게 아니라 이미 드러난 언행 관련 3개 소추사유를 놓고 공직선거법 각 조항에 위배되는지, 위법 사항들이 대통령직 파면을 결정할 만큼 '중대한' 지를 충실히 심의했다는 점에서 탄핵심판에 걸맞는 무게감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맡은 헌재 재판부는 '소추사유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는 대통령 대리인단(피청구인 측)의 비판에 "공무원 징계의 경우 징계사유의 특정은 그 대상이 되는 비위사실을 다른 사실과 구별될 정도로 기재하면 충분"하다고 받아 넘겨버렸다. '공무원 징계'라는 용어는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등장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헌재가 법 위반까지 감수해가며 사법적인 조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수사기록만 받아들고 심리를 강행했다는 지적도 있다. 

채 변호사는 헌재법 제32조 단서가 "재판, 소추 또는 범죄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하여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고 명시하는데도, 최씨가 1심 첫 기일을 나흘 앞두고 있던 2016년 12월15일 헌재는 특검과 검찰에 최씨 사건 등에 대한 수사기록 제출을 요구했다고 저서를 통해 밝혔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를 넘겨 받은 박 특검팀의 수사 역시 진행 중인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형사소송법 272조를 근거를 들고 헌재법을 무시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후 헌재는 수만페이지에 달하는 검찰·특검 수사기록을 먼저 열람하고, 대통령 대리인단에는 제대로 반박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이밖에도 헌재는 태블릿PC 증거 채택을 거부하고, 고영태·노승일의 증인 불출석을 용인한 채 탄핵심판을 강행했다. 탄핵심판은 통상 180일 내에 결정을 내리게 돼 있고 앞서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4배 이상은 많은 13가지 소추사유가 얽혀 있음에도, 헌재는 2017년 1월부터 박한철 당시 헌재소장(1월31일 퇴임)에 이어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는 2017년 3월13일 이전에 탄핵선고를 내리겠다고 피청구인 측에 통보했다.  더구나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게 신임 헌법재판관·소장 선출을 요청하지 않은 채였다.

실제로 3월10일 박한철 전 소장이 빠진 채 재판관 8인 만장일치로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판결은 직무정지 60여일 만에 내려진 반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훨씬 많은 소추사유에 대해 사실관계 등 심리를 병행하고도 90여일 만에 종결됐다. 탄핵 판결문 분량 차이도 약 1대 1.5 수준에 불과했다. 헌재는 증거라고는 검찰 공소장과 언론 보도 일색인 국회 소추위원단의 조악한 소추사유를 먼저 나서서 압축, 정리해주고 최종 판결에선 형법 위반사항 상당 부분을 판단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특이한 재판 행태도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의 '녹취를 동반한 특검 대면조사' 거부, 직무정지 상태에서 청와대 참모진이 내린 압수수색 거부 등 소추사유 외 정황까지 갑자기 선고 단계에서 문제 삼으며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다"고 단죄한 것까지 맞물려, 이런 정황들은 소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탄핵'이라는 의혹을 키우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아울러 탄핵 선고 시점 퇴임 상태였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은 물론,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김이수·이진성 재판관까지 4인이 과거 2014년 '재판관 공석 상태가 장기화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헌법소원 사건(2012년 1월 제기)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으려면 재판부는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드러나 '정치적 목적의 탄핵' 논란 소지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9인 재판관 중 5인은 헌법소원 '각하' 결정을 내렸지만, 각하 반대입장을 견지한 4인은 "(9인 체제가 아닐 경우) 재판관 공석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끝까지 '위헌' 입장을 고수했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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