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1부, 항소심 공판 과정에서 78세 이명박 前대통령 조건부 보석 허가
석방 후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접견-통신 대상도 제한하는 등 조건 달아
재판부, 건강 문제를 이유로 한 '병보석'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구속 만기 다가오는 점 고려
사법부 내에 정권 핵심부와 검찰에 대한 비판과 불만 움직임 확산 속 주목
이 前대통령, 6일 오후 3시58분 수감 중이던 서울동부구치소 나서 4시 12분 강남구 논현동 자택 도착
석방 결정에 변호인들, 만면에 미소 머금어...검찰은 굳은 표정으로 일관
법정 떠나 구치감으로 이동하던 이 전 대통령은 옅은 미소 보이며 "지금부터 고생이지"라고 말해
강훈 변호사, 보석 석방 결정 후 취재진과 만나 "보석 조건 엄중해도 대통령이 못 지킬 조건은 아냐"
"대통령일수록 오해사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을 몸으로 보여달라는 뜻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이해하셨다"
한국당 "이 전 대통령 보석 조건부로 허가한 법원 결정 존중하며, 다행스럽게 생각"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날 이 전 대통령이 청구한 보석을 조건부로 허가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날 이 전 대통령이 청구한 보석을 조건부로 허가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이명박 전 대통령(78)이 청구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을 허가한다고 6일 밝혔다. 지난해 3월 22일 구속된 지 349일 만이다. 다만 석방 후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접견·통신 대상도 제한하는 등 조건을 달았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58분 수감 중이던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서 14분 만인 4시 12분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 도착했다. 취재진과 별도 접촉은 없었다.

지난해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 전 대통령은 올해 1월 29일 항소심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법원 인사로 항소심 재판부가 새로 구성돼 구속 기한인 4월 8일까지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기 어려운 데다, 고령에 수면무호흡증 등으로 돌연사 가능성까지 있다며 불구속 재판을 요청했다.

반면 검찰은 재판부 변경은 보석 허가 사유가 될 수 없고, 건강상태 역시 석방돼 치료받아야 할 만큼 위급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항소심 재판부는 건강 문제를 이유로 한 이른바 '병보석'에 대해서는 "구치소 내 의료진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구속 만기가 다가오는 점에서 보석을 할 타당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항소심에서 (최대 한도인) 3회 갱신 돼 4월 8일 구속기간이 만료된다"며 "최근 항소심 재판부가 새로 구성돼 우리 재판부가 구속 만기일에 선고한다고 해도 43일밖에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종전 재판부가 증인 신문을 마치지 않은 것까지 감안하면 4월 8일 전까지 충실하게 심리하고 선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구속 만료 후 석방되면 오히려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에서 주거 제한이나 접촉 제한을 고려할 수 없다"며 "보석을 허가하면 조건부로 임시 석방해 구속영장의 효력이 유지되고, 조건을 어기면 언제든 다시 구치소에 구금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10억원의 보증금을 납입하고, 석방 후 주거는 주소지 한 곳으로만 제한했다. 이 전 대통령 측에서는 진료를 받을 서울대병원도 '제한된 주거지'에 포함할 것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병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 만큼 해당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진료를 받아야 할 때는 그때마다 이유와 병원을 기재해 보석 조건 변경 허가 신청을 받고, 복귀한 것도 보고하도록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건부 보석 결정이 내려진 6일 오후 이 전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서울 강남구 사저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건부 보석 결정이 내려진 6일 오후 이 전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서울 강남구 사저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증인석에 서서 책상을 짚은 채 재판부의 보석 허가 결정을 들었다. "불편하면 잠깐 앉아도 된다"는 재판장의 제안에도 계속해서 서 있던 이 전 대통령은 재판부 설명이 끝나갈 무렵 힘에 겨운 듯 의자에 앉았다.

석방 결정에 변호인들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검찰은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다만 재판을 지켜보던 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런 조건은 난생 처음 본다", "구치소는 면회라도 가지 이건 면회도 못 간다"며 까다로운 조건에 불만을 표출했다.

보석 절차를 밟기 위해 법정을 떠나 구치감으로 이동하는 이 전 대통령 곁에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등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악수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지금부터 고생이지"라고 말했다. 지지자들은 "건강하세요"라고 화답했다.

이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는 보석 석방 결정 후 취재진과 만나 "보석 조건이 엄중해도 대통령이 못 지킬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제가 변호사 하면서 제일 조건이 많긴 했다"면서도 "재판부가 이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하고, 대통령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우대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감안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보석 허가를 예상했느냐"는 질문에는 "예상했는지는 모르겠고, 기대는 하셨을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논의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재판부가 제시한 조건에 대해 "처음에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냐는 반응도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재판부는 대통령일수록 그렇게 오해사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을 몸으로 보여달라는 뜻으로 조건을 가혹하게 한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이해하셨다"고 덧붙였다.

강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보석이 허가돼) 매일 구치소에 가서 접견하는 부담도 적어졌고, 대통령도 마음 편히 과연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검사가 말한 그분을 만났는지 기억을 되살릴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자유한국당은 이와 관련, 같은날 이만희 원내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보석을 조건부로 허가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고령과 병환을 고려할 때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전직 대통령의 병환에 대한 호소마저 조롱하는 민주당의 치졸함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실망 운운하며 더욱 엄정하게 재판하라는 모습을 보며, 역시 법원 겁박도 서슴지 않는 무소불위 정당임을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내대변인은 또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 단호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라고 민주당이 요청한 것은, 부디 김경수 지사에 대한 재판에 대해서도 잊지 말고 다시 한 번 강조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여러 조건을 달긴 했지만 80세 가까운 고령인 이 전 대통령을 석방한 것이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소위 '적폐청산'이란 이름 아래 검찰과 법원을 앞세워 진행한 무리한 '숙청'에 일선 판사들이 제동을 거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법원 내에서는 문 정권 권력 핵심부와 검찰의 안하무인적 행태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확산되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민현 기자 smh41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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