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능력 일부 포기-대북제재 해제, 종전선언 획득 후 '미국의 한반도 이탈' 끌어내는 것이 北 궁극적 목표
연방제 통일-적화통일 '지옥문' 여는 '종전선언' 위험성 여전히 주의해야...
“北 비핵화 의지 확고하다”며 국민 속여온 文정부는 국민에 사과하고 응분의 책임도 져야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2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린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북한 비핵화가 제자리에 머물게 되었음은 애석한 일이다. 특히 어떤 딜이든 성사만 되면 이를 계기로 대북지원의 물꼬를 트려고 벼르던 한국 정부에게는 당혹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동맹을 중시하기보다는 외교적 업적을 갈구하기에 바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안보를 해치는 양보를 제공할 수 있음을 우려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안도했다.

‘노딜’로 끝난 트럼프-김정은의 2차 만남

회담 전부터 전문가들은 ‘빅딜(큰 합의),’ ‘스몰딜(부분적 합의),’ ‘마이크로딜(미미한 합의),’ ‘노딜(합의 부재)’ 등으로 결과를 예상했는데, 유력하게 점쳐진 것이 ‘스몰딜’이었다. 북한이 쉽게 핵포기를 결단할 리가 없다는 이유로 ‘빅딜’은 일찌감치 제외되었고, 두 정상 모두가 빈손 귀국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에 ‘마이크로딜’과 ‘노딜’도 제외되었다. 결국 ‘스몰딜’을 예상한 것은 합리적 추론의 결과였지만, 트럼프는 이 예상을 깨고 ‘노딜’을 선언하고 하노이를 떠났다.

합의가 불발된 근본 이유는 받을 것과 줄 것 간의 불비례성이다. 북한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유예, 핵실험장 폐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일부 시설 해체 등의 기존 조치들에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 및 폐쇄를 추가하는 선에서 제재 ‘해제’를 받아내려 했다. 결렬 후 북한은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제재의 전면 해제가 아닌 일부 해제였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전면 해제 요구’를 부인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실상의 전면 해제를 요구한 것이었다. 어쨌든 미국이 제제 ‘완화’만을 허용하면서 영변 이외의 핵시설에 대한 신고와 사찰도 필요하다는 ‘영변+알파’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합의는 무산되었다.

떠나지 않는 ‘조선반도 비핵화’ 망령

회담을 통해 확인된 교훈들은 결코 적지 않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여전히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을 고수하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조선반도 비핵화’란 용어는 한국에 미 전술핵이 배치되어 있던 시기동안 김일성 주석이 전술핵 철수를 요구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하여 김정일 시대에는 미 핵우산, 연합훈련, 전략자산 전개 등 북한에 대한 모든 위협이 제거되어야 북한도 비핵화를 검토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2011년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도 “조선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같은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실제로 2018년 4·27 판문점선언, 6·12 미북 정상회담의 공동발표문, 9·19 평양 공동선언 등 그 어디에도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을 허용한 적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핵 비핵화’와 ‘조선반도 비핵화’의 차이점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북한에 놀아나게 된다는 전문가들의 거듭된 충언에 귀를 막은 채,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라는 거두절미 표현으로 여론몰이를 해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서명하면서도 그것이 왜 문제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 ‘조선반도 비핵화’의 망령은 이번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어김없이 힘을 발휘했다.

북한의 두 단계 핵협상 목표

회담의 실패를 통해 북한의 핵협상 목표도 재확인되었다. 평양 당국이 수십년 동안 뇌까려 온 ‘조선반도 비핵화,’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거듭 확인 해온 ‘핵보유 기정사실화,’ 북한 헌법과 핵보유법이 명시하고 있는 핵보유의 정당성 등을 종합할 때, 북한이 처음부터 두 단계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2018년 신년사를 통해 ‘비핵화’ 화두를 던진 것은 협상국면을 열기 위한 미끼였다. 첫 단계에서는 핵능력의 일부만을 포기하는 것으로 미국으로부터 대북제재 해제와 함께 종전선언 등 한미동맹을 이완시키는 단초들을 얻어내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핵지렛대를 계속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70년 ‘숙원사업’이자 최대의 대남전략 목표인 ‘미국의 한반도 이탈’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이 숙원사업이 성취되지 않는 한 완전한 비핵화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조선반도 비핵화’의 골자이다.

북한은 첫 단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영변핵 포기’라는 카드로 대북제재 해제를 얻어내려 했다. 물론 이전에 북한이 취한 조치들이 있지만, 모두가 실질적 핵폐기와는 관련성이 적은 주변적 조치들이다. 유예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재개할 수 있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도 관련국의 입회도 없이 스스로 행한 셀프 폐쇄로서 단순히 입구만 폐쇄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일부시설에 대한 해체 문제도 그렇다. 약속한 유관국 전문가의 참관은 없었고 해체는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다.

그래서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의 중심 화두는 북한의 영변핵 포기에 대해 미국이 재제를 풀어줄 것인가에 집중되었고, 영변 이외 지역에도 농축시설을 포함한 중요한 핵시설들이 산재하고 있음을 의식한 미국이 ‘사실상의 전면 해제’를 거부함으로써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미국이 영변 이외 시설로 지목한 것중 핵심은 당연히 농축시설인데, 북한이 이런 시설을 고수하겠다는 것은 마지막까지 우라늄탄 제조 기반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대북제재의 전면 해제와 부분 해제

합의문 불발 직후 비난전이 있었지만 향후 핵대화의 모멘텀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작용한 탓에 양측 모두 자극적인 표현은 피했다.그럼에도 북한식 말장난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결렬 직후인 2월 28일 오후 트럼프가 북한이 영변 이외의 핵시설을 공개할 의향이 없는 상태에서 영변핵 양보만으로 전면적 제재 해제를 요구했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았다고 했고, 이에 대해 29일 새벽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제재의 전면 해제가 아닌 일부 해제였다. 유엔 제재 11건 중 2016~2017년에 채택된 5건의 제재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해제하라고 요구했을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미국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라는 가벼운 협박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전면 해제에 가까운 요구를 한 것이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2006년부터 2017 사이에 유엔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는 모두 11건이지만, 2016년 이전에 채택된 5건(1695, 1718, 1874, 2087, 2094)은 대량살상무기(WMD)와 무기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이며, 외화 가득, 석유 확보 등 북한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제재를 담아내지 않았다. 이에 비해 2016년 이후 채택된 6건 중 북한이 해제를 요구한 5건(2270, 2321, 2371, 2375, 2397)은 석탄, 철광석 등 주요광물 수출, 북한의 석유 및 정유제품 수입, 대북 투자, 해외 노동자 송출 등을 금지 또는 제한한 것으로써 당연히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면서 북한정권의 ‘목줄’을 압박하는 것들이다. 즉, 북한의 요구대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제재들을 해제한다면 제재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되며, 국제사회가 힘들게 구축한 대북제재 체제(sanction regime)는 사실상 붕괴된 것이 되고 만다.

너무나 가볍게 다루어진 종전선언 문제

이번 회담에서 연락사무소 교환 개설, 종전선언 등에 대해서는 양 정상 간 상당한 교감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대북협상에서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동맹국을 배려하기보다는 눈앞의 금전적 국익과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급급해 하는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또한 방송에 출연한 패널리스트들은 종전선언을 당연시하면서 한국을 배제한 채 미북 간에만 합의되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한국이 동참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 한국의 정체성과 안보가 흔들리는 것으로 보는 국민의 우려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논의였다.

북한의 선의(善意)를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나 이에 동조하는 일부 언론과는 달리 한국에는 남한의 친북화와 동맹해체를 통해 궁극적으로 연방제 통일을 적화통일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평양이 가진 불변의 대남전략인 것으로 믿는 국민과 전문가가 적지 않다. 이들에게 있어 종전선언이란 ‘지옥문’을 여는 매우 위험한 수순이다. 이들에게 있어 종전선언은 성급한 평화의 환상, 한국사회의 좌우 대결 심화, 평화협정, 동맹해체, 안보의식 붕괴 등으로 가는 출입구이고, 이는 결국 연방제 통일과 적화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정부 그리고 한국의 좌성향 인사들이 종전선언을 당연시하는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북한이 더 이상 도발할 이유가 없고 남북이 체제대결을 벌일 필요가 없는 나라로 변화하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다.

‘두 개의 미국’을 확인시켜 준 정상회담

트럼프 대통령이 ‘노딜’을 택한 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었다. 지금 미국에는 ‘두 개의 미국’이 존재한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휘하는 행정부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의 대외기조에 반대하는 의회, 전문가 그리고 여론이다. 두 번째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업주의를 앞세우고 동맹을 훼손하는 것을 우려하며, 북한이 핵을 지렛대로 삼아 동맹 이간을 시도하고 있다는 경고를 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은 미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경박한’ 동맹정책을 견제함에 있어 공화당과 민주당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주한미군을 2만2천 명 미만으로 감축하지 못하게 한 ‘국방수권법,’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안보협력 강화를 촉구한 ‘아시아안심법(ARIA),’ 미국 관리들과 타이완 지도자들 간의 교류를 촉구한 ‘타이완여행법’ 등은 2018년에 만들어진 공화-민주 양당의 합작품이다. 지난 2월 일단의 상원의원들이 백악관에 보낸 서한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의 동맹이간 술책에 놀아나지 말라”는 취지의 경고를 보낸 것도 공화당의 크우즈(Ted Cruz 텍사스) 의원과 민주당의 메넨데즈(Robert Menendez 뉴저지) 의원이 합작한 것이었다. 이 서한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한국이 성급하게 대북제재를 해제하면 동맹에 긴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문재인 대통령를 닮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의 미 대선개입 의혹으로 국내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려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더 주고 덜 받는’ 합의를 하고 귀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랬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야합과 졸속’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빈손 귀국에 대해 적지 않은 양당 의원들이 “차라리 잘했다”며 박수를 보낸 것의 의미를 새되겨 봐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와 방송언론의 역할

이번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히 어느 수준의 합의로 북한 비핵화에 얼마만큼의 진전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핵 문제가 많은 유관국이 있는 국제적 이슈이고 한국의 국익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말도도 많은 관전 포인트들이 있었다. 합의 수준에 따른 북한 비핵화 전망과 과제, 합의가 커버하지 못한 북한 핵시설과 핵능력에 대한 분석과 안보위협,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이전까지 한국의 안보대책, 한국의 대북정책에서 참고해야 할 사항, 미 의회 반응 및 조야의 동향과 트럼프 대통령의 향후 북핵 기조, 중국의 반응과 향후 한중관계에 미칠 영향, 북핵 문제에 대한 미중 협력 가능성 진단, 북-베트남 관계 개선이 한-베트남 관계에 미칠 영향 등 언론들이 다루어 마땅한 고난도 화두들이 수두룩했다.

그럼에도 방송들은 이런 논의를 거의 외면했고, 김정은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철도여행이 어떻느니, 어디에서 내려 담배를 피웠느니,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수행했느니, 햄버거를 시켜 먹었느니 등 본질과 거리가 있는 스케치에 집중했다. 회담이 시작되면서부터도 악수를 몇초 동안 했느니, 사각테이블이 아닌 원탁에서 식사를 했느니, 김여정이 김영철의 어깨를 밀쳤느니 하는 자질구레한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렇듯 한국의 방송들이 ‘김정은 띄워주기’에 매달리는 동안, 정책, 전략, 국익 향배 등 국민이 우선적으로 들어야 할 중요한 얘기들은 상당 부분 실종되었다. 창피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대북·북핵·동맹정책 반추하는 계기 삼아야

이제 한국 정부에게는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대북기조, 북핵정책, 안보정책 등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며 개선할 것은 개선하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의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대북지원에만 속도를 내려고 안달한 것이 바람직했는지, 스스로 군사역량을 줄이는 자해적(自害的) 국방개혁을 추진하고 유사시 군의 대응역량을 제약하는 군사합의에 서명해준 것이 합당했는지 등을 되돌아봐야 한다. ‘두 번째 미국’의 존재를 외면한 채 트럼프 대통령하고만 입을 맞추었다고 해서 “그봐라 미국도 우리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지 않느냐” 또는 “동맹이 견고하지 않느냐”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되돌아 봐야 한다.

모든 것에 앞서, 정부는 북한이 핵능력의 일부만을 내어주는 ‘살라미’ 협상전술을 통해 동맹 이간, 미군 철수 등을 노릴 것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핵보유국 지위를 붙들고 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충정어린 예고에 귀를 막은 채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며 국민을 속여온 부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거짓말을 주도한 인사에게는 응분의 책임도 물어야 하며, 이제부터라도 북한의 속내를 애써 미화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국민에게 알리면서 장기 협상전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의 핵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는 남북대화와 상생 노력을 중단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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