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민수용’과 ‘핵개발’ 자금 구별 어려워...北, 사실상 제재 전면완화 요구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1일 새벽 기자회견으로 미북 간 입장차가 명확히 드러났다.

리 외무상은 이날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개최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특히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 제재해제가 아닌 일부해제 구체적으로 유엔 제재결의 11건 중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었다”며 “이것은 조미 양국사의 현 신뢰수준을 놓고 봤을 때 현 단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리 외무상이 언급한 5건의 대북제재는 2016년에 채택된 2270호와 2321호, 2017년에 채택된 2371호와 2375호, 2397호다. 이들 5개 제재들의 핵심은 북한의 돈줄을 옥죄는 것이다.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에 취해졌으며 전례 없이 강한 조치들이 포함돼 있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 2270호는 민생 목적을 제외한 북한의 석탄 수출을 금지해 북한의 최대 외화수입원을 줄이고자 했다. 그러나 ‘민생목적’이라는 모호한 예외 규정 때문에 석탄 수출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다음 결의인 2321호를 통해 석탄 수출량에 제한을 가했다. 이 밖에 동, 니켈, 은, 아연 등 광물과 북한산 헬리콥터와 선박 등의 판매도 금지해 추가적으로 북한의 외화 수입 근절에 초점을 맞췄다.

2017년 8월에 통과된 대북결의 2371호는 북한산 석탄 수출을 전면 금지했고 철, 철광석, 해산물도 금수품으로 지정했다. 이들 품목들은 북한의 연 수출 1/3을 차지했다.

한 달 뒤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2375호는 북한의 5대 수출품목 중 2개를 차지하는 섬유 관련 제품의 수출을 금지했다. 또한 북한이 구매할 수 있는 원유와 정제유에 사상 처음으로 상한선을 가했다.

2017년 12월 가장 마지막으로 부과된 결의 2397호는 북한산 식품과 농산물, 전기장치의 수출을 금지해 사실상 북한의 주요 수출 품목을 다 막았다. 또한 북한의 주요 외화 수입원 중의 하나로 지적돼 온 해외 북한 노동자들도 2019년 말까지 모두 귀환시켜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처럼 리 외무상이 주장한 ‘일부 제재 해제’는 사실상 전면적 제재해제를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북한 경제전문가 윌리엄 브라운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2016년과 2017년에 부과된 5건의 제재가 사실상 북한을 아프게 한 유일한 조치들이었다고 평가했다. 브라운 교수는 “북한에 이처럼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던 건 중국이 본격적으로 동참했기 때문”이라며 “중국이 석탄 등 북한산 광물 수입을 중단하고 북한의 노동력을 이용한 섬유 관련 제품 등을 더 이상 구매하지 않은 요인이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북제재 효과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2017년 이후 북한은 최대 무역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액이 급감하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는 지난해 북한의 대중국 수출액이 2억 1000만 달러라고 밝혔는데 이는 1억 6000만 달러를 기록했던 2001년 이래 가장 적은 액수다. 브라운 교수는 “북한에 제재가 계속되면 외화 수입이 줄어들어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리 외무상이 ‘일부 제재 해제’와 관련해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지만 기본적으로 제재는 북한정권의 외화 수입을 줄이면서 핵개발 등을 막고자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으로 유입되는 현금은 정권의 핵 개발 자금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해 9월 대북제재를 주제로 열린 회의에서 제재의 목적을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자금과 물품을 끊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과 28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영변 핵시설보다 플러스 알파를 원했다”며 “(그간 협상 때) 나오지 않은 것 중에 우리가 발견한 것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도 있었다”고 했다. ‘추가 발견한 시설이 우라늄 농축 시설 같은 것이냐’는 질문엔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고 했다. 회견에 동석한 폼페이오 장관도 “영변 핵시설 외에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며 “미사일, 핵탄두와 무기 체계가 빠져서 합의를 못 했다. (핵)목록 신고 작성 등에 합의를 못 했다”고 했다. 미측이 영변 외 다른 우라늄 농축시설의 신고, 폐기, 검증까지 목표로 삼고 북한을 압박했다는 뜻이다.

리 외무상도 이날 새벽 기자회견에서 “회담 과정에 미국 측은 영변지구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으며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다른 우라늄 농축 시설’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알져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동안 미국 조야에선 영변 외 우라늄 농축 시설이 여러 개 존재한다는 사실이 널리 인식돼 왔다. 대표적인 곳은 평양 인근 남포시 천리마구역 강선이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작년 6월 “미 정보 당국이 2010년 농축 규모가 영변의 2배인 강선의 비밀 우라늄 시설을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이날 협상에서 영변과 강선 외 또 다른 시설을 지적했을 가능성도 크다. 작년 7월 미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정보 당국이 영변, 강선 외 세 번째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도 탐지해 냈다”고 전했다. 지난달 일본 아사히 신문은 전직 청와대 관리를 인용해 “북한이 최대 10곳에 이르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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