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속임수 들통나 美-北 결렬...한국 좌파 덩달아 '지붕 쳐다보기'
언론의 잔치 분위기도 망신살...자유 우파, 안보 컨센서스 이룩해야

 류근일 언론인

미-북 하노이 회담 결렬 후에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한 마디로 “영변 핵시설 외에도 우라늄 핵시설이 더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것도 해체해야만 제재완화 해주겠다고 했더니 김정은이 그건 못하겠다고 해서 합의문 서명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김정은은 결국 미국에 “이것밖에 없다”며 거짓말을 한 것이고, 이에 대해 미국은 “이거 왜 이러시나, 아 어디어디에 우라늄 핵시설 있잖아...?”라고 들이대자 김정은이 할 말을 잃은 셈이다. 속임수의 한계였고, 핵보유국 인정받기의 일단 좌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엔 국내정치적 필요에서 이른바 스몰 딜을 할 것이란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그는 최소한 중간치(미디움) 정도는 받아내야 제재완화를 해 줄 수 있다는 쪽으로 결정한 것 같다. 그리고 김정은은 이런 합의를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시종 온건하고 정중한 용어를 구사하며 “미-북 관계는 여전히 좋다”는 식으로 미화하려고 애썼다. 협상가 트럼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수주일 안으로라도 양측 관계가 다시 재개되기를 희망했다. 트럼프 입장에선 게임은 끝난 게 아니란 뜻이다. 언제라도 이 결렬은 회담 재개로 반전할 수 있다.

문제는 김정은 입장에서 더 많은 핵 폐기 양보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핵을 더 폐기하면 자신이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될 수 있다고 염려할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끝내 거부해서 제재가 지속되면 북한 경제는 파국에 직면할 것이다. 진퇴양난이다. 이런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은 절대군주 김정은 ‘신통력’의 권위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늘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아쉬운 쪽은 김정은이지 자신이 아니란 이야기다. 과히 틀리지 않은 말일 듯싶다. 누가 견디고 누가 못 견딜지 두고 보자는 것이다. 김정은은 베트남식 개방은 자신의 ‘백두혈통’ 신정(神政) 체제의 쇠망의 시작이라고 볼 것이기도 하다. 그에겐 마땅한 돌파구가 딱히 없는 셈이다. 남한 운동권 정권도 다리에서 기운이 싹 빠져나가는 느낌일 것이다. ‘신(新)한반도 체제’ 선언을 하려던 3. 1절 경축사부터 부랴부랴 수정해야 할 판이다.

더 우습게 된 건 ‘남조선 미디어’들이다. “안전(眼前)에 신천지가 전개 되도다”라는 식으로 24시간 생중계를 한다, 토크쇼를 한다, 발광들을 하더니 머쓱하게 됐다. 미국 미디어들은 일제히 비판적 논평들을 내는데 오히려 ‘남조선 미디어’들은 하나같이 관영매체들처럼 “잔치, 잔치 열렸네“라며 깨춤을 췄으니 이게 대체 무슨 ‘야청 하늘의 날벼락’인가 싶을 것이다.

트럼프를 이런 결정으로 몰아넣은 건 그 자신이기 전에 미국 사회의 집단지성이 아닐까 싶다. 섣부른 합의는 자신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하는 중압감. 이에 비한다면 한국의 운동권 정권은 너무 너무 자신만만하다. 아니, 일종의 확증편향에 빠져있는 것 같다. 이런 못 말릴 이념집단에는 다른 주장은 도무지 먹히질 않는다. 남 아닌 본인들을 위해 결코 좋은 게 아니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라는 거짓말도 미국을 끝내 속일 수는 없었다.

쇼는 그러나 계속될 것이다.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이 나쁘게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시태를 전망하는 게 특히 안보에는 유익할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지 한국 대통령이 아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는 한국의 이익쯤은 희생시킬 수 있다. 그에게 산타 클로스를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 운명의 향방은 우리 책임이지 동네 아저씨 책임이 아니다. 자유 한국인들의 냉철한 시선이 절실한 때다.

끝으로 한 가지 더. 자유우파와 자유한국당의 입장 정리다. 안보에 있어서만은 그런대로 컨센서스를 이룩해야 한다. 초기엔 의견의 다양성을 보이다가도 일정한 단계에선 바이파티산(양당일치) 견해를 만드는 게 안보 선진국의 방식이다. 우리 경우도 적어도 자유우파 내부에선 컨센서스를 이룩할 수 있어야 한다.

핵을 이고 살 수는 없다. 이 엄혹한 당위 앞에서 자유우파 내부마저 사색당쟁의 늪에 빠진다면 그건 자해이고 자멸이다. 자유 우파의 해당 전문 지식인들과 정책수립가들 그리고 싱크 탱크가 빠른 시일 내에 통일된 견해를 마련했으면 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류근일(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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