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괴짜 경제학’이라는 책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티븐 래빗은 천재와 괴짜라는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경제학자다. 그가 세상에 던진 질문들은 공통점이 있다. 죄다 기상천외한데다 얼핏 봐서는 경제와 완벽하게 무관하게 들리는 얘기들뿐이라 이 사람이 진짜 경제학자 맞는지 프로필을 확인하게 만들 지경이다.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되었지만 그는 경제학은 잘 모른다고 태연하게 털어놓는다. 대신 그가 제기한 질문들은 하나같이 흥미롭다 ‘마약 판매상들은 왜 어머니와 함께 살까’ 같은 제목의 글은 읽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선정적이다. ‘뉴욕 시내 개똥 제거 계획’은 뉴욕과 개똥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책장을 펼치게 만든다. 물론 논란과 반박도 뜨겁다. 그 중 가장 ‘핫’했던 이슈가 ‘낙태와 합법화와 범죄율 감소의 연관성’을 다룬, ‘그 많던 범죄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글이다. 글이 나온 배경은 이렇다.

1995년 범죄학자 제임스 폭스는 미 법무장관에게 향후 10대 청소년 범죄가 급증하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보고서를 제출한다. 보고서 안에는 두 종류의 시나리오가 들어있었는데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10년 안에 청소년의 살인율이 15% 정도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었고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예상 수치가 그 두 배였다. 정치학자들과 미래학자들 대부분이 제임스 폭스의 보고서에 동의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결연한 표정으로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더 나쁘냐와 덜 나쁘냐의 둘 밖에 없는 미래 예축이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살인 범죄율이 증가하기는커녕 감소하기 시작했고 2000년에는 3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실패한 예측을 만회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내놓은 답변은 총기 규제, 경기 회복, 새로운 치안 정책이 살인율을 감소시켰다는 설명이었다. 전문가들의 자존심 만회를 공범이었던 언론이 지원했고 이내 그것들은 사회통념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그게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근거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스티븐 래빗이 지목한 원인은 그때까지 누구도 생각 못했고 단 한 명도 원인으로 꼽은 적이 없는 정말이지 기상천외한 주장이었다.

미국 낙태 허용의 역사

1900년 무렵 미국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낙태가 불법이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일부 주에서 낙태 시술이 허용된다. 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신체적 위험 등이 그 이유였다. 1970년 들어 다섯 개의 주에서 낙태가 합법화되었고 1973년 1월 미국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낙태 시술이 미국 전역에서 전면 합법화된다. 여기까지는 그저 흔한 낙태 합법화의 연대기에 불과하다. 여성의 투표권 쟁취 역사만큼이나 따분한 이 사실은 스티븐 래빗이 개입하는 순간 자극적인 논쟁으로 돌변한다. 낙태 합법화에 범죄율 증감이라는 이질(異質)의 요소를 접목해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결론을 도출해 낸 것이다.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낙태 합법화와 범죄율 감소의 상관관계

미국연방법원의 판결이 있고 나서 첫 해에 75만 명의 여성이 낙태 시술을 받았다. 네 명의 신생아 중 한 명꼴이었다. 1980년대에는 이 숫자가 160만 명을 돌파했고 이 수치는 이후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는 것은 이때부터다. 1990년대 초, 그러니까 미국연방법원의 판결 직후 출생한 아이들이 10대 후반에 이른 시기에 범죄율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기는 일반적으로 청소년의 범죄성향이 최고조에 달하는 연령대다. 스티븐 래빗의 설명은 이렇다. 미혼모나 10대 임산부, 가난한 여성이 아이를 낳을 경우 이 아이들이 빈곤한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평균보다 50%나 높다. 편부모 슬하에서 성장할 가능성도 평균보다 60% 이상이다. 성장기의 가난과 편부모 슬하가 결합될 경우 아이가 자라 범죄자가 될 확률은 2배 정도 높아진다. 결국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아이들이, 엄마의 선택으로 낙태라는 과정을 통해 세상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범죄율을 낮췄다는 이야기다. 낙태의 합법화가 원치 않는 출산을 줄였고 원치 않는 출산은 범죄율을 높이니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을 낮췄다는 참 불편한 결론이었다. 파장은 컸다. 소생은 멜서스의 참신한 재탕 정도로 생각했지만 미국에서는 아니었다. 인종차별반대주의자들은 낙태 여성 중 흑인의 비율이 높은 것을 강조하며 스티븐 래빗을 kkk단의 후예로 몰아 세웠다. 낙태 합법화와 범죄율에 대한 스티븐 래빗의 가설을 뒤집기 위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수긍하는 사람과 반박하는 사람 모두 동의하는 지점이 있으니 낙태와 범죄율 감소가 인과관계는 아니더라도 상관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상관관계는 두 가지 변수가 함께 움직이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통계학 용어로 스티븐 래빗이 자주 구사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어쩌면 진실, 설훈의 설화(舌禍)

민주당 설훈 의원의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혀로 훈장질한다고 해서 ‘舌訓’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설훈의 발언은 정부, 여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이 급격한 하락을 보이는 가운데 나왔다. 설훈은 “특별히 20대 남성이 우리 당에 대한 지지가 낮은데 20대가 교육받던 시기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시절이다. 그 시절의 교육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야 3당은 바로 논평을 쏟아냈다. “국민 개돼지 발언을 능가하는 역대 최악 망언(妄言)”, “청년들의 건전한 불만을 전 정권의 교육 탓으로 매몰시키는 참으로 비열한 언사”, “청년 실업 등으로 인한 20대 지지율 하락에 반성하기는커녕 되지도 않는 말장난”으로 설훈을 비판했다. 한 일간지는 이와 관련해서 ‘국민을 바보로 안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식상하다. 너무 빤해서 하품이 난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쯤에서 스티븐 래빗 이야기를 왜 그렇게나 길게 했나 이유를 짐작하실 것이다. 지지율 하락과 교육의 상관관계다. 원래 그런 의도 절대 아니었고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비슷한 것을 잡은 것이기는 하지만 설훈의 발언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설훈의 발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맙게도, 설훈을 구해보겠다고 나선 같은 당 홍익표 의원의 발언은 이를 보충해준다. “왜 20대가 가장 보수적이냐. 물론 그 당시에 연평도 포격, 천안함 사건 등등으로 인해서 당시에 젊은 층이 북한에 대한 충격을 받은 것도 있었지만, 그 당시의 학교 교육이라는 것은 거의 반공교육이었다. 거의 60, 70년대 박정희 시대를 방불케 하는 반공 교육으로 그 아이들에게 적대의식을 심어준 것이다.”

홍익표의 발언은 일부 맞고 일부 틀리다. 20대 남성들은 자신들을 천안함 세대라고 생각한다.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은 그 시기 청소년기를 보냈거나 군복무를 했던 지금의 20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남자들은 보통 군대 가서 북한군과 마주 보고 나면 생각이 많이 달라진다. 누가 적이고 누가 동맹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걸 지금의 20대는 실감나게 겪었다.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한 무차별 포격과 자기 혹은 형 또래의 수병들이 참혹하게 죽어간 폭침 사건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정상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했고 그게 자연스럽게 반공교육이 됐다. 이게 맞는 부분이다. 틀린 부분은 당시 교육이 반공교육이었다는 주장이다. 전교조가 학교를 장악하고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대세였던 시기에 학교에서 반공교육을 했다고? 지나가던 빨갱이도 웃을 소리다.

지지율 하락은 제대로 된 교육 덕분

스티븐 래빗의 관점에서 설훈과 홍익표에게 이런 이야기 해주고 싶다. 다 맞는 말씀이라고. 20대 남성의 정부, 여당 지지율이 낮은 것은 그나마 20대가 연평도, 천안함을 겪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고. 현실 경제를 난폭하게 유린하는 정책으로 청년들의 삶을 초토화 시키면서 북한 문제만 나오면 어떻게든 감싸 안고 변호하고 퍼주지 못해 안달인 정권을 보면서 짜증과 분노가 극에 달한 거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대북관계에 올인하는 모습으로 계속 나갈 경우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아, 한 가지가 더 있다. 비록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떨어질지 몰라도 그게 보수 진영으로는 안 갈 테니 그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떨어진 지지율을 받아먹을 만큼 보수는 영리하지도, 현명하지도, 전략적이지도 않다고. 근데 말하다가 왜 갑자기 답답해지지?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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