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코프 일기로 본 북한역사 #18, 대의원 입후보자 포스터, 노동당 교재까지 소련군정이 검열
스티코프 일기로 본 북한역사 #18, 대의원 입후보자 포스터, 노동당 교재까지 소련군정이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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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3.04 08:44:42
  • 최종수정 2019.03.0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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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정은 북한에 소위 '민주기지'라는 이름의 공산 위성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정치, 사회, 군부, 문화단체, 종교단체에 이르기까지 소련과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세력들을 심고, 이들을 철저히 감시했다. 이번호 스티코프 일기는 소련군정이 노동당 교재, 대의원 입후보자 포스터, 종교단체의 지도자 공작 등을 자신이 직접 지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편집자 주] 티렌티 포미치 스티코프(Terenti Fomitch Stykov), 1907년 2월 28일부터 1964년 10월 25일까지 살았던 소련의 군인. 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스티코프가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남긴 일기를 발굴해 연구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스티코프의 일기를 통해 드러난 소련의 '북한 김일성 세우기 프로젝트'를 2004년 12월 30일 책으로 만들어 중요한 한국근현대사 자료를 보충했다. 전 교수의 '스티코프 일기' 연구는 미국과 일본에 집중됐던 해외소재 한국사 자료가 서유럽과 동유럽, 러시아 지역까지 확대됐다는 평가를 받는 연구 업적이다. 소련군 정치장교였던 스티코프가 남긴 일기는 단순히 개인사를 넘어 소련의 한반도 정책과 1945년 해방 직후 남북한의 정치, 경제 상황, 한국전쟁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적 원천이 되고 있다. 특히 스티코프를 정점으로 하는 북한 주둔 소련군사령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사태전개에도 깊게 개입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스티코프의 일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소련공산당이 38선 이북 지역에 소련을 추종하는 공산 위성정권을 세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적나라하게 개입하여 괴뢰정부를 세웠는지를 입증하는 내용증명이기 때문이다. 스티코프는 일기 형식의 비망록을 통해 소련공산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정해준 사실, 북한 헌법을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이 직접 만들어준 사실, 심지어 북한의 역사를 기술할 때 지침이 되도록 역사책의 목차까지 짜 준 사실, 김일성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북한정권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내각의 장차관은 물론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회의 대의원을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의 재가를 얻어 정한 사실 등을 적어놓았다. 따라서 이 자료를 독파하면 북한이 얼마나 소련을 추종하는 괴뢰집단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내용증명이다.

절판이 되어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스티코프 일기'를 펜앤드마이크(PenN)는 전 교수의 해제부터 책 그대로를 온라인 공간으로 옮긴다. 다만 책의 제목이 '쉬띄꼬프의 일기'로 되어 있는 것을 요즘 사용하는 용어로 바꾸어 '스티코프 일기'로 바꾸었다. 게재 순서는 전 교수의 해제를 시작으로 스티코프의 일기를 1946년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를 제1부, 1946년 12월 2일부터 1947년 2월 4일까지를 제2부, 1947년 7월 7일부터 10월 4일까지를 제3부, 1948년 7월 26일부터 10월 2일까지를 제4부로 편집하고 있는 책의 흐름을 따를 예정이다. 책 후반부에 별도로 첨부돼 있는 1946년 9월 28일 여운형의 북조선 방문에 대한 스티코프의 보고나 소련 군인으로 1945년 해방 후 평양 소련군정에서 소장 계급으로 민정 사령관을 지냈던 안드레이 알렉세예비치 로마넨코(Andrei Alekseevich Romanenko)와 여운형의 대화 기록도 순서에 따라 게재할 예정이다.

쉬띄꼬프 일기 2부
(1944. 12. 2~1947. 2. 4)

[1947년 1월 9일부터 2월 4일까지]

 

1947년 1월 9일

군사재판소장 멜리니꼬프와 대화하다. 북조선에서 살인 및 강도 혐의로 기소된 니꿀린 대위의 재심 요청을 기각하다. 

치스챠꼬프와 체렌꼬프가 진남포항에 양곡을 하역하는 문제에 대해 보고하다. 증기선 '노보로씨이스끄'를 부두에 댈 수 없다고 한다. 그 배에 화물을 적재하지 말고 나진으로 출항시킬 것과, 그 대신에 증기선 '고골'에 화물을 적재하도록 요청하다.

로마넨꼬가 로동당의 현황과 입법기관에 대한 보고서를 전달하다. 지방자치기관의 선거에 대해 보고하다. 비공석적인 위원들을 조직하고 양원제를 도입하고자 한다.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들과 김규식 의장이 회담이 개최되다. 선거참여 문제와 김규식과 박헌영의 회담에 대해 대화하다.

고문들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다. 배급 상태가 나쁘다고 한다. 그들은 직급에 따른 배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정청 정원에 대해 논의하다.

로마넨꼬의 민정청 정원 규정에 대해 협의하다. 정원에 각도 고문을 포함시키라고 지시하다.

일시적인 보조금 지급 관련 보고서에 서명하다.

치스짜꼬프가 직접 전남포에 다녀오다. 얼음이 떠다녀 항구로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다. '노보로씨이스끄'선을 소금 선적을 위해 대련으로 출항시키라는 명령을 접수하다. '제스나'선의 갑판에 500톤의 냉동감자를 실을 수 있으며, '이이보스끄'선에 500톤을 더 선적할 수 있다. 

로동당 교재 발간 계획을 검토할 것을 지시하다.

 

1947년 1월 11일

1. 중앙위원회로 의사록을 발송하게 한다.

2. 조선인들에게 전리품 - 피복을 지급하라고 로마넨꼬에게 지시한다.

3. 포민을 호출하여 일본인 후송 진행 상황을 점검한다.

4. 업무 서류를 검토한다.

5. 대의원 입후보자들의 포스터를 검토한다.

로마넨꼬가 법령 초안에 대해 보고하다. 법령은 정부 수립 이전까지 효력을 지닌다.

선거는 평등 선거이다. 도지사, 군수, 면장, 리장을 선거하고 있다. 위원회는 하급기관에서 선출된 위원들로 구성된다. 선거위원회는 면장, 군수, 도지사 및 군정청 중앙선거위원회회에 의해 임명된다. 중앙검열위원회는 입법기관의 장이 임명한다. 19세부터 선거권을 갖는다. 입후보자 명단은 선거 15일 전까지 공개된다. 선거인 명부에 따라 투표한다. 50 퍼센트 이상을 득표한 자가 당선된다. 

1947년도 재정계획에 대해 검토하다.

고등교육성으로부터 통보받다.

까라바노프-꼬스또글로또프가 소련국립은행에서 수취한 4억5천만 엔을 조선인들에게 변환하는 것에 대해 보고하다.

 

1947년 1월 13일

민정청 사업 감사위원회를 조직한다.

소로낀과 가가찐을 호출하여 북조선 주재 소련민정청에 파견할 간부 문제를 협의한다.

조선인들에 대한 피복지급을 지시하는 군사평의회 결정 초안을 준비한다.

미소공동위원회 재개에 관한 기자회견 또는 성명서 발표 문제를 검토하다.

민간항공부의 이그나또프가 김일성을 태운 비행기가 흥남과 원산에 착륙했다고 보고하다.

고로빈이 1947년 1월 8일 현재 상황에 대한 미구노프의 전보에 대해 보고하다. 화물운반차 200대, 경자동차 8대를 적재하다. 나머지 경자동차 7대는 1월에 발송할 것이다. 2,720톤의 자동차용 벤진을 선박으로 수송하여 인민위원회에 전달하다. 안드레예프가 기름과 2000톤의 등유, 면직물 1,300,000m, 설탕 1,500톤을 운송해 오다.

 

1947년 1월 14일

치스짜꼬프가 북조선의 양곡문제에 대한 결정에 대해 보고하다. 노동자들에 대한 양곡배급 문제를 다룬 기사가 신문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소비조합과 임금에 대해 보고하다. 

메레츠꼬프와 만나다. 그는 북조선의 입법기관 조직 문제로 외무성의 말리끄(말리끄 야꼽 알렉산드로비치, 일본에 대한 연합국위원회의 정치고문, 소련 외무성 부상, 유엔 주재 소련 상임대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소련 대표 역임.)를 방문할 것이며, 인민위원 선거를 제안하겠다고 한다.

 

1947년 1월 17일

후르소프가 조선인 교사들의 파견 문제에 대해 보고하다.

 

1947년 1월 18일

꾸즈네초프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지원을 요청하다.

1. 경제계획 전문가들의 파견에 대해. 그는 결정서가 서명되었다고 알려주다.

2. 김일성종합대학에 강사들을 파견하는 문제에 대해. 지원을 약속하다.

3. 박헌영과 김일성을 위한 두 명의 비서들에 대해.

4. 조선인 의사들에 대해. 학업과 논문 제출을 위해 세 명의 의사들을 잔류시키다. 

 

1947년 1월 21일

니꼴라예프가 곡물 수송에 대해 보고하다. 강추위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다. 북조선으로부터 반출되는 전압기를 몹시 힘들게 수송하다. 병참관 빠블로프가 화물적재를 지도하기 위해 북조선에 도착하다.

레베제프가 보고하다. 남조선에서 두 명이 도착하다. 한명은 천도교에서 다른 한명은 로동당에서 오다.

천도교 대표는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 강비 문제로 북조선 천도교청우당 지도부와 회담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다.

이승만은 브라운과 김구가 심의한 전문을 보내오다. 이승만은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조직하자고 요구하다. 김구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도 있다. 

 

1947년 1월 23일

골로빈이 김일성대학에 파견할 강사들에 대해 보고하다.

북조선의 주요 인사들이 미국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하다.

 

1947년 1월 22일

외무성의 짜랍낀이 국제연합에 대한 정보와 하지 장군의 서한에 대한 우리 측 제안을 전해오다.

 

1947년 1월 28일

북조선 주재 소련민정청의 정원 규정에 대해 불가닌에게 보내는 전보 보고에 서명하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창설 기념일인 1947년 2월 8일에 기념식을 거행하도록 지시하다. 김일성이 조선의 정치정세와 당면 임무에 대한 보고를 하도록 지시하다. 

로마넨꼬가 1월 30일부로 자신이 말아온 직위에서 벗어난다고 알려오다. 그는 남조선에 대한 자료를 발송할 것이라고 한다. 그에게 1947년 2월 8일의 기념행사에 대해 준비할 것을 지시하다. 당증 발급을 위한 용지에 대해 통보하다.

 

1947년 2월 1일 

레베제프와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회 문서 준비 문제로 통화하다. 그는 대회에 참석할 정당들의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선출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두 개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각급 인민위원회 총회에서 선출하는 방안이고, 둘째는 정당들의 대표자들 중에서 선출하는 것이다. 나는 두 번째 방안에 동의하다. 각 정당에 대회에 참석할 자신의 대표자들을 파견할 권리를 부여하는데 동의하다. 

 

1947년 2월 2일

집에서 미소공동위원회 사업 재개에 대해 하지 장군에게 보내는 답장을 작성하다.

 

1947년 2월 3일

해주로 전화하여 박 베라(여성동맹위원장 박정애를 말한다.)가 출국했는지를 물어보다. 그녀는 아직 출국하지 않았고, 내일에나 출국이 가능할 것이라고 알려오다.

 

1947년 2월 4일

이그나찌예프와 박 베라가 비행기로 도착하다. 박 베라를 접견하고 그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시를 내리다. 또한 국제여성동맹 대회가 언제 어디서 개최될 것인가를 설명해 주다.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회 소집과 고나련된 자료들을 검토하다. 소로낀, 이그나찌예프, 표도로프, 마르모르쉬째인, 끄라프초프, 쉬찌닌(북조선 사법국 주재 소련군사령부 대표.)이 동석하다. 

1.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회 소집에 대한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결정서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결정서 

2. 대의원 선출절차

3. 의사일정

4. 대회 보고자들

5. 미소공동위원회 사업 재개에 대해 미소 양국 정부에 보내는 호소문 초안

6. 북조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권한

7. 북조선인민회의에 대한 규정, 북조선인민회의 의사일정 

[#19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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