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범 칼럼] 예산으로 표(票)를 사는 정권의 독선
[김행범 칼럼] 예산으로 표(票)를 사는 정권의 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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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타당성(예타) 심사는 사전 남발로 인한 예산 낭비 막으려는 제도
이명박 정부, 법개정 통해 4대강 사업 예타 면제...당시 진보 단체 극렬 비난
文정부, 예타면제 '추상적' '정치적' 남용...표 구걸하는 예산 던져주기하면서도 자신은 정의롭다는 '뻔뻔함'
정식 타당성 검증의 시급한 대상은 文대통령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정부 예산결정에서 예비타당성(‘예타’) 심사는 본격적 타당도 조사의 필요성 여부를 사전에 판단하여 사업 남발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으려는 제도이다. 따라서 관련 부처가 수행하던 기존의 타당성 조사와는 달리 기재부가 수행한다. 비용편익분석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 분석과, 형평성•정치성을 고려하는 정책적 분석이 중요 내용이 된다. 이 두 결과를 총괄하는 종합평가에서 사업의 예비 타당성이 판정된다.

일정 규모이상의 사업(총사업비 500억 이상이고 국가 재정 지원이 300억 이상인 신규 사업으로 건설공사를 포함되거나 사회복지, 보건, 노동, 문화 및 관광 등)은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국가재정법 38조 ①항). 그런데 예타를 거치지 않을 수 있는(‘예타 면제’) 여지도 남겨 두었다(국가재정법 38조 ②항). 안보, 남북교류, 재난복구, 재난 예방을 위한 사업으로 국회소관위의 동의를 받은 경우,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 상황에 대응... 등의 경우에는 예타를 면제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제한적으로 구사되어야 할 제도이다.

예타 면제의 가장 극적인 예는 이명박 정부 때의 소위 4대강 사업이었다. 당시에는 국가재정법 ‘시행령’에서 이 예타 면제 사유를 규정했었는데 거기서 규정된 이 사업과 가장 가까운 사유는 ‘재해복구 지원’이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은 ‘재난 복구’ 사업이 아니라 ‘재난 예방’ 사업이었기 때문에 그 규정만으로는 예타 면제로 빠져 나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명박 정부는 먼저 이 시행령을 ‘재해예방•복구 지원’으로 개정하여 재난 예방 사업의 근거를 만들었다(2009. 3월). 그 후 이 개정된 시행령에 의존해 4대강 사업은 예타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때 지금의 여당 및 4대강 정책을 반대하던 진보 단체들은 이를 극렬히 비난했다.

그 후 박근혜 정부 시기에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및 예타 면제에 반발심이 많았던 여야 국회는 정부가 시행령 개정만으로 예타 면제를 못하도록 예타 제외 사유를 본법인 국가재정법에 직접 규정하는 방식으로 개정했다(2014.1.1). 이리하여 그 부분의 현행 규정은 “재난예방을 위하여 시급한 추진이 필요한 사업으로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를 받은 사업”으로 정해졌다. 즉, 예타 면제를 할 수 있는 항목 중 ‘재난예방’을 위한 사업을 포함시키되 이 사유로 예타를 면제받는 데 국회상임위의 동의까지 요하게 한 것이다. 엄밀히 본다면 이 항목에 대해서만 이런 강한 족쇄를 채운 입법 방식은 법령의 형평성에서 충분히 문제될 수도 있다. 이 기이한 현행 법령은 입법가들이 이명박 정부가 재난 예방이란 이름으로 4대강사업을 예타 면제한 것을 사후적으로나마 강력하게 부정하고 싶었음을 함축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문재인의 예타 면제 남용은 특이하다. 첫째, 예타 면제 사유가 너무 포괄적이다. ‘재해 예방’과 근거 마련을 위해 이명박 정부가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이를 세심하게 시도하는 고지식한 수고를 거친 것에 비하면, 문재인은 ‘지역 균형’이란 추상적 재량 개념에 근거해 포괄적으로 예타 면제를 밀어 붙였다. 수도권에 비해 형편이 상대적으로 낮은 여타의 모든 지방들에 던져주는 어떤 사업이라도 이 ‘지역균형 발전’이란 명분으로 포장될 수 있다.

둘째, 예타는 본격적인 타당도 조사가 아니라 예산 남용을 차단하는 예비 조사인데 그 속에 이미 경제적 합리성 외에 정치적 고려 요소가 들어있고 오히려 후자 부분의 비중이 더 높다. 그럼에도 이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고도 통과 못할, 그야말로 극히 불합리한 사업들이 예타 면제로 빠져 나가 예산을 배정받는 불합리가 생겨날 수 있다. 이 부분은 예타의 불합리성을 우려하는 가장 직접적 국면이다.

셋째, 예비타당성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다. 안보, 남북 교류,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경제 사회적 상황 등’의 포괄적 규정을 남용할 경우 앞으로 정권마다 마음만 먹으면 거의 모든 사업에 예타 면제를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예타 면제가 최대한 제한적으로 구사되어야 한다.

과거 정부들의 예타 면제 구사를 신랄하게 비난하던 세력이 집권하자 그동안 제한적으로 운용되도록 개정되어 온 현행 법령의 공백을 최대한 악용하여 선거용 돈 풀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올해 예산액 5%에 해당되는 금액을 앞으로 10년 동안 뿌리는 이 일을 대통령이 앞장서고, 그 뒤에서 경제부총리는 정치적 고려로 예타가 면제될 여지를 오히려 앞으로 더 확대하겠다고 나팔을 분다. 결국 자원을 합리성보다 정치로 배분할 몫을 높이고 이 특혜를 지역에 따라 차별적으로 베풂으로써 어느 지방이든 이 정권에 붙어야 떡을 얻어먹는다는 정치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이 정부 예타 면제 제도의 본질은 떡, 곧 지대(地代 rent)를 먼저 먹고 그 값은 나중에 표(票)로 갚으라는 것. 좌파정권에게 부패와 정의는 거의 동의어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통한 공공 투자에 대한 엄밀한 비용편익분석으로 정부 사업의 타당성이 평가된다는 것은 철없는 초급 사무관의 미신이다. 홍남기 부총리가 문재인의 예타 면제가 과거 정부와는 다르다며 치켜세우는 자화자찬은 이게 국무회의를 거쳤다는 것이다. 그 국무회의의 의장이 대통령이고 그의 뜻대로 상정된 예타인데 어느 국무위원이 반대할 수 있나. 이를 바로 잡아야 할 부처 장관인 홍남기 본인이 그 나팔수 노릇을 하는 마당에. 또 과거의 정식 타당성 검증의 예를 감안하면 대통령의 의중에 맞춘 결론을 낳기 위해 사업의 비용 및 효과의 항목 자체가 축소되거나 부풀려 질 수도 있다. 그 사업이 타당하게 결정되었는가를 감사원이 사후에 정밀 감사한다는 것 또한 못 믿을 일이 되었다. 감사원 자체가 권력의 해바라기가 되어 예컨대,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의 답을 자신들도 헷갈릴 정도로 끊임없이 바꾸어 왔으니. 결국 현행처럼 오용 및 남용되는 예타 제도의 운용은 오로지 대통령의 입맛에 달린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예산 배분 과정을 통해 승객과 비행기는 없고 활주로에 고추 말리는 지방 공항이 나타나는 것이다.

지방 주민으로서는 예타 면제의 특혜를 받아먹은 뒤 그 값을 떼어먹는 것, 즉 표(票)를 안 주면 그만일 것으로 언뜻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간단하지 않다. 영악한 정권은 단번에 예산을 던져주지 않고 10년 이상 이어가며 나누어 풀기 때문이다. 사업 중단이 안 되려면 계속 그 정권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 그래서 예타 면제의 특혜를 얻는 지방은 말하자면 정치적으로는 그 정권에게 장기 인질이 되는 셈이다.

권력 잡은 후 남의 세금으로 제멋대로 배분하는 정치 기제란 본질적으로 다 악할 수 있지만, 소심한 이명박은 규정을 애써 고쳐가며 예타 면제를 구했음에 비해 문재인은 민주주의, 지역균형, 정의를 들먹이며 대담하게 뿌린다. 무안함을 가진 소심한 적폐와 거리낌 없는 간 큰 적폐의 차이. 촛불 정권이 가져 온 변화는 겨우 이것뿐. 이것 얻겠다고 그토록 천박하게 병신년(2016) 헌법재판관들의 담합판결이란 불의로 헌법을 농락하고 탄핵을 자행한 병신헌란(丙申憲亂) 및 뒤이어 이듬해 촛불 광기로 세상을 덮었던 정유촉란(丁酉燭亂)을 일으켰던가.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정치기제가 결국 자원배분까지 간섭한다면 누가 권력을 잡든 똑같이 추한 것이다. 예타로 좁혀보면, 표를 구걸하는 예산 던져주기를 하는 점에선 동일하되 우파-좌파의 차이는 유독 자신들만은 정의롭다고 내세우는 뻔뻔함이 있는가의 차이다. 지겹도록 들어온, 이제 좌파 정부의 표징이 된 내로남불이란 어구로 다시금 돌아오게 된다. 이 정부의 데카르트식 인식론은 이런 것이다: ‘나는 촛불이다, 고로 나는 옳다.’ 개인·이익집단·지역이 정부를 상대로 대가를 지불하며 얻어가려는 일련의 활동을 의미하는 지대추구(rent-seeking)를 오히려 대통령이 선도하는 정권. 후불제(後拂制) 지대추구, 쉽게 말해 외상으로 떡 던져준 후 몇달 후 투표장에서 표로 갚기를 요구한다면 그게 바로 불법화된 대가를 전제로 한 표의 매수 행위 아닌가? 그게 곧 권력의 남용이며, 이른바 특정 지역과 대통령의 ‘경제공동체’아닌가? 그저 범죄이거나 그저 민주주의일 것이다. 그런데 그 답은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예비 타당성 정도가 아니라 정식 타당성 검증을 가장 급히 받아야 할 대상은 바로 대통령 당신이다.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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