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 페이지나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 내... 정말 대단한 능력"
"검찰이 우리 법원의 재판에 관해, 그 프로세스에 관해 이해를 잘 못 하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20여만 쪽에 달하는 증거 서류가 내 앞에 장벽처럼 가로막아...내가 가진 무기는 하나도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소위 ‘사법농단’과 관련됐다며 검찰이 구속 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이 보석 심문에 출석, 검찰 수사에 대해 “조물주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공소장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6일 오후 1시 25분경 서울구치소에서 출발해 서울중앙지법 보석 심문에 출석한 뒤 이같이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외부로 나온 것은 지난달 24일 구속 이후 33일 만이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9일 “검찰 주장을 충분히 반박하며 방어권을 행사하려면 많은 양의 기록 검토와 증거 수집 기간 등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재판부에 보석을 요청한 바 있다. 소위 사법농단 관련해 수사 중인 검찰과 이를 심리하는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피고인 신분 인사들에게 빽빽한 재판 일정을 잡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 변호인단은 “(빽빽한 일정으로) 방어권이 산산조각나 변호인이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며 줄사퇴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은 법원의 자체 조사에도 불구하고, 영민한 목표 의식에 불타는 수십명의 검사들을 동원해서 우리 법원을 이 잡듯 샅샅이 뒤졌다”며 “그 결과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 페이지나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 냈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그쪽 검찰이 우리 법원의 재판에 관해, 그 프로세스에 관해 이해를 잘 못 하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검찰은 법관이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옆에서 들리는 몇 마디 말이나 몇 가지 문건을 보고 쉽게 결론 내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며 “더구나 대법원의 재판 과정에 대해서는 너무나 이해력이 없어서 제가 그걸 설명하기도 어려울 정도”라고도 했다.

또 “그렇게 영민하고 사명감에 불타는 검사들이 법원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20여만 쪽에 달하는 증거 서류가 내 앞에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 무소불위의 검찰과 마주 서야 하는데 제가 가진 무기는 하나도 없다”며 “이런 방대한 자료의 내용을 모르는 상황에서 재판하는 것이 과연 형평과 공평에 맞는 건지 묻고 싶다. 보석에 대해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공평과 형평이 지배하고 정의가 실현되는 법정이 되길 원할 뿐”이라고 요청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구속 기한은 오는 7월 11일까지다. 검찰은 이날 보석 심문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중대하다며 법원에 보석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 제출한 의견서 등을 참고해 적절한 시기에 보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첫 공판 준비기일은 내달 25일로 예정돼 있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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