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대입정책 포럼을 보고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1월 25일 건국대학교에서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제 2차 대입정책 포럼이 열렸다고 한다.

급격한 사회변화와 미래의 인간형을 염두에 두고 2022학년도 대입수능 개편이 논의되었으며, 이를 위해 수시와 정시 전형 통합 가능성이 제시되었고 학생부 종합 전형, 수시 II에서 논술 전형을 실시하는 등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날 제기된 토의 내용 중 대학별 고사 혹은 논술전형이 사교육을 가열시킬 뿐이며 미래형 인간형의 양성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는 물음이 있었다. 따라서 그 물음과 그와 관련된 교육 현안 몇 가지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수능을 한번만 칠 것이냐, 두 번 칠 것이냐, 학생부 종합전형을 확대할 것이냐, 축소할 것이냐, 대학별 고사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러한 중요한 결정을 한 두 번의 공청회나 포럼만으로 가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육계획은 백년을 내다봐야 할 것이므로. 전문가들의 치열한 논의와 연구가 거듭 수반되겠지만 현장에서 근 30년을 입시와 학생지도에 종사해온 사람의 의견은 이러하다는 의미로 감히 제언을 드리는 바이다.

<1> 논술형 평가는 ‘미래형’ 인재상을 ‘다양하게’ 기르는데 필요한 평가 기제이다. - 수능 II 정시 선발에서 논술고사 도입을 지지한다.
 
‘2015년 교육과정’ 개편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은 창의적 융합형 인간이며, 핵심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은 논리적인 분석을 거쳐 자신의 생각을 종합하고 그 생각한 바를 정리해서 기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논리적 글쓰기야 말로 새  로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에 가장 잘 부합하는 평가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미래사회가 추구하는 인간은 기계적 사고와 단순논리에 의한 판단을 지양한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기존의 획일적 문항에 입각한 객관식 평가보다 학생들의 사고를 유발하고 논리성을 길러줄 수 있는 다양한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객관식 문답이 창의적 사고에 반하거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논술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들어 논술식 평가의 도입을 반대하기도 한다. 또한 학생의 성장과 사고의 성숙이 과연 글쓰기‘만’으로 평가되느냐고 묻고 있다. 물론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평가는 가치가 없다. 그러나 평가가 공정하고 객관적일 수 있도록 만드는 연구는 대학의 몫이다. 그 분야에 많은 투자와 연구를 거쳐 자신들의 대학에 맞는 인재를 평가하고 선발할 수 있도록 자율적으로 일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현한 대통령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성이 필요하다"며 "학교가 규격화된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나치게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교육이 가져올 폐단을 우려하는 대목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국가가 획일적 근거를 휘어잡고 ‘교육부터 평가 선발까지’ 모든 것을 국가의 획일적 기준에만 일임하고 있다. 미래에 필요한 인재가 창의적이고 융합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유연한 역량을 갖추길 바란다면서 평가기준만큼은 획일적이어야 한다는 발상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축적된 독서를 통해 사고의 저변을 깊게 해주고 거듭되는 훈련을 거쳐야 이러한 작동 메카니즘이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현장의 교육을 담당해본 교사들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 위주 교육과 문제 풀이 중심 교육으로 인한 학습 흥미 저하, 과도한 학습량”을 줄이기 위해 “핵심개념과 원리 중심으로 엄선하고 교수・학습 및 평가 방법을 개선”하는 교육과정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개정배경
을 실현하려는 마당이다. 따라서 평가에서도 ‘과정형 평가’를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으며 질 좋은 ‘루브릭’으로 학생들의 평가에서 최대한 창의성과 통합적 역량을 이끌어 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은 이렇게 시켜야 한다고 교육과정까지 바꾸면서 평가와 입시는 종래의 것을 사용한다? 국가가 주도하는 획일적인 수학능력시험으로 미래 역량을 측정해낸다?

필요할 때만 말을 바꾸는 입시는 더 이상 평가에서 이중성을 버려야 할 것이다.
 
<2> 학생 ‘선발’은 ‘대학’의 영역으로 넘기자

미래사회를 대비하고 창의적인 역량을 길러주기 위한 인재를 선발하는 평가는 대학의 영역으로 남기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공정성이 평가의 가장 중요한 조건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어느 대학이든 자기 대학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 있고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입장에서, 자신들의 대학에 필요하고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평가기준을 대학에 일임할 때 대학은 최선의 방책을 찾아낼 것이다. 각 대학은 최선을 다해 고민할 것이며 선발 기준을 마련할 것이다. 따라서 대학별 고사의 부활이 가장 적절한 공정성있는 평가의 근거로 기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큰 틀로 수시와 정시로 나뉘어 수능, 학생부 종합 전형 외 다양한 입시 전형으로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조변석개하는 입시에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만 드러나면 마치 모든 원죄가 입시제도에 있는 양 뒤집어 엎어왔다. 정권만 바뀌면 연속성을 잃고 입시제도는 표류해왔다. 큰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실시해온 평가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떻든 개선이 불가피하다.

1980년 본고사(대학별 고사)가 폐지되면서 학력고사가 등장했다. 본고사는 1980년 전두환 정권이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조치를 취하면서 금지되었는데 고액의 사교육 횡행, 학교 수업의 파행, 과중되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우려하여 실시된 것이었다.

그 후 1994년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되면서 본고사가 부활하여 도입되었다. 그러나 과거의 문제가 반복되자 다시 정부가 ‘본고사 금지’를 명문화했고 1997년에는 국공립대에서, 2002년부터는 사립대에서도 교과 지식을 직접 묻는 본고사가 폐지됐다. 그러자 대학들은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높였고, 논술이나 면접을 잇달아 도입하여 사실상 ‘본고사’를 실시한 것이나 다름없이 입시를 진행해왔다. 그러고 보면 본고사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각 대학이 불가피하게 선택해온 장치였던 셈이다. 명칭을 본고사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금까지처럼 각 대학의 입시제도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존립해왔던 것이니 만큼 인재선발의 책임을 전적으로 대학에 일임하는 것이 대학도 또 일선 고교도 편리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문제점의 선결이 중요하다. ‘공교육의 정상화’와 ‘사교육의 억제’ 문제이다.

<3> 그래서 공교육은 정상화하였는가

지금 이 시점에서 ‘공교육의 정상화’를 논의 하는 것은 현행 입시제도에서 학교생활기록부가 매우 중요한 입시의 잣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며, 학교생활기록부야 말로 공교육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검증된 공교육 정상화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정상화’역시 인재선발 즉, 평가와 더불어 계속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다. 2014년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 및 공교육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였고 일선학교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내신 성적과 비교과 영역의 활동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학교생활의 전부를 기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일이 문건화하는 생활기록부의 기재에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일선교사들은 생활기록부의 기재가 입시와 직결될 수 있다는 이유로 내용을 날이 갈수록 풍요(?)롭게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기재해 나갔고, 다 그런 것은 아니었어도 기록내용에 약간의 거품(?)도 끼어드는 등 염려가 제기 되었다. 당연히 교사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업무 중 하나로 자리매김 되어버린 만큼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교육에만 의존하던 학생, 학부모들은 ‘학종’이란 입시전형의 대비를 위해 생활기록부에 기재될 만한 풍요로운 내용을 찾아 또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을 끊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교육과의 고리는 차치하고라도 현장에 있는 교사들 중 ‘학생부 종합전형’을 대비하기 위한 생활기록부의 기재에 대해 문제를 인지하지 않는 교사는 없을 것이다. 석달 열흘이 부담스러워도 제자들만 대학에 잘 보낼 수 있다면 뭐라도 하겠다는 사랑과 희생정신이 넘치는 교사들이 현장엔 넘쳐나지만 일각에서 우려하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종’의 결정타가 되는 생활기록부 기재가 교사의 손 끝에서 결정되는 만큼 그 부담이 적지 않다. 결국 이 문제는 다시 대학으로 결정권이 넘어가게 되고, 너도나도 ‘화려하게’ 덧칠(?)을 해놓은 생기부와 자소서를 앞에 두고 대학은 심층면접, 소양면접 등의 면접과 대학 나름의 선발 기준을 마련에 고심하게 되는 것이다.   

공교육의 정상화가 화려한 생활기록부만으로 멋지게 부활하였는지 묻고 싶다. 교육 당국은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사교육 억제를 그 방향타로 삼았다. 선행학습을 근절하고자 했으나 학원의 선행교육은 어느 정도 가능해도 학교는 철저히 차단되었다.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대항마로 키운 EBS는 거대 사교육으로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였다. 수학교육의 부담을 완화시키고자 했으나 학력저하만을 선물로 안겨주었고, 영어의 전문성을 위해 절대 평가를 도입했으나 역시 영어의 학력저하를 가져왔다.

이러한 방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철저히 모든 규제를 ‘~을 하도록’ 하는 ‘Positive 규제’로 일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을 하지 않도록’ 하는 ‘Negative 규제’에 머물러야 할 것을 늘 이래라 저래라 하나부터 열까지 규제하려는 ‘Positive 규제’로 일관한 점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지. 국가가 교육의 A부터 Z까지 다 해결하려는 ‘어버이’를 자처하면서 시작된 문제들! 이러한 문제들이 예견되고 있음에도 연이은 규제들은 또 다른 문제를 잉태하기 위해 대기 중인 것이다.

<4> 사교육은 아직도 대체제인가

이러한 문제들의 또 다른 시발점은 사교육에 대한 관점이다. 애초 교육당국은 사교육에 대한 국민정서를 위로하기 위해, 사교육은 공교육을 잡아먹는 거대한 괴물로 상정한듯하다. 아니, 공교육과 사교육을 적대적인 대체제로 만들어 버렸다. 소득격차에 따라 사교육 지출비가 얼마가 다르니, 상위층은 사교육비 지출이 얼마나 더 많고 결국은 소득격차가 사교육비 지출의 격차로 이어져 계층 이동을 차단하니 어쩌니...

물론 그러한 면이 없지는 않으나 전적으로 사교육이 공교육과의 대척점에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사교육을 공교육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 결과 성과를 거든 사례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사례들로 볼 때 사교육이 공교육에서 충분히 보완재가 될 수 있다면 역할 분담은 물론 교직을 이수하여 임용의 문턱 앞에서 좌절하고 있는 많은 예비 교사들의 일자리 창출에 까지도 기여 할 수 있는 일일지 모르겠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7년 교육청 평가’ 에 따르면 교육비 부담 경감 분야에서 광주ㆍ대구ㆍ부산시교육청, 경북ㆍ전남·전북교육청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교육청이 학부모의 사교육비를 덜어주는 교육정책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한다.

예를 들어 10인 내외 소규모 강좌로 ‘방과 후 학교 수업’을 구성하도록 권장하고 학생 수요와 수준에 따른 맞춤형 프로그램 학습을 제공한다든가, EBSe를 통한 자기주도학습을 지원, ‘EBS 영어 채널 홍보 교사단’ 지원 및 ‘선생님을 위한 교사지원센터(온라인)’ 운영 등 학교 현장 영어수업 지원하기도 했다. 또 수학과에서는 수학클리닉(’14~, 시도별 거점학교 32교)을 통해 수학에 대한 흥미․자신감을 부여하고 학습결손 보정, 수학이 부족한 아이들이 언제든지 와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센터 Math Helping Center 운영 하는 등 각급 학교에서 실정에 맞게, 자기가 속한 지역사회의 인적자원과 사회시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구안하여 사교육을 공교육 안으로 흡수하거나 보완할 수 있도록 공생해 가는 방안을 착근해 가고 있다. 이는 모두 사교육과 공교육의 접점을 찾아가는 노력으로 볼 수 있고 어느 정도는 실효를 거두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사교육을 근절할 대상, 적대적 대체제로 보지 않고 공존을 꾀하고 보완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면 굳이 사교육 걱정 때문에 입시를 획일적으로 몰고 가야 한다든가, 논술 등의 다양한 형태로 추진하는 것에 반대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몇 가지 지적한 바와 같이 교육과 선발은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선발과 일선학교의 교육이 유리될 수는 없으나 대학이 주도하는 입시, 학생선발에 늘 일선 학교들이 휘둘릴 필요 역시 없을 것이다.

지금 새롭게 시동을 걸고 있는 2015 교육과정이 창의융합적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핵심역량을 강화시켜가는 교육을 지향한다면 기존의 학생부를 기반으로 종래대로 공교육을 실시해 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와 아울러, 2단계로 실시될 대학별 고사에서 각 대학의 인재상에 부합하는 인재 선발을 허용하는 것이 최적의 입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대학에 일임하는 선발과정의 공정성이 여전히 의심스럽다면 공정하지 못한 대학에게서 선발권을 빼앗는 정도는 국가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하는 ‘어버이 국가’는 혐오하지만,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인 ‘깡패’를 혼내줄 수 있는 힘 정도는 국가에게 일임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방안에 대한 제언이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몇 가지를 ‘해라’, ‘지켜라’ 하는 지침만으로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부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대목이야말로 가장 어렵고도 지난한 과정을 수반할 것이다. 초중고에서 대학까지 자율적인 인내심을 가지고 성급한 결실지상주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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