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없는 공항, 자동차 없는 고속도로, 승객 없는 철도가 줄줄이 생겨날 판
예타면제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지역균형개발', 실상은 정치인들의 표 거래 장사일 뿐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예타(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면서까지 신공항을 지어주겠다며 선심 쓰기에 나섰다. 부산에는 가덕도 신공항을 주겠다 하고, 전북에는 새만금 공항을 주겠단다. 안그래도 놀고 있는 공항들이 널려 있다. 인천공항을 제외한 지방공항 14개 중 그나마 제대로 쓰이는 곳은 제주와 김포, 김해공항뿐이다(2013년 3개 공항 평균 활용률 62.9%). 여수, 울산, 무안, 양양 등 11개의 공항들의 평균 활용률은 4.2%에 불과하다(2013년 기준). 그야말로 비행기 한 대 없이 텅빈 상태로 놀고 있는 공항, 유령 공항들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또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니 돈이 남아 도는 모양이다.

공항만 그런 것이 아니다. 2019년 예타 없이 추진하겠다는 대상은 철도, 고속도로 등 전국 곳곳에 널려 있으며 금액으로는 무려 24조원에 달한다. 비행기 없는 공항에 이어 자동차 없는 고속도로, 승객 없는 철도가 줄줄이 생겨날 판이다.

예타, 즉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는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등장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심성 SOC 투자가 남발되어 재정낭비가 커졌다. 김대중 정부는 재정낭비를 막는 제도로 예타를 도입했다. 그전에도 타당성조사 제도는 있었지만 재정낭비를 막지는 못했다. 공항, 도로 등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가 타당성 조사를 하다 보니 무조건 타당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었다. 반면 예산부서인 기획재정부는 입장이 다르다. 전체 예산규모는 정해져있고 사업을 하겠다는 부서는 많아서 돈을 아껴야 한다. 또 사업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밖에 없다. 예타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예산부서(기획재정부)로 하여금 타당성을 잘 따져서 예산에 반영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이다.

예타 면제 즉 예타를 건너뛰겠다는 것은 쓰지도 않을 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타 평가 항목은 3가지인데 경제성 40-50%. 정책성 25-35%. 지역균형발전 25-30%로 구성된다. 경제성이란 해당 사업의 결과 몇 명이 어느 정도의 혜택을 보는가, 그것이 투자비용보다 더 큰가 작은가의 여부를 따진다. 정책성이나 지역균형개발은 정치적 고려라고 보면 된다. 예타 면제는 경제성 평가를 안 하고 정치적 결정만을 하겠다는 뜻이다. 쓰지도 않는 공항, 타지도 않는 철도 경전철 이런 것을 만들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왜 예타를 면제해가면서까지 공항과 고속도로와 철도를 만들려는 것일까.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민주당 국회의원들, 해당 지역의 도지사. 시장 군수들이 최대의 수혜자들이다. 나라 돈으로 인심 쓰면서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 과정에서 지역의 건설업자들도 덕을 볼 것이고 지역민들에게도 얼마간 떡고물이 떨어질 것이다. 1조원을 투자한다면 어림잡아 지역에 3-4천억원 정도는 떨어질 것으로 본다. 나머지 6-7천억은 흉물스런 유령공항, 쓰지도 않는 고속도로의 모습으로 남게 된다. 제대로 된 투자라면 1조원을 투자해서 1.5조원 또는 2조원의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예타면제 투자는 오히려 국부를 파괴할 뿐이다. 그런데도 정치인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런 사업을 강행한다. 지역민은 나에게 다만 몇푼의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나라 돈 억만금이 축나는 것쯤은 관심 밖이다.

예타면제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지역균형개발이다. 하지만 넌센스다. 양양국제공항이 있어서 양양지역이 발전했는가? 무안국제공항 덕분에 전남북이 조금이라도 좋아진 것이 있는가. 그저 돈을 낭비했을 뿐이다. 지역균형개발에 도움이 되려면 그 시설의 사용자가 많아야 하고 그런 시설이라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할 수 있다. 지역균형개발을 위해 예타를 면제한다는 것은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지역균형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지방에 흉물스런 유령공항, 유령도로들만 늘려 놓을 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뇌물인데도 부끄럼 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역민들에게 이 시설을 해 줄테니 표를 달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얼마나 낯 뜨거운 일인가. 선거 때마다 정치인의 기부금품는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는다. 돈주고 표를 사는 것은 범죄이고 부끄러운 일이다. 돈 받고 표를 찍어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김영란법도 국가가 위임한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이 정권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 즉 표를 얻기 위해 나라 돈을 함부로 쏟아 붓고 있다. 실질적으로 뇌물인데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조차 없다. 지역민들은 그렇게 받는 시설들이 뇌물이라는 인식 조차도 없다. 툭하면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소위 시민단체들까지 나서서 자기 지역에 특혜를 달라고 손을 벌린다. 대통령부터 지역주민에 이르기까지 양심을 버려둔 채 뇌물공동체로 뒤엉켜 가고 있다. 누가 나서서 이 현실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초인을 기다려 본다.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김정호의 경제TV대표, 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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