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비무환이란 말 무색한 사회"
"철저하게 일을 하면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사회 분위기"
"미국처럼 각종 대피훈련 철저하게 실시해야"
"한국에서 북한 위협보다 더 위험한 일 없어, 대비해야"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학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박재광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인명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예산과 인력 부족은 물론 시설미비로 발생하는 후진국적 사고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변한 것이 없고 유비무환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회가 안전에 무감각하게 살고 있다. 이제는 북한의 핵폭탄 위협에도 “북한을 자극하고 위기감을 조성할까봐 대피훈련을 안 한다”는 안일한 사고까지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박태준 포스코 초대회장은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잘못하면 군화발로 직원 차기로 유명하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아 항상 긴장하면서 근무를 했는지 인명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퇴임 후 바로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직원들 사이에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란 말이 돌았다. 군대에서도 사격훈련을 할 때는 엄청난 기압을 받았다. 모두 긴장하게 해야 사고가 안 나기 때문이란 것을 제대하고 알았다.

한국은 민주화 바람에 억압적으로 직원을 다룰 수 없게 됐다. 잘못이 있어도 파면을 할 수 없으니 직원은 긴장을 덜 한다. 긴장 없이 근무하니 좋은 세상이다. 선진국에서는 철저한 징벌조항이 있고 이를 근거로 파면도 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월요일 아침 자기 책상이 있으면 일주일 더 일하는구나 하면서 회사를 다닌다고 한다. 또 “미국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보다 지켜야 할 규칙과 의무가 더 많아 한국보다 더 큰 자유를 원하면 미국에 오지 말라”는 말도 있다. 미국은 마음 놓고 살기 힘든 국가다. 다행이 돌발변수가 없어 규칙만 따르면 된다.

우리는 철저하게 일을 하는 사람을 FM이라 부른다. FM은 Field Manual(야전 교범)의 약자다. 미국에서는 FM같이 일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는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모든 것을 절차에 따라 하기보다 요령껏 하는 것을 유능하다고 여긴다. 이 과정에서 실수와 방임이 벌어지면서 사고가 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준법정신이다. ‘나는 빼고 다 지켜야 한다’는 사고로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 국민이 변해야 한다.

10년 전 대한민국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방화사고로 전소하는데 5시간 14분이 걸렸다. 국보인데도 화재 감지기와 경보 설비가 없었다. 더구나 화재 진화과정에서 2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확인을 못 해 조기진화에 실패했다. 이 사고를 보고 필자가 거주하는 인구 1만 명 조금 넘는 시의 소방서를 방문했다. 소방관들은 숭례문 화재진화과정 설명을 듣고 이해를 못 했다. 진화 과정에서 열화상 카메라로 확인하면서 교범에 따라 진화를 한다고 했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의 소방서는 열화상 카메라가 없었다. 그래서 불이 확산되는 과정을 확인 못 하고 밖에서만 집중적으로 진화를 해서 결국 2층 전체로 번졌다. 장비가 없으면 문을 부스고 들어가 확인했어야 했다. 결국 4시간 만에 2층이 붕괴됐다. 미국 소방관은 화재가 나면 과감히 부수고 들어가 진화한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때 불법주차 때문에 진화와 구조가 지연됐다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행이 삼성전자에서 작년 11월 대 당 2,000만원이나 되는 열화상 카메라를 1,000대 전국의 소방서에 기부했다. 한 소방관이 제안한지 3년여 만에 현장에서 사용하게 됐단다. 인구 1만명 도시에서도 오래 전부터 사용하는 장비를 국제도시라는 서울시조차도 10년이 지나도록 충분히 구비를 못 했다. 삼성전자가 아니면 한국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회의가 든다.

얼마 전 이웃집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차 2대가 왔다. 집 주인이 배관작업을 하다 벽과 벽 사이의 단열재가 서서히 타들어가 연기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주인 말에 의하면 4분 만에 왔다고 한다. 다행이 연기만 내면서 타서 쉽게 진화가 됐다. 이때 놀랄 일을 봤다. 한 소방관이 열화상 카메라로 확인을 다시 했다. 그리고 두 소방관에게 확인을 시키고 모두 진화가 됐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 돌아갔다. 이들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불조심 표어와 같이 모두 현장 규범에 따라 실시했다. 선진국이 후진국과 다른 점이 이런 것이다. 요령은 빠르지만 실수를 하면 재앙이 발생한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느려도 규범대로 하도록 한다.

167명의 인명사고가 난 밀양 세종병원도 화재대비책이 미비했다. 일자리 예산을 화재예방시설이나 자연재앙 방지시설에 투자하면 이런 재앙을 최소화하면서 일자리도 만들었을 것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프랑스는 건물단열재 보강공사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다. 미국도 160조원에 달하는 토목공사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경기부양을 했다. 토목공사를 삽질이라 폄훼하는 한국과 다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구하는 것이 국가의 최대 책무이다. 현 정권은 일자리 늘린다고 17조원의 추경을 쓰고도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일부만이라도 재앙을 줄이는 장비와 시설을 갖추는데 썼다면 안타깝게 생명을 잃는 국민이 없을 것이다. 예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만 쓰면서 ‘사람 먼저’란 구호만 외치고 있는 동안 국민은 죽어가고 재산을 잃는다. 인명사고는 사회주의가 더 많이 난다. 왜냐하면 책임소재가 불명확하고 안전에 예산을 책정할 장려책이 없으면서 자본주의 국가와 경쟁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만연은 사고국가를 만든다.

미국 소방관은 법에 명시된 연간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다. 대학도 매 학기마다 소방대피연습을 한다. 이때는 건물에 한 명도 남지 않도록 각 방마다 확인을 한다. 도시에서는 한 달에 한번 토네이도 경고 사이렌을 울려 경각심을 갖고 준비를 하도록 한다. 이제 한국도 각종 대피훈련을 철저하게 실시해야 한다.

대비를 잘 해도 사고는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작년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사건이 났을 때 책임소재를 묻기보다 영웅을 찾아 보도하면서 밝은 면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한국은 그 반대다. 불행한 사고를 정치적으로 정적을 공격하는데 이용하면서 희생양만 찾는다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에서 최초로 구조 활동을 벌려 172명을 구조한 해경 경비정 정장은 3년 형을 살고 있다. 미국 같았으면 영웅취급을 받았을 텐데 여론몰이에 문서조작을 했다는 이유다. 재앙이 발생하면 희생양만 찾지 사후 방지대책은 뒷전이다. 이러니 누가 목숨을 내놓고 대비와 구조를 하겠는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것이 우선인 체계가 되면 재앙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재앙을 정치놀이에 이용하고 대통령이 몇 분 만에 대응했다고 발표나 하는 쇼는 그만 둬야 한다. 진짜 일을 해서 재앙을 없애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북한이 폭격이나 침략을 하거나 게릴라전을 할 경우 전국이 무질서 속에 갈팡질팡 하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미세먼지 저감정책으로 3일 동안 150억원을 쓰면서 ‘늦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고 한다. 이상하게 과잉대응을 북한만 빼고 한다. 한국에서 북한의 위협보다 더 위험한 일이 있을까? 누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지 곰곰이 생각할 때이다. 재앙 없는 상식적이고 안전한 국가가 될 때까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각자 대비하자.

박재광 객원 칼럼니스트 (미국 위스콘신대학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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