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치 상여금, 일비, 중식대 달라" 노조측 주장에 일부 승소 판결..."4223억원 지급해야"
법원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경총, 법원의 주관적 판단으로 좌우되는 '신의칙' 비판..."임금 지급능력으로 판단하는 건 타당치 않아"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노동계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이 사건 청구로 인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측이 근로자에게 약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윤승은)는 22일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00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1심이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중식비와 가족 수당 등은 제외해 기아차가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4224억원(원금 3126억원·이자 1097억원)에서 1억원가량 줄었다. 

앞서 기아차 근로자들은 2011년과 2014년에 연 700%에 이르는 정기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수당, 퇴직금 등을 정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소송 제기 시점을 기준으로 임금채권 청구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최근 3년치 임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통상임금 적용 범위를 넓히면 최대 3조원을 더 부담해야 하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것은 노사 합의에 따른 조치라고 강조하며, 이를 어기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노조의 추가 수당 요구가 회사의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칙에 위반된다는 사측의 주장에 대해선 1심과 같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아차의 당기순이익, 매출액,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부채비율, 유동비율), 보유하는 현금과 금융상품의 정도, 기업의 계속성과 수익성에 비춰 볼 때, 이 사건 청구로 인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신의칙과 관련한 판결은 법원이 회사가 추가 시간외 수당을 지급해도 경영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지급해야 하고, 문제가 있으면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등 명확한 기준이 없어 그동안 논란이 이어져왔던 사안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기아차 통상임금 항소심에서도 법원이 노조의 손을 들어주자 즉각 반발, 입장문을 내고 "심히 유감스럽고 승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총은 "오늘 판결은 노사가 1980년대의 정부 행정지침(통상임금 산정지침)을 사실상 강제적인 법적 기준으로 인식해 임금협상을 하고 이에 대한 신뢰를 쌓아왔던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약속을 깨는 한쪽 당사자의 주장만 받아들여 기업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임금협상을 둘러싼 제반 사정과 노사 관행을 고려하지 않고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신의 성실 원칙(신의칙) 적용 기준으로 삼는 것은 주관적·재량적·편파적 판단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기업의 경영 성과는 기업 내·외부의 경영 환경과 경쟁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종합적인 사안"이라며 "단순한 회계장부나 재무제표에서 나타나는 단기 현상으로 경영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경총은 또 국내 자동차산업이 고임금 문제로 경쟁력이 악화하고 있다며 "사법부가 근로자들의 수당을 추가로 올려주게 되면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과 국가경쟁력 전반에 어려움과 위기를 가중할 것은 단순하고도 명쾌한 인과관계"라고 말했다.

이밖에 경총은 "기업의 영업이익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미래 산업변화에 대응한 연구·개발 투자, 시장확대를 위한 마케팅 활동, 협력업체와의 상생 등에 활용돼야 하는 재원임에도 이를 임금 추가 지급능력으로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경총은 "이 사건 당사자인 회사뿐 아니라 다른 국내 자동차 생산회사들도 통상임금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국가적으로도 자동차산업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을 간과한 채 현실과 동떨어진 형식적 법 해석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경총은 "기아차가 상고할 경우 대법원은 통상임금 소송에서의 신의칙 취지를 재검토해 상급법원 역할에 맞는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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