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죄질 나쁘다"면서도 "구속이 능사 아냐"...직권남용 혐의는 징역 1년에 집유 2년
전병헌 "재판부 판단 존중하지만 억지수사 인정 억울…즉시 항소"

전병헌 전 의원 [연합뉴스 제공]
전병헌 전 의원 [연합뉴스 제공]

국회의원 시절 한국e스포츠협회를 통해 여러 대기업에서 5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1심에서 뇌물수수 등 혐의로 징역 5년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태업 부장판사)는 21일 1심 선고공판에서 이같이 선고하고 3억5,000만원의 벌금과 2,500만원의 추징금도 부과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5년의 중형을 선고하면서도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소관 부처와 관련된 기업에 대한 문제제기를 중단하는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것은 직무 공정성과 청렴성을 훼손해 죄질이 좋지 않다"며 "직권남용 범행도 국민의 혈세가 낭비될 수 있다는 우려를 쉽게 지우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서관이나 협회 직원이 저지른 개인 일탈이라고 주장하지만, 의원실의 최고 책임자로서 충분히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몇 년간 피고인의 보좌진 4명이 뇌물·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구속된 점도 깊이 고민해 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항소해서 불구속 상태에서 다퉈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고, 구속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전 전 수석은 국회 미래창조과학통신위원회(미방위) 소속 의원 시절 롯데홈쇼핑, GS홈쇼핑, KT에 요구해 각각 3억원, 1억5,000만원, 1억원 등 총 5억5,000만원을 e스포츠협회에 기부하거나 후원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면서 기획재정부 예산 담당 간부에게 전화해 협회 예산 지원을 요구하고, 협회 자금을 횡령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GS홈쇼핑과 KT가 e스포츠협회에 건넨 2억5,000만원에 대해서는 전 전 수석에게 제삼자 뇌물수수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롯데홈쇼핑이 건넨 3억원에 대해서는 제삼자 뇌물수수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롯데홈쇼핑 측에 방송 재승인이라는 '현안'이 존재했고, 전 전 수석도 강현구 당시 롯데홈쇼핑 사장을 두 차례 만나 이런 사정을 알게 됐을 것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 전 의원은 비서관에게 보고받는 과정에서 재승인과 관련한 문제제기를 중단해달라는 등 부정한 청탁이 있었고, 그 대가로 협회 주관 대회에 3억원이 후원되는 사정을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그가 강현구 전 사장에게서 500만원 상당의 기프트카드를 받은 것도 뇌물수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기재부의 예산 업무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해당한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재판부는 예산 편성과 관련해 정무수석이 여·야 정치권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만큼, 예산 관련 업무는 정무수석의 일반 직무에 포함된다고 봤다.

그런 정무수석이 구체성과 집행계획 등이 결여된 사업의 예산을 편성하도록 압박한 것은 직무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밖에도 e스포츠협회 자금으로 부인의 여행 경비나 의원실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한 혐의와 2,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 등도 재판부는 유죄로 인정했다.

한편 전 전 수석과 공모해 협회 후원금을 요구하고 협회 돈을 횡령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전 비서관 윤모씨는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받았다. 보석 상태에서 재판받던 윤씨는 보석이 취소됐다.

전 전 수석 등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에게는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재판을 마친 전 전 수석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검찰의 억지 수사를 상당 부분 인정한 것 같아 안타깝고 억울하다"며 "즉시 항소해서 결백을 입증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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