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제국' 만든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
구체적 사인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몇 주 건강상태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져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칼 라거펠트. (사진=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칼 라거펠트. (사진=연합뉴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디자이너로 '패션계의 교황'으로 불렸던 칼 라거펠트가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샤넬은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거펠트가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몇 주 건강상태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1월 파리에서 열린 샤넬 오뜨 꾸뛰르(고급 맞춤복) 패션쇼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샤넬은 "칼 라거펠트가 심신이 지쳤다"는 긴급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독일 출신의 칼 라거펠트는 파리에서 교육을 마치고 1954년 울코트 디자인 대회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패션 산업에 뛰어들었다. 디자이너 피에르 발만은 당시 18세였던 라거펠트에게 보조 디자이너 자리를 줬다. 1957년까지 라거펠트는 '장 파투'의 디자인을 책임졌다.

칼 라거펠트는 1964년부터는 패션브랜드 끌로에에 수석 디자이너로서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잘 팔리는 컬렉션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또 1965년,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펜디에 합류해 펜디를 혁신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 반열에 올려놨다. 그는 모피 가공 기술로 유명한 펜디에서 모피를 여러 형태로 변형해 현대적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펜디의 상징이 된 '더블 F(에프)'로고 역시 라거펠트의 작품이다.

1982년 라거펠트는 마침내 샤넬에 입성했다. 당시 샤넬의 창업자 코코 샤넬이 사망한 지 10년이 지난 후였는데, 샤넬은 코코 샤넬의 생전 명성을 잃은 상태였다. 라거펠트 영입 후 샤넬은 '샤넬 제국'이라고 불릴 정도의 새로운 전성기를 되찾았다. 그는 기존 샤넬 아이템과 대중적인 문화 요소를 결합해 젊은 층까지 샤넬의 열성 팬으로 만들었다.

1984년부터 라거펠트는 샤넬의 프레타 포르테(기성복)까지 감독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명실상부한 샤넬 수장(首長)이 됐다. 그는 1984년 '칼 라거펠트', 1998년 '라거펠트 갤러리'를 차례로 설립하면서 자신의 브랜드 사업도 성공리에 이끌었다.

칼 라거펠트의 패션 세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 안에서 이해된다. 특정 문화적 전통에 대한 존경과 경배를 거부하고, 자신의 미학적 판단에 의해 모든 것을 자유롭게 혼합하는 태도와 유희적 적충주의가 그의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까만 선글라스와 백발의 포니테일 머리, 검은색 바지, 바짝 선 칼라, 크롬하츠 액세서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라거펠트는 신비주의를 고수했지만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일에 매달린 '일 중독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000년 에디 슬리먼이 디자인한 디올 옴므 수트를 입기 위해 13개월 동안 다이어트해 42kg을 감량한 일화도 유명하다.

라거펠트의 별세 소식에 뉴욕타임스(NYT)는 "20세기, 21세기 가장 열매를 많이 맺은 디자이너"로 평했고, BBC는 "칼 라거펠트는 패션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패션에 매진했다"고 전했다.

심민현 기자 smh41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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