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바로 읽기 [유태선 시민기자]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바로 읽기 [유태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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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을 돌이켜 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 1989년 독일 통일, 1991년 소련 해체로 이어지는 세계사의 대전환기였다. 당시 석학들은 이제 냉전(冷戰)은 끝났고 다가오는 21세기는 이념과 정치가 아니라 실용과 경제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8년 7월 30일에 초판 1쇄가 발행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는 책이다. 그가 앞으로 다가올 독일 통일과 소련 붕괴를 예측하였다면 감히 이 책을 출판할 생각을 하지 못 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기존의 통념에 반하여 세계사를 거꾸로 읽고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그렇지 않다면 독자들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 하고 인간 유시민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감정적으로 이 책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유시민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 가정 하에 주류 역사가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 했던 독특한 역사관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역사의 발전은 사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그에 대한 저항과 불복종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둘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제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반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기존의 지배층에 맞서 과거의 피지배층이 들고 일어나 사회정의가 실현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셋째, 평등을 논함에 있어서 개인들 간의 평등이 아닌 집단들 간의 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 우선 유시민이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선정한 주제들을 살펴보면 인류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창조한 사람들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 체제에 격렬하게 저항했던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문제는 저자가 러시아 혁명, 중국 대장정, 베트남 전쟁 등 당시의 사회 체제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세상을 뒤엎은 후 자신들의 입장에서 기술한 검증되지 않은 자료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역사관에 부합하는 사건들을 선택한 후 아래와 같은 아름다운 문장을 통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가 타당함을 역설하고 있다.

(러시아) 10월 혁명 - "볼셰비키 혁명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지행에 따라 의식적으로 사회를 변혁한 최초의 혁명이다."

(중국) 대장정 - "모택동은 수억 민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의지와 힘을 조직하여 그들 자신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웠다."

베트남 전쟁 - "세계의 양심적인 나라들은 베트남을 지배하려는 미국의 야욕을 꿰뚫어보면서 베트남 개입을 거절했다." "인도차이나의 다윗은 골리앗 (미국)을 죽이지 않고 타락한 그의 영혼을 구원해 준 것이다."

(미국) 검은 이카루스 말콤 X - "말콤 X는 할렘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흑인의 자주와 자존, 인간성이 꽃피는 빛나는 미래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날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내쏘는 증오와 비난의 열기를 견뎌내지 못 했다."

하지만 레닌, 모택동, 호지명(胡志明), 말콤 X 등이 자신의 두뇌 속에서 규정된 가상의 적들 - 러시아 차르 체제, 중국 지주들, 프랑스 제국주의, 미국 백인사회 - 을 모든 사회악의 근원으로 보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던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아가 유시민은 그의 저서에서 아래와 같은 객관적 역사적 사실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러시아 경제는 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향후 세계사의 주역이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미국과 러시아로 교체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실제로 1906년부터 1911년에 암살되기 전까지 총리를 지냈던 스톨리핀 (Пётр Аркадьевич Столыпин) 정부 하에서 러시아 경제는 급속한 발전을 보였던 반면 10월 혁명 이후 레닌 치하의 소련은 1921년부터 1922년까지 대기근을 겪었으며 신경제정책 (NEP)을 채택하면서 사실상 혁명 이전의 경제정책으로 복귀하였다.

1928년 장개석의 북벌 이후 중국 경제는 상해(上海)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었고 1937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침략에 대한 중국인들의 투쟁은 장개석의 국민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모택동의 공산당은 항일 투쟁을 소리 높여 주장하였을 뿐 실제 일본군과의 전투에는 소극적이었다.

또한 중국 대륙의 공산화는 중국인들이 자주적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모택동의 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을 대만(臺灣)으로 몰아내면서 이루어졌다.

베트남의 경우 공산당 지도자 호지명은 북부 베트남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상태에서 각 지방정부의 책임하에 베트남 전체 자유선거를 주장하였으나 - 북부 베트남에서의 선거결과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 국제연합에 의한 감시 하의 총선거를 주장하던 남부 베트남 정부에 의하여 거부당하였다.

그러자 그는 베트남 분단의 책임을 남부 베트남 정부에 전가하는 동시에 북부 베트남에서 토지개혁을 시행하였는데 이에 반대하던 사람들을 적게는 13,500명에서 많게는 50,000명까지 공개 처형하였다.

베트남 전쟁 중 호지명은 모든 베트남 인민들이 프랑스와 미국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비밀리에 중공군 32만명을 베트남 영토로 불러들여 그들의 군사지원을 받았다. 그는 1,000년 이상에 걸쳐 베트남 민족을 말살시키려 했던 이웃나라의 군대를 비밀리에 북부 베트남에 주둔시킨 상태에서 프랑스와 미국 등 제국주의자들과 투쟁하는 민족지도자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연출했던 것이다.

2. 유시민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서문에서 역사 발전이란 "인간이 점점 더 다수의 대중이 사회적 억압을 깨뜨리고 자신의 의지에 입각하여 사회를 개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나아가 저자는 "어떠한 사회적 억압과 불평등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인간의 집단적 의지와 실천에 의해 그것을 개조할 수 있다는 진리야말로 역사 발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역사 그 자체가 내리는 해답이다"라는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적폐청산(積弊淸算)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는 인간의 집단적 의지에 의한 사회 개선의 가능성을 언급하였을 뿐 집단적 의지에 의해 현실 세계가 실제로 어느 정도 개선되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생략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1988년 현재 경제, 사회, 문화의 발전에 따라 여성, 소수인종에 대한 사회적 억압의 정도가 약화되고 있던 미국, 유럽, 일본은 소수의 지배층이 다수의 피지배층 위에 군림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반면 사회적 억압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회 자체를 개조하는 과정을 선택했던 소련, 중공, 베트남은 모든 인민들이 함께 희망찬 내일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즉, 유시민은 그의 저서에서 드레퓌스 사건, 대공황, 아돌프 히틀러, 일본의 역사 왜곡, 10월 혁명, 대장정, 베트남 전쟁을 다루면서 프랑스, 미국, 독일, 일본은 군국주의자와 자본가 연합이 일반 민중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국가들로 소련, 중공, 베트남은 다수 민중이 소수 지배층의 압제를 극복한 정의로운 국가들로 인식한다.

3. 마지막으로 유시민은 평등의 개념을 개인들 간의 평등이 아니라 집단들 간의 평등이라고 해석하면서 독자들에게 세계사를 거꾸로 읽어주고 있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 노동자들이 소수의 지주 및 자본가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면 그 과정에서 숙청된 사람들의 인권은 포기되어야 하는가? 일단 계급 간의 평등이 실현되면 그 자체로 같은 계급에 속한 개인들 간의 평등은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일까?

사실 평등의 원칙을 개인들 간의 평등이 아닌 집단들 간의 평등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은 유시민뿐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이 가진 고질병이다.

1995년 김대중이 주장한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등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지역등권론(地域等權論)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만약 지역등권론에 입각하여 (인구가 적은) 전라도와 (인구가 많은) 경상도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된다면 전라도 주민 1명과 경상도 주민 1명의 권리는 동일하지 않게 된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도 유사한 관점에서 (인구가 적은) 북한과 (인구가 많은) 남한이 동등한 입장에서 연방제에 의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북한 주민들이 남한 주민들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져야 한다고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문재인과 박원순의 중국몽(中國夢) 관련 발언 -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같은 나라, 한국은 작은 나라", "파리가 말에 붙어 가듯이 한국은 중국에 붙어가야 한다" - 을 보면 한국인들은 국제 관계에 있어서는 집단들 간의 평등이라는 신념을 적용시키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시대착오적 역사관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출간 이후 현재까지 백만 부 이상이 팔려나간 스테디셀러이다. 전세계적인 이념 전쟁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완승을 거두었음에도 철저히 패자의 입장에서 세계사를 해석한 한 권의 책이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아직까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것은 국제정세에 어두운 한국인들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독자들은 유시민의 가르침에 따라 세계사를 거꾸로 읽으면서 송나라와 교류하던 고려 시대에는 한나라와 당나라의 훈고학(訓詁學)을, 명나라에 사대하던 조선 전기에는 송나라의 성리학(性理學)을, 청나라의 영향력 하에 있던 조선 후기 및 개화기에는 명나라의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했던 우리 선조들과 같은 길을 충실히 밟고 있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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