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피가 흐르게 하라"던 IS 여성 선전요원, "미국 돌아가고 싶어"
"미국인 피가 흐르게 하라"던 IS 여성 선전요원, "미국 돌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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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다 무타나 [인터넷 캡처]
호다 무타나 [인터넷 캡처]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서 선전 요원으로 활동한 미국인 여성이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더 가디언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때 가장 유명한 IS 선전 요원이었던 호다 무타나(24)는 현재 18개월 된 아들과 함께 시리아 북부의 알 하울 난민 수용소에 있다.

무타나는 알 하울 수용소 내 1,500여명에 달하는 외국인 여성과 아이 중 유일한 미국인이다.

무타나는 몇 달간의 계획 끝에 2014년 11월 앨라배마의 집을 떠나 터키행 비행기를 탔다.

무타나는 IS의 수도였던 시리아 락까(IS의 상징적 수도)에 정착해 호주에서 온 수한 라만이라는 남성과 결혼했지만 라만은 코바니 전투에서 숨졌다.

라만이 전사한 직후 무타나는 트위터에 분노에 찬 글을 올렸다.

그녀는 "미국인이여 깨어나라. 가장 큰 적 아래 살면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이제 충분히 잤다. 차를 몰고 나가 미국인의 피가 흐르게 하라. 아니면 큰 트럭을 빌려 모두 살해하라"고 적었다.

2015년 한 해 동안 무타나의 트위터는 오싹한 선동으로 가득 찼다. 무타나는 2016년까지 IS의 광신도였으며, 이후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계정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무타나는 터키 출신의 IS 조직원과 두 번째로 결혼해 그의 아들을 가졌다. 그러나 두 번째 남편 역시 모술에서 숨졌고 무타나는 다른 수십 명의 여성과 함께 후퇴했다. 그녀는 시리아 출신 조직원과 세 번째 결혼했다.

6주 전 무타나는 IS 최후의 저항지인 바구즈에서 멀지 않은 수사 마을을 탈출했다. 그녀는 다른 IS 탈주자들과 함께 사막에서 이틀 밤을 보냈으며 결국 쿠르드군에 붙잡혀 알 하울 수용소로 옮겨졌다.

무타나는 IS에서의 경험에 대해 "마치 영화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녀는 "책 한 권만 읽고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굶주렸고 말 그대로 풀을 뜯어 먹었다"고 말했다.

무타나는 수용소에 온 이후 미국 관계자와 접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무지했던 것을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정말 어렸고 무지했다. 미국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19살이었다. 미국이 두 번째 기회를 줄 것으로 믿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절대 중동으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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