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동향조사 어려움 이유로 '비밀보장'에 관한 금융실명법 개정 추진
전문가 의견 엇갈려...“오남용 우려” vs “빅데이터에 필요”
한국당 "文정부, 무분별한 개인 검열에...국민 지갑 속까지 샅샅이 뒤지려 해"

 

통계청이 통계조사 대상자의 개인정보 공개 동의를 받지 않고도 금융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빅 브라더' (정보를 독점한 정부가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논란이 일고 있다.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은 18일 주요 경제부처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통계청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 4조 1항을 손보려 한다고 전했다. 해당 조항은 금융거래 정보를 얻으려면 개인 서면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탈세 등 범죄 혐의를 받는 개인에 대해 법원ㆍ국세청ㆍ금융위원회 등이 금융정보를 요구할 경우엔 예외다. 통계청은 ‘통계 작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개인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을 추진하는 건 가계동향조사의 어려움 때문이라는 것이 통계청의 설명이다. 통계청은 개인정보 동의 문제 때문에 금융자산 정보를 수집하기가 어려운 데다, 조사 응답률마저 낮아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청 관계자는 “개인정보 동의율이 10%도 안 되는 데다 대부분 고소득층에서 불응한다”며 “법을 개정하더라도 순수 공익(통계) 목적의 금융 정보 활용인 데다 임의로 추출한 개인의 정보를 익명 처리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확한 통계 조사를 위해서라도 (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금융 정보를 관리하는 권한을 가진 금융위원회는 부정적이다. 전요섭 금융위 은행과장은 “금융거래 내용은 극히 내밀한 사생활 정보”라며 “탈세 등 범죄 수사에 극히 예외적으로 허용한 데는 이유가 있어 통계 목적에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금융위 의견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처와 전문가 의견을 모으는 등 법 개정을 강행할 계획이다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정상호 개인정보보호협회 부장은 “동의 없이 정보를 가져가서 처리하고 알려준다면 데이터 오남용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특히 한국처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무감각하고 사고가 연일 터지는 상황에서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청의 편의를 위한 ‘무리수’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강안구 한양대 응용수학과 교수는 “정보를 익명 처리한다 해도 언제든 재식별 가능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큰 걱정은 통계 샘플을 선별해 입맛대로 조작하는 일명 ‘통계 마사지’ 우려다. 이에 대해 통계청 관계자는 “통계 조작을 통해 얻는 이권이나 이익이 없다”며 “통계청은 통계 조작 의혹에서 자유로울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통계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선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기술로 충분히 금융정보를 익명 처리할 수 있고, (그렇게 하면) 통계 조사에 활용해 국익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며 “금융위ㆍ국세청같이 정보를 가진 부처에서 단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거나 고유 권한이란 이유를 들어 정보를 틀어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교통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있다고 차를 타지 말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개인 정보 활용에 따른 부작용보다는 정확한 통계 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편익이 더 크다는 의미다.

한편 자유한국은 이날 통계청의 법 개정 추진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최근 불법 음란물을 차단하겠다며 개인 사이트의 보안을 무력화시키려 했던 정부가, 이제는 국민 지갑 속까지 샅샅이 뒤져보려 하고 있다"며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법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개인 검열’에, 동의 없는 ‘개인 정보 수집’까지. 국민의 무엇이 그리도 낱낱이 알고 싶은 것인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성명서는 끝으로 "3년 전, 국가 안보를 위한 테러방지법을 ‘개인 검열’이라며 필리버스터에 나섰던 민주당의 모습을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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