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율 시민기자
김원율 시민기자

어릴 때 유아가 울면 옛날에는 호랑이 온다고 했다가 일제 강점기 기간, 또는 해방 후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에는 순사가 온다고 했었다. 일본 순사가 공권력의 집행기관으로 서슬이 푸르던 시절에는 어린이도 울다가 멈출 정도로 무서웠던 존재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일제의 식민지 시절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유관순 누나의 기미년 삼일 독립만세와 순국이다.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초등학교 다닐 때 배웠던 유관순 누나의 노래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감성 속에 ‘일본’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유관순 누나이다. 안중근 의사의 하알빈에서의 이토오 히로부미 사살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 공원에서의 일본군의 시라가와 대장의 폭살,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 등을 배우면서 친일은 반역이고 반일은 애국(愛國)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고가 은연중에 국민의 의식 속에 박혀 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를 하겠다고 하자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른바 6·3세대가 그토록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던 것이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모든 주류언론도 ‘잃어버린 바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라는 감상적 사설을 게재하면서까지 격렬하게 한일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였다. 역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국교정상화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외교에 있어 국익(國益)을 생각하는 성숙한 지도자라면 공산주의라는 인류 공동의 적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의 필요성, 일본과의 경제 및 무역에서 미래의 동반자 관계 등 모든 것을 고려할 것이다. 한 나라의 안보, 국방, 경제 등 모든 것을 맡은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지금 양보를 하더라도 국민의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하는 심모원려(深謀遠慮)와 혜안(慧眼)이 있어야 한다.

최근 문대통령은 권력기관 이야기를 하면서 ‘칼 찬 순사’이야기를 꺼냈다. 이 분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유아 시절의 ‘칼 찬 순사’의 이미지와 초등저학년 시절 ‘유관순 누나’ 노래를 부르던 때의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년 1월 신년기자회견 석상에서 서울주재 NHK특파원의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질문에 대하여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일본도 ’어쩔 수 없다‘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의 문제는 한국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며, 과거 불행했던 오랜 역사 때문에 만들어지고 있는 문제이다.”라고 답하였다.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답변은 반일정서에 길들여진 단순한 시민이 듣기에 우선 시원하게 생각될 수는 있겠으나, 지각 있는 시민이라면 대통령의 대일인식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알 것이다. 아마도 이 분이 감정적이고 미성숙한 대일관(對日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구나 생각하는 분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OECD 국가 중에 법원이 국가 간에 합의된 조약을 파기하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원장은 국가 간의 조약과 한일관계를 감안, 징용자 배상 판결과 관련하여 일본 측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인도 만나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일본 하면 ‘칼 찬 순사’를 떠올리고 ‘유관순 누나’만 생각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법농단으로 찍혀 구속까지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금년 1월 초 한국의 법원은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제휴하여 설립한 회사 주식 8만주(약 4억원)에 대한 원고 측 자산압류 신청을 받아들였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압류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라며 ‘관련 기업과 긴밀히 협력하여 우리의 일관된 입장에 따라 적절히 대응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여권,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대일관계에 지나치게 강경하게 나가는 것에 대하여 완화된 입장을 취하자는 건의를 철저히 묵살하고 있다고 한다. 2018년 10월부터 강제징용 배상판결, 화해·치유 재단 해산발표(11월), 초계기 레이더 갈등 (12월)이 줄줄히 이어지며 오로지 갈등을 더욱 키우는 쪽으로 한일관계가 진전되고 있다. 특히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본 왕의 위안부 사죄문제’발언까지 나오면서 한일관계는 최악의 벼랑 끝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인들이 일본 왕(일본 천황)에 대하여 발언할 때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 ‘일본 왕이 방한하고자 한다면 독립군 유가족을 찾아가서 사과해야 한다, 통석(痛惜)의 념(念)과 같은 애매한 단어하나 찾아서 말하려면 오지 않는 것이 낫다’라는 발언을 하여 한일관계를 최악으로 만든 전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본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며 천황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존경심은 상상이상으로 대단하다.

최근 일본 자민당 내부에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관계에 대한 대응책 중 하나로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불화 수소’ 등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금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반도체 용 불화수소는 일본이 전 세계 수요의 대부분을 생산하며, 한국기업도 수요의 90% 이상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과거 외교에 백치나 다름없는 김영삼 대통령이 ‘버르장머리’ 운운하면서 극단적 발언을 하였으나 정작 철저하게 손해를 본 것은 한국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일본의 협조만 있었더라도 한국은 IMF금융위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한일 양국이 외교역량을 동원하여 지혜롭게 벼랑 끝에 있는 양국관계를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양국관계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만 치닫는 것이 어느 한 사람 때문이라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서는 A4 용지를 들고 다니고 국빈 방문에서 대부분 식사를 혼밥으로 때웠다 해서 네티즌으로부터 문A4 혼밥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대통령의 요즈음 대일외교 수준을 보면 일본 하면 ‘칼 찬 순사’나 떠올리는 유아수준, 또는 ‘유관순 누나’만 생각하는 초등 저학년 수준의 대 일본인식 밖에 갖추지 못한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외교에서 국익을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냉철하게 대응해주시기를 바란다.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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