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칼럼]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정체
[김용삼 칼럼]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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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힘만으로 주적(主敵) 타도가 어려우면 동조 세력을 확보해 함께 싸워라.”
이것이 레닌의 통일전선전술의 기초다. 강한 적을 물리치려면 다른 세력과 손을 잡는 정치역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탄핵 강펀지를 맞고 그로기 상태가 된 우파 시민사회는 통일전선은 고사하고 매주 토요일 태극기 집회 하나 통합하지 못해 제각각 다른 장소에서 팔색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속단체의 사소한 이익, 보잘 것 없는 견해차 하나 조정하지 못하고 지구가 무너질 것처럼 목숨 걸고 싸운다. 이것이 우파 시민사회의 숨길 수 없는 민낯이다.

2월 25일 펜앤드마이크와 이승만학당이 공동개최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 발제문을 준비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글을 추적해보면 그 논리의 인식체계가 한길사가 펴낸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자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좌파 학자들이 쓴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탐독하고 운동권이 된 인물이다. 그는 2003년 3·1절 기념식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대한민국에 모욕을 퍼부었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도덕적 가치와 정통성을 명백하게 부정하는 선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하기 언사는 노무현과 막상막하이거나, 오히려 그 도가 더 심하다. 두 대통령의 현대사 인식 및 이념의 사상적 뿌리를 추적해 보면 총 6권으로 구성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핵심 총론에 해당하는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이 발견된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4권에 수록된 이 논문은 최장집·정해구가 공동저자로 되어 있는데,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좌파 학자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장,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 초안을 작성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정해구가 논문의 공동저자로 올라 있는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이 한국 현대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가를 분석해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인식이 명쾌하게 드러난다. 정해구·최장집 저자는 해방공간을 혁명 대 반혁명 구도로 가르면서 혁명세력은 선(善), 반혁명세력은 악(惡)의 구도로 설정하고 있다. 즉 해방 전후사의 기본 축을 혁명적 한국 민중과 미 제국주의의 대립 구도로 바라본다.
그들은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미국은 분단정권 수립을 공개적으로 추진했으며, 이를 위해 유엔을 동원했고, 분단정권 수립이 분명해지자 남한의 정치세력은 분단 지지세력(반혁명세력)과 분단 반대세력(혁명세력)으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남한에 주둔한 미 점령군은 반민족적인 지주·자본가·친일관료·친미세력을 반혁명세력으로 묶어 혁명세력을 탄압·분열·약화시켰고, 민중조직역량을 무력으로 파괴시켜 반혁명 분단정책을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민주기지?

저자들은 분단 반대세력은 남로당을 중심으로 미군정에 저항하기 위해 1946년 10월 대구에서 발생한 ‘10월 인민항쟁’을 벌였고, 단선단정(單選單政)을 저지하기 위해 ‘2·7 구국투쟁’, ‘4·3 제주민중무장봉기’, ‘5·8 총파업’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해방공간에서 발생한 모든 폭동·반란은 ‘민중들의 가열찬 투쟁’으로, 이를 진압하는 행위는 ‘미군정의 폭력적 진압’으로 정의한다.
이 논문 저자들은 남한에서는 미군정의 폭력적인 탄압으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실패한 반면, 북한에서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민중들의 혁명열기가 소련군의 후원이라는 유리한 조건 속에서 식민 잔재와 봉건 잔재를 척결하는 혁명 성공으로 이어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저자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한을 반혁명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민족통일의 대업을 이룩할 ‘민주기지’라고 주장한다. 정해구·최장집 논문을 요약하면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은 반혁명세력이 외세를 등에 업고 당시 국민들의 뜻과는 달리 분단정권을 수립한 ‘정의롭지 못한’ 행위가 된다. 반면에 대구 폭동을 비롯하여 단선단정을 막기 위한 제주 4·3 제주폭동 등 일련의 폭동 반란 행위는‘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의롭고 숭고한 투쟁’이 된다.
두 저자는 위의 논문에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위해 인민정권을 세우고자 했던 혁명세력(좌익세력)은 분단정권이 수립되자 이승만 정권에 저항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무장투쟁으로 나갔으며, 이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이 ‘한국전쟁’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6·25에 대해서도 정해구와 최장집은 전혀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한국전쟁은 일제하부터 시작되어 해방과 분단과정을 통하여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던 국내적 갈등의 최종적 판가름”이다. 즉 남한의 반혁명·반민족 정권과 북한의 혁명적·민족적 ‘민주기지’ 정권이 군사적으로 충돌한 행위가 된다.
그 결과 저자들의 인식 속에는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가를 따지는 행위는 졸렬하고 의미 없는 시간낭비 행위가 된다. 정해구와 최장집은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전쟁 발발 책임 문제가 과대하게 고려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 한국전쟁은 “국내외적인 갈등이 심화된 결과이지 단지 어느 한 쪽이 총을 먼저 쏘아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우연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3년에 걸친 전쟁을 계기로 혁명세력인 북한은 본격적으로 사회주의혁명을 완결했고, 자립적 민족경제 정책으로 나갔다고 주장한다. 정치적으로는 단일 지도체제, 사상적으로는 자주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주체사상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반혁명세력인 남한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종속적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반공체제가 구축되었다고 비판한다.

민족·혁명이 저들의 핵심 키워드

이러한 시각으로 결집한 좌파 민족주의 역사학은 남한의 미군정과 그 협력자들이 분단의 책임자라고 매도한다.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한 대한민국이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이 분단정권으로 세워낸 더러운 이 나라를 촛불혁명으로 뒤집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善)의 행위’가 된다.
하지만 비밀 해제된 구 소련 문서들로 인해 최장집·정해구 류의 주장은 완벽한 사기극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구 소련 문서들은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과 그 협력자들이 남쪽보다 훨씬 일찍부터 확고부동하게 공산화 된 분단국가 건설에 총력전을 전개했음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촛불헌법안’을 마련하는 데 주역이었던 정해구, 그를 비롯한 문재인 정부 핵심 지도부 인사들의 역사관·이념·사상체계의 핵심 키워드는 ‘민족’과 ‘혁명’이다. 다시 말하면 민족 지상주의와 민족혁명 필연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민족’이란 단어는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다. 아무리 시대를 올려 잡아도 20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민족’이란 개념은 1904년 이전에는 이 땅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허구의 개념이다. 민족주의 전문가인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저서에서 “민족, 민족성, 민족주의 이 모두는 분석은 고사하고 정의하기도 매우 어렵기로 어렵다”고 지적한다.
민족주의는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다. 그것은 자기 민족의 우월함을 주장하고 증명하기 위해 다른 민족들을 깎아내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 톰 네언은 “민족주의는 신경병처럼 피할 수 없는 현대 발전이론의 병리학”이라고 비판한다. 신경병처럼 본질적으로 모호하고, 여차하면 백치로 전락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 세계에 떠맡겨진 무력감이라는 딜레마에 뿌리를 두었으며, 대체로 치유할 수 없는 난치병이라는 지적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 지상주의가 야기하는 문제점에 대해 박지향 교수는 “우리 민족은 대단히 우수한데 다른 나라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식민 지배와 민족분단의 비극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말자는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민족 지상주의의 또 하나 문제점은 민족이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지고지선의 우월한 위치를 점유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민족 지상주의가 낳은 사생아가 ‘우리 민족끼리’라는 용어다. ‘우리민족끼리’ 앞에서는 인권과 자유 따위는 하찮고 거추장스러운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21세기 개명천지에 ‘우리민족끼리’를 무소불위의 무기로 사용하여 이 나라의 이념과 사상, 가치관과 국가정통성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지난 2018년 9월 20일, 김정은과 백두산에 올라 두 손을 맞잡은 세레머니가 그 적나라한 증거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부를 구성하는 인사들을 휘어잡는 또 하나의 마술적 용어는 ‘혁명’이다. 최장집·정해구의 앞서 소개한 논문에 의하면 남한에서 진행된 해방전후사는 어떤 혁명이 좌절되는, 그래서 미완의 혁명이 과제로 남는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해방 당시의 혁명 정국 계승하여 남한을 사회주의 통일국가로 혁명해야!

이와 관련, 이영훈 교수는 최장집·정해구의 논문에 대해 그들이 주장하는 해방공간은 북한 정권의 주장을 옮긴 것일 뿐 사실이나 사료로 입증되지 않는 허구이며, 저자들은 그러한 사료의 수집과 분석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이 마치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두 사람이 쓴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 논문은 저자들이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은 사안을 그렇게 믿고, 선전하고 있을 뿐이며, 따라서 역사와 정치가 구분되지 않았음을 후세에 알리는 좋은 징표”라는 것이다.
이영훈 교수는 자신의 논문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에서 최장집·정해구의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 논문은 1930~40년대 중국공산당의 이른바 ‘신민주주의혁명’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신민주주의혁명’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 198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이다. 사회구성체 논쟁은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다음과 같은 구도로 그려냈다.
①한국 사회는 미 제국주의 지배 하의 식민지다.
②남한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하나 민족분열이 고정화되고 자립적 민족경제의 기본이 파괴되었다면 반봉건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③이러한 남한 사회의 변혁을 위해서는 ‘민족 전체적’ 시각이 요구된다.
④이 점은 남한 사회의 변혁운동이 한국전쟁을 전후한 혁명 운동의 전통 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⑤북한 사회주의 건설 과정의 철학적 기초가 된 주체사상을 남한 변혁을 위한 사상적 기초로 삼아야 한다.
⑥이러한 역사적 전제에서 남한에서의 변혁 운동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제1단계로서 노동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인민민주주의혁명’이다.
이러한 논리구조의 연장선에서 해방 당시의 혁명 정국을 계승하여 1980년대 남한을 사회주의 통일국가로 혁명해야 하며, 이미 혁명을 성취한 북한으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 운운하던 그 조잡한 논리체계에 함몰되어 있고, 세계사의 흐름에 기이할 정도로 무지했던 좌익세력, 체제변혁세력들이 참혹한 집단 오류의 책임을 통감하고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는가? 아니다. 그들은 구소련 붕괴, 동구권 해체라는 사회주의·공산주의 폭망의 위기를 딛고 불사조처럼 살아났다.
그들은 ‘민주화’ ‘민족’이라는 선동무기를 앞세워 한국 사회 곳곳의 진지를 점령하고, 급기야 촛불혁명을 통해 권력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한국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종족적 민족주의에 깊이 뿌리박은 ‘친일파 단죄’라는 원초적 본능을 만능의 무기로 동원했다.
이처럼 핵심적인 좌파 인사의 역사인식이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에 집대성 되어 있다. 그 결과 최장집·정해구 류의 역사관은 노무현 문재인 역사관으로 판박이 되어 그들의 사유체계를 확고히 장악했다. 

보수우익세력이 폭망한 이유

종북좌익세력들은 잘나고 똑똑해서 한국 사회를 점령했나? 아니다. 보수우파라 불리는 세력들이 '내부의 적'을 앞에 두고 제 발등에 총을 쏘고, 스스로 자해하고 자멸했기 때문이다. 1982년 전두환 정부는 소위 말하는 '이념서적'의 출판을 자유화했고, 1988년 10월 11일 당시 이종남 검찰총장은 북한의 실상을 단순 소개하거나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해 객관적으로 해석한 책들은 처벌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자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념을 소개하는 책들이 무더기로 출판되었고 북한의 사상과 이념을 담은 책들이 일본 조총련을 통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와 출간되었다.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종북좌익세력들이 정치, 언론, 학계, 종교계, 문화계, 사법부 등 봇물처럼 한국 사회의 진지들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1988년 8월 양동안 교수의 유명한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논문이 발표되어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 논문에서 양동안 교수는 보수우파 인사들의 나태와 비겁성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한국 사회는 조만간 공산화 될 것이라고 그 방법론까지 밝혔다. 

양 교수는 처음에는 좌익세력과 제휴한 세력의 정권이 들어서고(김영삼 정부), 그 다음 단계에는 좌익세력이 주도하는 연합세력의 정권이 들어서고(김대중, 노무현 정권),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공산정권이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했다. 아마 지금 문재인 정부가 그 3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보수우파세력이 힘 한 번 제대로 못쓰고 폭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양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우익세력은 사상전을 남이 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좌익과의 대결 따위는 ‘손에 흙 묻히는 일'이라 하여 피했다. 자기들 대신 좌익과 싸우는 사람들을 돕거나 자금 지원에 대단히 인색했다. 좌익세력의 준동으로 사회가 어수선해지면 적극 나서서 싸울 생각은 않고 제 자식, 손자손녀들까지 모두 해외유학 명목으로 해외 빼돌리느라 바빴고, 이권 챙기다 동티가 나서 도덕성에 하자가 발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 결과 좌익세력들의 사소한 도덕성 공격에도 깜짝 놀라 꽁무니 빼고 골방으로 도주하기에 바빴다.

게다가 그들은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이념전, 사상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젊은 우파 세력을 양성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이 70~80이 되도록 사소한 감투 하나까지 다 자기들이 움켜쥐고 똥싸고 뭉갤 때까지 내놓지 않았다. 그 결과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좌익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가 또 있다. 그들은 '내부의 적'을 앞에 두고 사소한 이익, 이권을 놓고 보수우파들끼리 서로 총질하고 매도하고 아귀다툼으로 싸웠다. 그러는 사이 종북좌익세력들은 너무나도 여유롭게 한국 사회를 점령하고 보수우파들을 적폐로 때려잡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나라는?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촛불혁명은 대통령으로서 나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촛불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대한민국은 참다운 나라가 아니라 지옥이나 다름없는 헬조선이자 흙수저와 금수저로 상징되는 구제불능의 나라였다. 그 결과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광장을 가득 채운 나라”였다.
이처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목불인견의 나라를 뒤엎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촛불혁명을 일으킨 셈이다. 촛불혁명으로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문재인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언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대체 어떤 나라인가?
그들이 꿈꾸는 나라는 절대로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그들의 나라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가 사라진 나라, 즉 사실상의 사회주의 혹은 인민민주주의 나라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국민’이 사라지고 그 뜻조차 애매모호한 ‘사람’들로 채워진 나라다. 그들이 주장하는 ‘사람’은 평범한 일반 국민이 아니라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몰려나와 체제변혁을 추구하는 존재들을 지칭한다.
그들이 꿈꾸는 나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체제를 바꿔서라도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나라, 반체제 지하조직인 통일혁명당의 주인공 “신영복 선생”을 무한히 존경하는 나라, 시간과 비용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이 더불어 잘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촛불 들고 데모하여 필요하면 언제든 정권을 뒤엎을 수 있는 나라, 극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고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아니라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하는 나라다.
이러한 가치관의 연장선상에서 대한민국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前文)에 담고,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며, 5·18 민주화운동을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나라”여야 한다. 그들이 가고 있는 행선지와 종착역은 선명하다. 남한을 사회주의 통일국가로 혁명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이미 혁명을 성취한 북한으로부터 적절한 도움 받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이석기 같은 ‘사람’도 통일국가를 위해 혁명을 하다가 피해를 본 양심수이니 석방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런 나라를 향한 광란의 자살적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 재임 중 대한민국은 해체되고 남북연방을 통해 변형된 공화국, 즉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로의 체제변혁이 완성될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지금까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나라”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일까?

우파끼리 총질, 희망은 있는가?

저들의 자살적 질주를 저지하고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할 우파 시민사회는 폭망의 늪에 빠져 자멸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을 둘러싸고 미친 듯이 싸우더니, 최근에는 5·18 북한군이 광주에 왔느니 안 왔느니 하면서 아군끼리 물고 뜯고 욕하고 총질한다. 보수우파들이 '내부의 적'을 앞에 두고 5.18 북한군 문제로 물고 뜯는 사이 손혜원 사건, 문재인 대통령 딸의 태국 이주 사건, 드루킹과 김경수의 대선 여론 조작 사건 등이 모두 묻혀져 버렸다. 

김경수 1심 판결문에는 문재인을 당선시킨 대선을 무효로 만들 수 있고, 드루킹의 국정농단의 핵심 증거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이런 결정적인 팩트(fact)들을 발견하고도 기회로 삼지 못한다면 이것은 보수우파들의 태만이자 직무유기이자 구국운동의 포기나 다름없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기나 하면서 5.18 북한군 문제로 아군들끼리 총질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는가? 여러분들은 공산주의자들의 통일전선(united front)전술의 교훈도 모르는가?
“공산당 힘만으로 주적(主敵)의 타도가 어려우면 동조 세력을 확보해 함께 싸워라.”
이것이 레닌의 통일전선전술의 기초다. 강한 적을 물리치려면 다른 세력과 손을 잡는 정치역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탄핵 강펀지를 맞고 그로기 상태가 된 우파 시민사회는 통일전선은 고사하고 매주 토요일 태극기 집회 하나 통합하지 못해 제각각 다른 장소에서 팔색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속단체의 사소한 이익, 보잘 것 없는 견해차 하나 조정하지 못하고 지구가 무너질 것처럼 목숨 걸고 싸운다. 이것이 우파 시민사회의 숨길 수 없는 민낯이다.
과거에는 좌파는 분열로,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유행어가 있었는데, 이 명제가 뒤바뀌었다. 이제 좌파는 부패, 우파는 분열로 망국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자중자애하고, 분열을 뛰어넘어 연합전선을 펼쳐도 쉽지 않은 판국에 우파 시민사회는 적전 분열하여 서로에게 총질을 서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보루인 우파 시민사회마저 이 지경이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양동안 교수는 이미 31년 전에 예언했다.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는 속물적 리버럴리스트 근성을 버리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망한다고, 망해도 더럽게 망한다고.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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