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문화전쟁이 내전으로 벌어지는 나라
[남정욱 칼럼] 문화전쟁이 내전으로 벌어지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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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지금 자유한국당 최대 계파는 친박도 비박도 아니다. 농담을 조금 섞자면 지난 2월 11일 자유한국당 최대 계파인 씨네마당이 탄생했다. 가입인원이 무려 95명이다. 씨네마당은 ‘cinema +당(黨)’ 혹은 ‘cine + 마당’의 중의어로 단순히 영화를 사랑하는 동호회가 아니라 영화를 ‘문화전쟁’의 한 전선(戰線)으로 이해하는 모임이다. 해서 이 모임의 발족은 매우 역사적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기본 이념으로 확신하는 국회의원들과 전투의 최전선에 있는 영화 예술인들이 문화전쟁에서 최초로 반격에 나선 사건이기 때문이다. 잘하면 인천상륙작전, 잘 못하면 장진호 전투 꼴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열심히 해야 한다. 잘 못했다가는 이렇게 모여 놓고도 아무 것도 못한 사람들의 명단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수도 있다.

원래 문화전쟁은 국가 간에 벌어진다. 그래서 문화경쟁력, 문화강국 같은 표현이 있는 것이다. 이걸 살짝 톤다운 한 게 문화교류다. 그러나 아무리 표현을 부드럽게 하더라도 교류는 외피일 뿐 속은 피 튀기는 전쟁인 게 문화교류다. 나라 간 문화 패권은 왜 중요한가. 그것은 패권국의 삶의 방식이 표준이 되고 우리의 삶이 거기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브런치 열풍을 몰고 온 ‘섹스 앤 더 시티’가 문화패권이다. 와인열풍과 와인 바가 문화패권이다. 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할리우드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와 싸워 이겼다.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흡수 통합했으며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굴복시켰고 소비에트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무찔렀다. 전부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다. 그런데 이 문화전쟁이 내전으로 벌어지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가 있다. 대한민국이다.

위대함에 대한 경멸과 저주와 증오

문화란 무엇인가.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화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 다른 하나는 위대함에 대한 조롱. 조롱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느껴질지 모르지만 실은 이게 문화의 본질이다. 20대의 이어령이 대한민국 문학계를 완전히 뒤집으며 밑에서 치받고 올라온 것처럼 기성세대의 안일을 비웃으며 등장하는 젊은 세대의 패기와 치기와 재기(才氣)가 문화다. 물론 이렇게 전복적으로 등장한 세대도 시들기 시작하면 아름다움이나 찾다가 전복당하는 게 문화의 패턴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문화는 이와는 아주 많이 다르다. 위대함에 대한 경멸과 저주와 증오다. 위대함이 무엇인지는 다들 아실 것이다. 빌어먹던 나라에서 벌어먹던 나라를 지나 현재에 이른 대한민국이 위대함이다. 그 위대함이 너무 싫고 밉고 혐오스러운 인간들이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전전전 대통령은 이 문화전쟁에 기름을 부었다. 그가 저지른 가장 나쁜 짓이 국민을 둘로 나눠 이간질을 시킨 것이다. 정의가 패배한 나라라고 했다. 불의가, 나쁜 놈들이 승리한 나라라는 얘기다. 그의 눈에 국민은 하나가 아니었다. 나쁘면서 잘 사는 놈과 못살지만 정의로는 사람이 억지로 같이 사는 나라였고 그 굴절된 풍토의 청산만이 대한민국이 올바로 서는 길이라고 외쳤다(개인적으로 내란 선동죄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그가 했던 짓을 현재는 문화가, 영화가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밟고 거기에 침을 뱉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 나라 안에서도 우파와 좌파가 문화로 충돌하는 것은 드믄 일이 아니다. 남북전쟁 이후 최악의 갈등상황이었다는 미국의 1960년대가 그렇다. 세대와 세대가, 보수와 진보가 충돌했다. 거리에서 양쪽 시위대가 부딪히는 가운데 대중음악과 미술과 영화가 지원사격을 했다. 사격의 효과는 엄청났다. 나라가 반으로 쪼개지기 직전까지 갔다.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졸업’, 남녀 혼성 강도단 이야기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등이 당시 나온 체제 비판 영화들이다. 그러나 그 때에도 ‘선’이란 건 있었다. 현실을 비판하더라도 체제부정이나 국가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영화는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프랑스 노랑조끼 사태의 영화 버전인 ‘13구역’도 그렇다. 영화 속에서 군과 민간인이 총을 들고 서로 마구 갈겨대지만 그러나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조국인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은 이 선을 넘고 있다. 국가 정통성의 부정이다.

이제는 공산주의자의 활약을 안방에서 TV로 보실 차례

‘임시정부 100주년’으로 한 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문재인 정부는 2019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선포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이게 어떤 의미인가. 건국의 부정이다. 대한민국의 생일인 1948년 8월 15일은 호적에서 말소시키겠다는 얘기다.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위대했던 대한민국을 곁가지 역사로 바꾸겠다는 수작이다. 이미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 작업은 시작됐다. 김원봉이라는 이름을 다들 아실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을 버리고 월북한 공산주의자다. 북한정권 수립의 일등공신이었고 월북 후에는 남파 간첩의 훈련과 지휘를 맡았던 인물이다. 영화 ‘암살(2015)’과 ‘밀정(2016)’은 이 인물을 스크린에서 부활시켰다. 올해는 MBC에서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이몽’을 방영한다. KBS에서는 아예 김원봉으로 대하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앞서 말한 대로 월북한 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1958년 김일성에게 숙청 될 때까지 김원봉은 1952년에는 노동상, 1956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1957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6ㆍ25 기간 중에도 놀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을 버리고 공격한 공산주의자를 안방에서 보게 생겼다.

‘암살’에서 김원봉 역은 조승우, ‘밀정’에서는 이병헌이 그 역할을 맡았다. MBC 드라마에서는 유지태가 김원봉 역이다. 이제 사람들은 그 멋진 세 명의 남자 배우 이미지로 김원봉을 기억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도 꽤 근사한데? 같은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도 한결 덜해질 것이다. 이게 문화전쟁의 결과다. 김원봉 다음에 또 누굴 발굴할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런 작업이 진행된 결과 임시정부의 대통령인 이승만은 사라지고 김원봉 등등이 임시정부의 주요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김원봉이 무장독립투쟁을 한 것은 사실이니 그 정도는 봐줘야 하지 않냐 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는 게 문화전쟁의 기본 전술이다. 여순반란과 빨치산이 그렇게 먹혔다. 제주 4ㆍ3이 그렇게 넘어갔고 5ㆍ18이 그렇게 포장되었다. 남은 게 많지 않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문화전쟁은 후반전에서도 거의 막판이다. 현재 전세(戰勢)는 좌익이 점령한 근대사와 현대사가 양쪽에서 1948년을 포위해 들어오고 있는 형국이다. 싸워 이기거나 패배해서 자기의 땅과 나라와 역사에서 쫓겨나거나 둘 중 하나다. 글의 서두에서 목숨 걸고 열심히 해야 하고 잘 못했다가는 기껏 모여 놓고도 아무 것도 못한 사람들의 명단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수도 있다고 한 이유다. 문화전쟁은 조금씩 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찔끔찔끔 올라가다가는 21세기가 끝날 때까지 노력해봐야 얼마 못 올라간다. 화끈하게 판세를 엎거나 허리를 똑 끊어서 더 이상은 공작이 안 먹히도록 한 방으로 전세를 뒤바꾸고 싹을 잘라야 한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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