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하고도 배당 규모 늘려...투자 여력과 장기 경쟁력 훼손 우려

국내 상장사들이 배당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작년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어닝 쇼크'를 낸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배당을 확대하는 추세가 자칫 기업들의 투자 여력과 장기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전체 상장사의 지난해 실적에 대한 배당금 총액은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4년 16조6488억원 이후 4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현대차 배당성향은 2017년 26.8%에서 지난해 70.7%로 급상승했다. 반면 현대차의 영업실적은 6년째 감소하고 있다. 지난달 현대차가 발표한 2018년 연간 경영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0.9%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47.1% 감소했다. 영업이익률도 4.7%에서 2.5%로 2.2%포인트 낮아졌다. 작년 4분기만 놓고 본다면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당기순이익(-2033억원)에서 적자를 냈다.

포스코는 과거 6년간 8000원의 주당배당금을 지급해왔으나 주주환원 정책 강화를 위해 2018년 주당 배당금을 1만원으로 확대했다. 포스코대우는 지난해 순이익이 1157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줄었지만 배당은 오히려 617억원에서 740억원으로 20% 늘었다. 이외에도 국내 매출 상위 기업들의 배당성향은 상승하는 추세다. KT(39.2%), LG화학(31.2%), 기아차(31.2%) 등도 지난해보다 높은 배당성향을 보였다.

국민연금의 다음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도 배당을 늘리는 모습이다. 최근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인 현대리바트는 배당금을 작년보다 3배 가까이 늘렸다. 현대리바트 최대 주주사인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8일 임시이사회에서 2020년까지 배당성향을 13% 이상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전년도 배당성향 6.2%와 비교해 2배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리바트가 배당금을 확대하는 이유는 국민연금이 최근 현대리바트 최대 주주사인 현대그린푸드의 배당 확대를 위해 주주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그간 현대그린푸드를 비공개 대화 대상기업(2016년 2월), 비공개 중점관리기업(2017년), 공개중점관리기업(2018년)으로 선정해 기업과의 대화 등을 추진하며 압박해왔다.

하지만 지난주 현대그린푸드가 배당성향을 종전 대비 2배 이상 높은 13%로 상향하자 국민연금은 결국 배당 확대 주주 제안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가 현대그린푸드가 배당정책을 수립했고, 배당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등 개선 노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대그린푸드가 이처럼 국민연금의 칼날을 피해가자 다음 타겟이 될 기업들은 올해 배당 규모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재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는 사조산업과 화승인더스트리가 꼽히고 있다. 이들은 모두 국민연금이 2대 주주다. 사조산업은 2017년 배당성향이 2.26%에 불과하며, 화승인더스트리의 2017년 배당 성향도 3%대에 그친다. 업계에선 이들 기업이 코스피 상장사 평균 배당성향 33%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음 타켓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정부는 배당 확대에 대해 주주이익 환원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기업의 자체적인 판단이 아닌 정부의 압박으로 배당을 늘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남양유업의 경우엔 국민연금의 배당확대 요구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저배당 정책은 사내유보금을 늘려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현재 남양유업은 약 54%의 지분을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하고 있다. 남양유업이 배당성향을 높이게 된다면 이들에 대한 배당을 늘리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남양유업은 회사의 재무구조 건전성 재고와 향후 장기투자를 위해 저배당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판단이다. 

또한 배당 확대에 따른 국부 유출 문제도 거론된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배당을 늘리는 것은 문제 소지가 없지만, 정부의 압박으로 배당 규모를 확대한다면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현대차·SK·LG 등 국내 4대 그룹 상장사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지급한 배당금 총액은 9조1913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3% 늘었다. 작년에 실적 부진을 겪은 현대차그룹에서도 전년도보다 0.8% 많은 1조14억원을, LG그룹에서도 1.8% 증가한 5186억원을 배당금으로 받았다. 외국인 투자자가 많은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배당금을 확대하라는 정부의 압박은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투자 여력과 장기 경쟁력 훼손할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우려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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