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헌법아닌 관중 함성 듣고 길 정해선 안돼"
재직 중 "법원은 檢 영장발부 기관 아냐" 여론몰이 수사-법관회의 비판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이 2월13일 오전 울산지방법원 대강당에서 퇴임식이 열린 가운데 법관생활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62·사법연수원 16기)이 13일 32년 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사회가 양쪽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불구속 재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른바 국정농단 프레임 아래 구속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과 여권발(發) 사법농단 의혹으로 구속재판을 받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거론한 뒤 나온 말이었다. 

최인석 법원장은 이날 오전 울산지법 대강당에서 가진 퇴임식에서 "헌법에서 정한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불구속재판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며 이같이 밝히고 "판사는 헌법을 보고 나아갈 길을 정해야지 콜로세움에 모인 관중의 함성을 듣고 길을 정해서는 안된다"고 후배 법관들에게 조언했다.

전임 정부 핵심 인사들을 연루시킨 재판이 사실과 원칙보다는 여론몰이 위주로 흘러가는 세태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는 사법부를 겨눈 사법농단 수사 행태와 김명수 현 대법원장 체제에서 부활시킨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대해 편향적이라고 비판해왔다가, 지난 1월7일 사표를 냈다.

최 법원장은 지난해 10월말 법원 내부 전산망에 "압수수색 영장청구는 20년 동안 10배 이상 늘었다"며 "법원은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때 그는 검찰을 '빅 브라더'에 비유하면서 "검찰 압수수색이 홍수처럼 많다"고 지적,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법원이 압수수색영장 발부에 인색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권력도 끝 있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격언)를 기억하라!"고 일침을 가했었다.

해당 비판 글을 게시한 뒤, 최 법원장은 젊은 판사들의 반발에 직면했다고 한다. 이에 그는 지난해 11월6일 "판사회의는 우리가 싸워 얻은 것이라니, 나에게 적폐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현재의 사법 행정권이 '선배 판사'들로부터 얻어진 것임을 강조한 셈.

한편 이날 퇴임식에서 최 법원장은 법원의 고령화 문제를 거론하며 "오는 2022년부터 판사가 되기 위해서는 법조 경력이 10년 이상 돼야 해 법원의 고령화를 불러 올 것"이라며 "주권자인 국민과 국회가 이 문제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최 법원장은 "어쩌다 시험 하나를 잘 치러서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30년을 우려먹었고, 능력이나 인품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면서 "제가 괜찮은 모습을 보인 것이 있다면 모두 선배·동료·후배에게서 보고 배운 덕분이며, 여러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법원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경남 사천 출신인 최 법원장은 부산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시 26회(연수원 16기)로 법조계에 입문해 마산지법 판사(1987년)와 부산고법 판사(1997년), 창원지법 거창지원 지원장(1999년), 부산고법 부장판사(2016년), 제주지법 법원장(2017년), 울산지법 법원장(2018년)을 역임했다.

그는 울산과 제주에서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례적으로 민사 소액사건 등을 배당받아 재판을 맡았다. 특히 당사자 간 감정대립이 심하거나 쟁점이 많아 복잡한 '고분쟁성 사건'을 맡으면서 오랜 법관 경험을 살렸고, 동시에 일선 판사들이 이들 사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다른 사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평가가 있다.

최 법원장은 퇴임 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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