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코프 일기로 본 북한역사 #17, "남조선 지하신문 발행에 대해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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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2.14 09:36:57
  • 최종수정 2019.02.28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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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정체정세 대해 논의하다. 남조선에서 무장 대오들이 탈주하고 있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무장 해제시켜 조사하고 잠시 동안 붙잡고 있다가 남조선으로 귀환시키거나 혹은 억류하라고 답변하다. 이들에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급양? 돈?

[편집자 주] 티렌티 포미치 스티코프(Terenti Fomitch Stykov), 1907년 2월 28일부터 1964년 10월 25일까지 살았던 소련의 군인. 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스티코프가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남긴 일기를 발굴해 연구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스티코프의 일기를 통해 드러난 소련의 '북한 김일성 세우기 프로젝트'를 2004년 12월 30일 책으로 만들어 중요한 한국근현대사 자료를 보충했다. 전 교수의 '스티코프 일기' 연구는 미국과 일본에 집중됐던 해외소재 한국사 자료가 서유럽과 동유럽, 러시아 지역까지 확대됐다는 평가를 받는 연구 업적이다. 소련군 정치장교였던 스티코프가 남긴 일기는 단순히 개인사를 넘어 소련의 한반도 정책과 1945년 해방 직후 남북한의 정치, 경제 상황, 한국전쟁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적 원천이 되고 있다. 특히 스티코프를 정점으로 하는 북한 주둔 소련군사령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사태전개에도 깊게 개입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스티코프의 일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소련공산당이 38선 이북 지역에 소련을 추종하는 공산 위성정권을 세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적나라하게 개입하여 괴뢰정부를 세웠는지를 입증하는 내용증명이기 때문이다. 스티코프는 일기 형식의 비망록을 통해 소련공산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정해준 사실, 북한 헌법을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이 직접 만들어준 사실, 심지어 북한의 역사를 기술할 때 지침이 되도록 역사책의 목차까지 짜 준 사실, 김일성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북한정권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내각의 장차관은 물론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회의 대의원을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의 재가를 얻어 정한 사실 등을 적어놓았다. 따라서 이 자료를 독파하면 북한이 얼마나 소련을 추종하는 괴뢰집단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내용증명이다.

절판이 되어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스티코프 일기'를 펜앤드마이크(PenN)는 전 교수의 해제부터 책 그대로를 온라인 공간으로 옮긴다. 다만 책의 제목이 '쉬띄꼬프의 일기'로 되어 있는 것을 요즘 사용하는 용어로 바꾸어 '스티코프 일기'로 바꾸었다. 게재 순서는 전 교수의 해제를 시작으로 스티코프의 일기를 1946년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를 제1부, 1946년 12월 2일부터 1947년 2월 4일까지를 제2부, 1947년 7월 7일부터 10월 4일까지를 제3부, 1948년 7월 26일부터 10월 2일까지를 제4부로 편집하고 있는 책의 흐름을 따를 예정이다. 책 후반부에 별도로 첨부돼 있는 1946년 9월 28일 여운형의 북조선 방문에 대한 스티코프의 보고나 소련 군인으로 1945년 해방 후 평양 소련군정에서 소장 계급으로 민정 사령관을 지냈던 안드레이 알렉세예비치 로마넨코(Andrei Alekseevich Romanenko)와 여운형의 대화 기록도 순서에 따라 게재할 예정이다.

쉬띄꼬프 일기 2부 
(1946. 12. 2~1947. 2. 4)

[1947년 1월 2일부터 8일까지]

 

1947년 1월 2일

제25군 후방 문제로 흐룰료프에게 전화하다. 지원할 것을 약속하고 정원계획안을 보내줄 것을 그에게 부탁하다. 조선군에 대한 피복 지급 문제를 확인하여 상황을 보고하기로 약속하다. 

치스짜꼬프에게 로마넨꼬, 김일성과 함께 1947년 3월 1일 보로쉴로프로 출발하라고 명령하다. 

가족과 함께 영화와 기록필름 '인민재판'을 보다.

치료를 위해 휴양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 불가닌의 회답을 기다리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게도 회답이 없다. 아마도 스딸린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 같다.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 몸 상태와 기분이 좋지 않다. 

 

1947년 1월 3일

치스쨔꼬프와 로마넨꼬를 접견하다. 김일성이 회담에서 어떤 문제들에 대해 협의하기를 원하는지 알아보다. 회담 시각을 21시로 정하다. 

치스쨔꼬프, 로마넨꼬, 김일성과 회담하다. 

우리에게는 국가 경제계획을 수립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1947년의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세우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철도운수, 해상운수, 부문이 우리의 애로점이다. 비료와 양곡을 수송하지 못하고 있다. 

조소합작회사 - 해상운수회사, 석유정련회사 - 설립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협정 초안을 심의하고 이에 동의했다. 협정에 서명할 전권위원으로 강양욱을 뽑았다. 우리에게는 많은 양의 코크스용 석탄이 필요하다. 1947년도 분으로 약 150,000톤이 요구된다. 그러나 1946년도 계획조차 이행되지 않고 있다. 

재정 부문에서 우리는 추가적으로 약 6억 엔이 필요하다. 생필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자금을 동원할 가능성이 제한되고 있다. 

군대에 납품된 자동차와 무기는 질이 나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민들 사이에서 생필품 부족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물가가 치솟고 있다. 

주민들과 열성분자들은 정부 수립을 원조할 미소공동위원회 사업이 언제 재개될 것인지 번번히 묻고 있다. 당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당신들은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설명하고 답변하다. 

 

1947년 1월 4일

치스짜꼬프, 로마넨꼬, 김일성을 접견하다.

1.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회 소집 문제에 대해 협의하다.

김일성이 북조선 지도부는 대회소집과 그 일정에 동의하며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것이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하다. 나는 그에게 대회소집과 대회에서 논의될 문제들이 향후 조선의 민주화 사업에서 갖는 의미를 설명하다.

김일성이 조선의 정치정세에 대해 보고하고, 기획국장이나 김두봉이 인민경제발전계획 예산 자료에 대해 보고하기로 협의하다. 

또한 각 정당의 대표자들과 노동자, 농민, 상인, 자본가 계층의 대표자들이 모두 포함되도록 인민회의를 선거하고, 정부의 향후 사업 전망을 잘 고려하여 각 행정국의 장을 선발하기로 협의하다. 

2. 인민경제발전계획 작성 문건에 대해 논의하다.

꼬르꿀렌꼬와 알라또프스끼(알라또프스끼 알렉산드르 뜨로피모비치 대좌, 북조선 주재 소련민정청 재정사업지도 부장)가 배석하다. 공업생산계획을 살펴보다. 공업생산계획 작성 방법에 대해 지시하다. 생활필수품, 농업용구, 비료를 시장에 최대한으로 방출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도록 촉구하다. 

농업과 축산에 대해, 북부지역의 파종면적을 확대시키는 문제에 대해, 농업의 기계화, 농업용구의 정착에 대해 논의하다. 양잠업의 발전과 관개시설에 대해서도 토론하다. 농업현물세의 세율을 개정하는 문제에 대해 협의하다. 나부지역에서는 증가시키고 북부지역에서는 감소시킨다. 이 사업을 농민동맹의 발의로 시작한다.

면·리 인민위원회 선거 문제를 점검하다. 선거는 리 인민위원회부터 시작하고, 선거일은 1947년 9월 25일로 잡는다. 면 인민위원회 선거일은 3월 5일로 한다. 인민들은 이 조치를 환영할 것이다. 

박헌영을 합법화시키는 문제가 나에 의해 제기되다. 김일성은 그렇게 할 경우 박헌영은 남조선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긍정적인 답변을 회피하다. 남북조선로동당의 단일한 지도부가 창설되면 누가 지도자가 될 것인가? 김두봉 혹은 허헌. 그들 사이에 알력이 싹틀 것이다. 만약 박헌영을 지명하면 김두봉이 반대할 것이며, 허헌은 어떻게 처신할지 알 수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이 문제를 재검토하기로 약속하다. 

회담이 계속되다. 

로동당원 교육용 교재 편찬 계획에 대해 논의하다. 교재와 교재의 집필 계획에 대해 나의 관점을 설명하다. 

소련군 규약의 조선어 번역에 대해 논의하다. 뽀시에뜨의 국경수비대에서 조선인 김상빈이 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조선어판 군사용어사전의 편찬 문제에 대해 숙고하다.

언제 민주-조선의 국경수비에 언제 착수하는 것이 좋을까? 수비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중대별로 아니면 소대별로, 군수품을 지급하고 교육을 마친 후 결정한다. 

군에는 휴대용 영사기, 라디오 등 일련의 비품이 필요하다. 취주악단도 필요하다. 

무기수리공장에 대해 논의하다. 나는 이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군 정치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다.

남조선 정체정세 대해 논의하다. 남조선에서 무장 대오들이 탈주하고 있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무장 해제시켜 조사하고 잠시 동안 붙잡고 있다가 남조선으로 귀환시키거나 혹은 억류하라고 답변하다. 이들에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급양? 돈?

남조선을 위한 지하신문의 발행에 대해 논의하다. 임시적으로 발행이 중지되었다. 

 

1947년 1월 5일 

휴일, 로마넨꼬, 김일성과 함께 객차에 머물다. 저녁때 영화 '적들', '석화'를 보다. 좋은 영화들이다. 

 

1947년 1월 6일 

공항에서 로마넨꼬와 김일성을 전송하다. 김일성과 대화하는 동안 대회에서 보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다. 

호도르꼬프로부터 전보가 오다. 나를 위해 1월 20일 보로비하 여행권이 준비되어 있다고 알려오다.

후르소프에게 전화하다.

조선인에게 군복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동의한다. 

모스크바에서 군복을 긴급히 재봉하게 하다.

북조선대학에 농업용구를 양도하다. 북조선에 소련제 병원차 1대를 제공하는 것에 동의하다.

 

1947년 1월 7일 

솔라호프와 꼴초프에게 조선과 만주의 주요 군사도로들을 촬영하여 영화필름에 담는 문제를 숙고하라고 지시하다.

로마넨꼬가 보고하다. 인민위원회 회의가 개최되다. 선거 실시에 대한 결정서를 채택하고, 중앙선거위원회를 조직하다. 김일성이 군수 문제로 성진에 있는 군부대에 4일간 다녀올 비행기를 요청하고 있다. 

메레츠꼬프가 모스크바에서 전화하다. 요동반도의 민정청 문제에 대한 1945년 12월 암호문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다. 불가닌이 그에게 내 건강 상태에 대해 물어 보았고, 치료를 위해 휴가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불가닌은 나와 직접 전화로 통화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1947년 1월 8일 

레베제프를 접견하다. 그의 조선 파견과 사업 착수 절차에 대해 논의하다.

로마넨꼬가 김일성의 성진 방문용 비행기를 요청하다. 이영 등의 반대파 그룹들과 기타 지방할거주의적 활동가들의 로동당 영입 문제를 제기하다. 반대파 주요 지도자들의 로동당 영입을 금지시키다. 지방할거주의자들의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영입시키게 하다. 개인적으로 일정 기간 당내에서 지도적 지위를 맡는 것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영입시키거나, 영입 자체를 금지시키게 하다. 평당원들도 개인적으로 영입시키게 하다. 로마넨꼬는 북조선의 몇몇 지도자들이 반대파들을 영입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하다. 

그비쉬아니에게 전화하다. 여름에 소련 극동지역에서 어부로 일하는 조선인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불해 줄 것을 요청하다. 

[#18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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