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처벌법안, 곧 美의회 통과할 듯...초당적 지지
셰일 발전으로 OPEC 의지 안해도 돼...2015~2016 1차 승리

美 연방의회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가격담합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의 입법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석유생산자 담합 금지법’(NOPEC·No Oil Producing and Exporting Cartels Act 2019)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지난 4일 하원에 상정돼 7일 법사위를 통과했다. 사실상 OPEC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조만간 하원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고, 상원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올라와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노펙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8일 보도했다. 노펙 법안이 통과돼 실제 발효될 경우 미국과 OPEC 간 '제2차 석유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노펙 법안은 미국 국내의 반독점법(Antitrust laws)에 근거한다. OPEC 담합에 참여한 나라에 미국이 제재를 가하거나 해당국 정부 인사를 기소해 미 법정에 세울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만약 노펙 법안으로 미 정부의 제재가 현실화하면 정부 수입 대부분을 석유 수출로 충당하는 OPEC 회원국들은 심각한 경제난에 처할 수 있다.

노펙 법안은 가격 담합에 참여한 석유 생산국의 미국 내 자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는 미국에 정유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FT는 NOPEC 입법이 지난해 12월 카타르가 57년 만에 OPEC에서 탈퇴한 이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이 법에 의해 카타르가 텍사스에 보유하고 있는 100억 달러 규모의 골든 패스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투자가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OPEC 회원국들은 1960년대 이후 석유 생산량 담합을 통해 국제 유가를 주무르며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중동으로부터 원유를 대거 수입해온 미국은 반독점법에서 OPEC 회원국들을 면책 대상으로 간주해 처벌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하지만 FT는 "노펙 법안에 소극적이었던 예전과 현재의 미 의회 분위기는 다르다"고 했다.

상·하원 모두 노펙 법안을 초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데다 거부권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또한 OPEC에 적대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2011년 출간한 자신의 책에서 OPEC의 담합을 처벌하는 반(反)OPEC 법안을 주장했다. 지난해에도 트위터에 'OPEC이 전 세계를 상대로 바가지를 씌운다'면서 여러 번 OPEC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의 반OPEC 행보를 두고 미 현지 언론들은 "OPEC을 압박해 저유가를 유지해야 미국 내 유권자들의 인기를 얻어 재선에 도움이 된다는 정치적 고려도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 정가 분위기가 달라진 근본적 이유는 2015~2016년 미국 셰일 업계와 OPEC 간의 '1차 석유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국제 석유 시장 판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자국 원유 수요 상당 부분을 수입으로 충당했다. 하지만 셰일 석유 채굴 기술 발전을 토대로 원유 생산을 급속히 늘리면서 미국은 지난해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됐다. 자국 내 원유 수요를 자국 내 생산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되자 미 의회에서는 '예전처럼 OPEC과 긴밀하게 지낼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 퍼졌다.

노펙 법안이 가시화되자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은 "노펙 법안이 제정되면 OPEC이 대대적인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가장 유력한 보복 조치는 대규모 증산을 통한 저유가 전략이다. OPEC 회원국이 산유량을 대폭 늘려 국제 유가가 낮아지면 OPEC 회원국의 수입도 줄지만, 미 셰일 업계의 수익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보복 조치가 현실화되면 2015~2016년 OPEC이 저유가 전략으로 미 셰일 업계의 파산을 유도했던 미국·OPEC 간 석유 전쟁과 흡사한 '2차 석유 전쟁'이 재연된다. 뉴욕타임스 등은 "OPEC이 저유가 전략으로 미 셰일 업계를 굴복시킬 순 없지만, 셰일 업계에 타격을 입힐 힘은 있다"고 했다. 

사우디 등 OPEC 주요 회원국은 한편으로 러시아가 주도하는 비(非)OPEC 산유국 10개국을 OPEC에 통합하는 새 산유국 기구 창설도 추진 중이다. 비OPEC 산유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미국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는 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OPEC·비OPEC 산유국들이 새 산유국 기구 창설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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