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기술력 때문에 거래하는 경우, 과세 면제하려던 법안
공정위·민주당 반발...기재부 "의견 반영해 시행하지 않겠다"
공정위가 세법에 간섭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도

 

기획재정부가 추진하던 기업 규제완화 법안이 공정거래위원회와 여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특허와 같은 독점 기술력을 가진 회사가 특수관계법인과 거래해 일감몰아주기 기준을 어쩔 수 없이 넘을 경우 증여세를 면제해주겠다는 내용이 세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삭제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정부는 간섭도, 규제도 하지 않을 것이며 새로움에 도전하는 과학기술 연구자를 응원하고 혁신하는 기업을 도울 것"이라며 친기업 성향의 메시지를 보냈으나 정작 규제완화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정부는 7일 국무회의를 열고 일감몰아주기 예외 규정 도입이 백지화된 내용의 ‘2018년도 세법 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재부는 지난 1월 "수혜 법인(기업)이 규격, 품질 등 기술적 특성상 전후방 연관관계가 있는 특수관계법인(대주주 일가가 대주주인 회사)과 불가피하게 부품, 소재 등을 거래한 매출액을 과세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의 초안을 발표했으나 최종안에서는 삭제됐다.  

기재부는 지난달 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일지라도 특허 등 독점 기술을 가진 경우 일감몰아주기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었다. 당시 기재부는 "특허 관계나 기술적으로 거래할 수 밖에 없는 경우(까지) 과세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당시 기재부의 발표는 독점 기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래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경우에도 중과세하는 건 지나치다는 경영계의 반발과 국회의 지적을 의식한 것이다.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해당 회사나 대주주 일가의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데, 그 경우 길게는 몇십년 동안 쌓아온 기술 비밀과 노하우까지 통째로 넘어가게 돼 매각이나 지분정리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대주주 일가 지분이 3% 이상인 관계사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는다. 대주주 일가 등이 지분을 보유한 특수관계법인과의 매출액이 정상거래비율(대기업 30%, 중견기업 40%, 중소기업 50%)을 넘으면 지배주주에게 증여세를 매기도록 하고 있다.

기재부가 당초 발표했던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특수관계법인이 관계사에 특허를 보유한 부품이나 소재를 납품할 경우, 내부거래에서 제외한다. 가령 대기업집단 관계사와의 내부거래 비중이 35%이고, 그 가운데 특허 등 독점 기술과 관련된 거래가 10%인 경우 세법상 간주되는 내부거래는 25%가 되기 때문에 증여세 부과 대상에서 빠진다.

하지만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고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기재부는 공정위에 지난달 18일 의견조회를 보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공정위는 당시 '이 같은 제도가 일감 몰아주기를 회피하거나 악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정위 의견을 반영해 개정안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며 "향후 공정위와 공동 실태조사를 통해 과세 제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재추진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추진전략회의에서도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 예외 규정 도입에 문제를 제기했었다"며 "당시 공정위 반발이 거세 결국 빠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당시 회의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렸고 기재부에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공정위에서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각각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내 반발 기류를 의식한 조치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우 민주당 의원실은 기재부의 용역 의뢰에 한국재정법학회가 작성한 ‘일감 몰아주기 과세의 실효성 제고 등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예외 규정 신설 관련 내용이 보고서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예외 조항 도입시 부작용도 경고했다며 기재부를 비판했었다.

한편 공정위의 개입으로 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수정된 것을 두고 비판도 제기된다. 공정거래법에서 규율하고 있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이 법률은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 성격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을 근거로 공정위가 세법에 간섭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는 지적이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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