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부족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꼭 ‘세금’이어야만 하나
세금을 써야만 한다면 꼭 ‘누진세’이어야하는가
희소성에서 출발한 ‘자원의 제한’도 무너지고 있는데
생각을 풀어주면 창의성이 큰다!

조윤희 부산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금성고 교사

방학. 시간을 풀어놓아주는 교사들의 시간은 마냥 노는 시간이 아니다. 필자도 방학 기간 동안 근 열흘에 가까운 특별 평가연수 그리고 경제교사 연수를 5일 끝낸 지 이틀 만에 개학을 맞고 말았다. 교사는 방학동안 크는 셈이다.

이번 방학 동안 의미 있게 받은 경제교사 연수(KDI 주관)의 경험을 잠시 공유하고자 한다.

<프로젝트 기반 PBL(문제해결) 학습>이 그것인데, 구조화된 탐구과정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학습자중심의 교수학습 방법을 경제개념 중심으로 풀어가는 연수프로그램이었다.

이번 방학에는 주로 세금과 경제정책과 보험. 그렇게 세 주제를 다루었다. 

● <세금 사용 설명서>, 세금 배우기

가상의 마을이 있다. 세금을 가르치기 위한 모듈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 마을에 여러 가지 복지시설이 부족하며 그 마을의 복지시설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탐구해 보는 것이 학습의 요점이었다.

교재에서는 ▲공공재(공공시설) 특성 ▲세금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세금의 종류 ▲세금 부과 방식 등을 탐구해 가며 하나씩 알아가도록 그렇게 짜여져 있었다.

여러 직업을 가진 마을의 구성원들이 있는데 마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시설이 있지만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어떤 시설이 가장 최우선적으로 갖추어져야 하는지 논의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 시설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예산도 짜내야 항다. 추가로 세금을 얼마나 어떻게 더 걷는 것이 좋겠는지 알아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모둠별로 토의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만들어 내고 또 수렴해 가는 것이 문제해결 학습의 내용이었다.

 다음과 같은 납세자들이 있다. 그리고 각 각 그들의 연봉을 알려준다.

그림 1 마을사람들의 시설 선호도
그림 1 마을사람들의 시설 선호도
그림 2 마을 사람들의 소득 현황(프로젝트기반 경제교육 시리즈 3번 모듈에서 발췌)
그림 2 마을 사람들의 소득 현황(프로젝트기반 경제교육 시리즈 3번 모듈에서 발췌)

앞서 제시한 마을 주민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원하는 복지시설의 유형을 추려낸 후, 추가로 얼마나 더 걷어 어떻게 시설을 만드는 것이 마을전체의 주민들 요구에 잘 부응하는 방법이 될지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정해진 답은 없었다.예시 답은 추후에 제공되었는데 그 예시답안은 ▲ 만족감과 관계없이 소득이 많을수록 많은 세금을 내는 방안 ▲만족감에 따라 비용을 배분하는 방안 ▲소득이나 편익에 관계없이 비용을 똑같이 내는 방안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 ‘제한된 자원’의 조건부터 생각을 뒤집어보기

필자는 새로운 방안을 제안했고 다행히 비슷한 생각을 하는 조원끼리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비례세(flat tax)를 걷자. 동일 세율이어도 이미 소득이 많은 사람은 많이 낼 수밖에 없다.
▲비경제활동 인구는 제외하자. 면세대상과 과세대상은 구분하자.
▲반드시 한 해에 모든 시설을 제공해야 한다는 단서는 없으므로 연차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하자. 
▲만족도가 높은 순서로 하자. 만족도가 높을수록 편익이 크다.
▲가처분 소득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게 하자.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최선이다.
▲경제현상은 동태적이다. 정태적으로 볼 대상이 아니다.
주어진 조건에 있는 단서들을 보니 시설 건립이 한 해에 다 만들어져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다. 우리는 계속 토론하며 생각을 수렴시켜갔다.

▲공공시설을 만드는 것이 꼭 세금으로만 가능한가 ▲세금의 효과는 의도를 반영하는가 ▲누진세만이 답인가 ▲자원은 언제나 제한되어있는가 ▲경제현상이 정태적인가 ▲최소한의 과세로 가처분 소득이 늘어야 생산과 소비가 더 활성화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끊임없이 토론했다. 특히 경제교과서에서 말하는 일종의 법칙을 제시하기 위한 전제부터 우린 문제가 많다는 의견에 합의했다.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문제해결. 이 또한 우린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현실사회에선 이미 기술의 발달과 과학의 힘으로 제한의 영역을 확대시켜놓고 있다. 셰일가스가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의 한계를 무너뜨렸고 또 원자력이란 에너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 제한된 조건만 두둔하는 것은 다양한 사고로 확산시키려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막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 조건을 반영하되 창의적으로 하라

주어진 이 자료를 참고로 설계를 해야 했다.

그림 3 교사용 지도서에 탑재된 만족감과 공급비용
그림 3 교사용 지도서에 탑재된 만족감과 공급비용

주어진 자료로 모든 모둠이 설계를 해야 했다. 나중에 발표할 때 확인했지만 5개의 모둠 중 네 개의 모둠이 교집합으로 네 가지 항목을 선택했다. ▲누진세로 부과할 것 ▲복지 시설을 한 번에 확보할 것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그 순간만을 고려.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할 것. 모둠마다 발표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걱정이 앞섰다. 이러한 결정을 거의 대부분의 교사 집단이 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만일 교실 밖 세상에서도 그렇게 어마어마한 누진세를 적용해야 한다면 이 고사들도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개인의 자유 특히 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는 ‘공익’이라는 이름 앞에 무의미해 보였다. 이미 기존에 세금을 내고 있음이 전제되어 있었고 추가로 어떻게 과세할 것인지 고민하라는 것이었는데 어떤 모둠은 무려 ‘48%의 누진세’를 부과하고 있었다.

과세를 위한 소득 구간을 나누는 나름의 정교한(?)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필자가 속한 모둠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재산권,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고민은 없어보였다. 그런 생각이 고스란히 교실에선 학생들에게 정당화 될 것이라는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우울했다. 가처분 소득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사업이 생겨날 가능성이 생기고, 각자 개인의 효용에 따른 소비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며, 저축이 늘거나 투자의 가능성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었다.

복지시설을 만들어 내라는 요구는 당장 필요한 것이지만 그러한 요구를 한번에 들어주고 나면 그 다음에 연쇄적으로 일어날 경제 현상은 보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경제현상이란 것이 한 시저에서만 볼 수 있는 정태적 현상이 아님을 잊고 있는듯했다. 경제현상은 끊임없이 선순환 될 수 있는 정태적 현상임을 고려한다면 주어진 시점에서의 과중한 조세가 그 다음 어떤 현상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은 4개의 모둠들 중 어느 모둠에서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개인의 안정된 소득을 보장해 주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보태져 그 이후 도리어 조세저항 없이 납세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충분히 할만 했지만 그런 것은 고려 대상 밖인 듯했다. 물론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합리적으로 답변했고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면서도 3년이 지나면 48%이상의 세금을 걷자고 한 모둠보다 시설을 더 많이 갖출 수 있다는 결론덕분에 설득력이 있어서였는지 <합리적 과세정책 경연>에서는 필자의 모둠이 1등을 할 수 있었다.

추가로 노인복지회관을 포함한 각종 시설을 만들 때 기업들의 컨소시엄을 열어 수익자 부담의 훌륭한 시설을 만들어 다른 시도에서도 그 시설을 찾아오게 만드는 도시로 만드는 모형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부연 설명으로 박수를 받기도 했다.

빨간 모둠의 결정.
빨간 모둠의 결정.

● 창의적 문제해결은 자유로운 생각에서 시작

반드시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조건을 허물었고, 반드시 세금으로만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로 유연한 생각을 유도했다.

굳이 적시되어 있지 않다면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복지를 실시하는 방안으로 주민들의 편의를 돕고 최대한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보장한다는 원칙으로 주민들의 신뢰를 얻어 협상력을 높였다. 개인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 삶의 만족을 높여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이 모든 것의 대전제는 언제나 공익이 정의롭고 최적이라는 고정관념을 흔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교실의 문제는 교과서니 교사의 뇌리에 국가 주도의 모든 결정이 언재나 정의롭고 정당하다는 생각에서 기인되고 있다. 개인의 자유쯤이야 함부로 해도 공익을 위해 용인된다는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이미 지난 번 칼럼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우리의 교과서에서부터 ‘자유주의적 정의관’ 대신 ‘공동체 주의적 정의관’만을 고수하기로 한 쏠림이 이미 곳곳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개인의 책임의식, 개인의 자유, 이러한 올바른 각성 없이는 대충 묻어가고 국가가 다 알아서 해주기만 바라는 의존적 자세를 바꾸는 것이 너무나 요원하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먼저 깨어 자신의 자유, 자신의 재산권을 지키려는 생각을 바로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교사는 방학에도 쉬지 않고 연찬을 거듭하며 성장해야하는 이유이다.

조윤희(부산 금성교 교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