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아무리 바보라도 잘하는 게 하나는 있다. 이 정부가 딱 그렇다. 허공에 돈 뿌리는 재주 하나는 타고 났다. 작년에는 최저임금 파동 무마해보겠다고 일자리 안정자금이란 걸 만들어 마구 뿌렸다. 요건이 안 되는 사업장. 신청을 하지 않은 업체라도 상관없었다. 1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해야 신청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고 지원 조건만 맞으면 신청하지도 않은 사업장에도 돈을 지급했다. 그 돈이 지난해 2조 9708억 원이었고 올해는 2조 8188억 원이다. 대략 6조원인데 이번에는 그보다 액수가 네 배나 크다. 정부는 24조원 규모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관련 23개 사업에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마트에서 물건 하나 살 때도 요모조모 따져보는 게 상식이다. 이 물건이 자기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필요와 가격은 맞아 떨어지는지 가늠해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런 절차 화끈하게 생략하고 시행하겠다는 얘기다. 이유는 어이없다 못해 황당하다. 경제 부총리의 말씀을 옮기자면 “비수도권은 예타 통과가 어려워 사업 추진이 늦어지고,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예타 통과가 어려운 건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지 비수도권이라서가 아니다. 예타의 주요 평가 항목은 경제성(35~50%), 지역균형발전(25~35%), 정책성(25~40%)이다. 아무리 의도가 선량해도 타산성이 떨어지면 탈락이란 얘기다. 그런데 그거 지금 안 따져보겠다는 말이다. 아무리 자기 돈 아닌 세금 쓰는 일이라지만 이런 무책임한 정책이 없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악순환’이라는 말은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예타 제도 자체를 없애라

정책은 무책임하고 내용은 코믹하다. 4조 7천억 원이 들어가는 남부내륙철도 사업은 이번 예타 면제 사업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사업은 과거 예타에서 탈락했던 사업이다. 탈락했던 사업을 되살려 놓았으니 대체 그동안 예타는 왜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사업은 이것 말고도 7개나 더 있다. 국가균형발전이란 명분이다. 더 웃긴 건 3조 1천억 원으로 규모 2위인 평택-오송 복복선화 사업이다. 이건 지자체가 신청도 안 한 사업이다(예타 면제 요청은 국토부가 했다). 신청도 안 한 업체에 일자리 안정 자금을 지급한 것과 하나 다를 게 없다.

예타 면제를 놓고 여당과 친여(親與)시민단체에서도 비판을 쏟아냈다고 하는데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속으로는 신난다. 여타 면제를 받은 지역 주민들은 돈이 풀린다니 안 좋을 리가 없다. 시민 단체도 마찬가지다. 그 동안 보수 정권을 토목 정권이라 비난해 왔으니 ‘면피’ 차원에서 비판하는 시늉만 낼 뿐이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다. 동네에 작은 다리 하나 놓은 것도 의정활동 보고서에 올리는 판에 사회간접자본(SOC)사업 유치는 치적 중의 치적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만한 홍보거리가 없다. 모두가 신났다. 입이 나온 것은 못 받은 지역 주민들뿐이다. 돈 잔치에서 자기들만 소외된 기분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게 신나는 일일까.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3년 운행을 시작한 용인 경전철에 들어간 총 사업비는 7천억 원이다. 이 경전철은 한 량의 열차를 평균 6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이 경전철은 예타를 통과한 사업이다. 당초 예타 심사에서는 하루 평균 이용 승객을 16만 명으로 추산했다. 실제로는 하루 평균 3만 명 남짓이다. 매일 13만 명 정도의 운임이 적자로 남는다. 일주일이면 91만 명, 일 년이면 거의 5천만 명 분의 손실이 난다. 대한민국 국민이 의무적으로 1년에 한번은 타줘야 수지가 맞는다는 얘기다. 8년 전 개통한 김해 경전철도 비슷하다. 부산과 김해를 잇는 경전철인데 매일 30만 명의 이용자가 있을 것이라며 사업을 설명했다. 당시 김해 인구는 30만 명을 조금 넘었다. 실제 예타에서는 예상 이용자를 18만 7천 명으로 낮췄고 현재 이용자는 하루 평균 3만 3천명 수준이다. 대형마트에서는 2만 원 이상 구매 고객에게 경전철 무료 이용 교환권을 증정한다는 행사까지 벌였지만 반응은 없었다.

삽질 한 번 잘못하면 지자체와 해당 주민들이 골병이 든다

용인 경전철과 김해 경전철은 매년 5백억 원 안팎의 적자가 발생한다. 이 적자는 지자체 부담으로 돌아온다. 운영업체의 실제 수입이 예상 수입보다 적을 때 그 차액을 물어줘야 하는 것이다. 2013년 김해의 한 시민단체는 국가와 교통연구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철도ㆍ도로 같은 SOC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한 책임을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에 물은 첫 주민 소송이었다. 소송을 제기했던 시민 단체의 구성원들은 경전철 건설 논의 때부터 반대 입장이었다. 수요는 부풀려져 있었고 결과는 빤했기 때문이다. 그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반대를 김해 지자체와 시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경전철은 지역 숙원사업이었고 시민들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시의원 24명 가운데 반대자는 둘 뿐이었다. 그때 제동이 걸렸더라면 김해시 재정은 지금보다 훨씬 양호했을 것이다. 시민 단체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소송 이유를 밝혔지만 국가와 교통연구원은 실존하는 ‘누군가’가 아니다. 소송에 져서 물어준다고 해봐야 결국 세금이다. 현실적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도, 책임을 질 수도 없다.

면제 받았다고 무작정 좋아할 일이 아니다. 당장 돈 풀리는 것만 보고 향후 감당해야할 눈덩이를 보지 않으면 결과는 도시 파산이라는 끔찍한 악몽으로 돌아온다. 2016년 9월 스위스 국민들이 국가연금 지급액을 10% 올리자는 법안을 부결시켰던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연금 지급액을 올리면 궁극적으로 세금을 더 내게 될 것이라는 앞날의 재앙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국민들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다. 기술 설계, 전문 설계 등의 절차를 거치면서 객관적이고 엄격한 잣대로 ‘자체 심사’를 해야 한다. 내 돈 쓴다고 생각하고 판단을 해야 한다. 꼼꼼히 따져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 반납까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에 그래도 정신 줄 놓지 않고 있는 국민들도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못 받아서 안달인데 무슨 헛소리야, 하며 23개 사업체가 끝까지 합창을 하신다면 나는 대한민국에 제 정신인 국민은 하나도 없다는 명제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지겠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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