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범 칼럼] 북핵에 굴복해 '치킨' 되는 '서울코뮌'으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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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1.26 09:08:55
  • 최종수정 2018.01.27 00:42
  •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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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비시 괴뢰정부, 평화주의 명분 국가수호 회피
레지스탕스 소탕·유대인 체포에 독일군보다 앞장서
'두령 숭배'로 국민 현혹…피아구분·정체성 아노미 빠져
文정부 애매한 스탠스, 비시정부 혼돈 떠올리게 해
남북 치킨게임서 "오직 유화주의" 천명은 필패전략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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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중 나타난 프랑스 비시(Vichy) 정부의 공식 이름은 ‘프랑스 국’이며 나름 프랑스를 대표하는 공식 정부였다. 이에 맞서 영국에서 세워진 드골의 망명 정부도 초기엔 일부 국가의 지지를 받았을 뿐 미국과 소련마저 상당 기간 비시 정부를 프랑스의 합법정부로 인정했다. 이 괴뢰 정권은 나치의 강포에 굴복하고 자국 수호에 수반되는 책무를 평화주의란 이름으로 회피했던 필리프 페탱 및 그에 호응하는 다수 군중의 합작품이었다.

국가권력 책임성 실종의 상징과도 같은 이 정권의 행태는 기이했다. 히틀러의 군사력을 직감한 비시정부의 언론인들은 독일의 강요 없이도 히틀러 이념 전파에 앞장섰다.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친나치의 비시정부군 샤를마뉴 부대는 독일군과 합류하여 소련 원정까지 나섰고 베를린 함락 순간까지 독일을 위해 시가전에서 싸웠다. 비시 정부 지방 관료들은 독일에 포로가 된 프랑스 군인의 아내들을 점령자들인 독일군과 짝지어 주기 사업도 추진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은 독일군보다는 이 비시 정부의 프랑스 경찰과 민병대에 의해 훨씬 더 많이 소탕되었다. 프랑스에서 독일군은 유대인 체포에 나설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이는 약 7만 명 정도이던 프랑스 유대인의 검거를 비시 정권이 담당해 주었기 때문이다. 국시를 ‘노동-국가-조국’으로 정하고는 괴뢰정부 두령 필리프 페탱은 개인숭배로 도배했다. 이 괴뢰 정권 정체성의 혼란은 후일 자신을 해방하러 온 연합군에 대해 어느 지역은 환영을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무력으로 맞서는 아노미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오늘 북핵을 이고 사는 한국 정부가 취하는 애매한 스탠스에서 비시 정부의 혼돈을 떠 올렸다. 미국과의 안보협력에 국방을 의존하는 빤한 상황에서 반미의 응석으로 재미를 얻으려는 기이한 구도 말이다. 이 정부가 언제까지 이런 곡예로 재미를 볼 수 있을지, 또 현 구도에 대한 바른 책임 있는 이해가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 남북 핵 게임 구도에서 전통적 게임이론의 타당성은 매우 한정적이다. 겁쟁이 게임(chicken game) 이론의 시사대로, 남북관계의 대치 상황에서 남북 간 충돌은 공멸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에 북측이 이를 자제할까?

답은 노. 북의 핵 공격에 미국이 자동적으로 핵으로 맞서주기란 상상 밖으로 난삽하다. 위 상황에서 핵을 가진 북이 먼저 공격하여 핵폭발이 오직 한발만 있어도, 아수라의 우리 측 자중지란 와중에 미국의 도움은 상상 외로 느릴 것이며, 그보다는 핵전쟁 확산을 막자며 주변 4강이 강압적으로 개입한다. 먼저 공격한 북측의 선제행동에 대한 권리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며 더 이상의 도발을 중지시키고 남측의 강경 대응을 억제하는 강제적인 수습책을 취하려 한다.

비핵화 혹은 핵무장이 남북 쌍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 상태라면 북핵 도발은 어떤 방어책으로든 제어가 어렵고 위에서 본대로 제한적인 핵 도발조차 쌍방공멸을 우려한 상호 자제가 아니라 남측 일방의 패배로 귀결된다. 먼저 핵을 사용한 자가 반드시 승리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며 교과서의 겁쟁이 게임 이론이 틀렸음을 밝혀질 것이다. 우린 이걸 말하기 싫어할 뿐이다. 우리 손에 핵이 없는 이상, 적시에 빌려줄지도 불확실한 남의 핵우산에 매여 있거나, 본질상 부족한 방어적 사드 몇 기에 그마저 주민의 눈치투표 봐가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상황에서 이게 가장 유력한 결과이다.

또 다른 약점은 남북 치킨 게임에 임하는 문재인 정부의 전략의 치명적 결함이다. 치킨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특정 행동전략을 취하겠다는 사전천명(pre-commitment) 전략을 쓰는 측이 결정적으로 유리하다. 그런데 이 사전천명을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치킨게임을 상위에서 형성한다고 알려져 있다. 북이 비핵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사전천명했음에도 북의 연초 회견에 끌려 두 달 간 무사하자고 북의 핵력 위세장으로 만들어 준 것은 대패착이었다. 적어도 우리가 올림픽 개최국가라는 위치에너지를 가진 이상, 북이 올림픽에 참여하려면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것을 그들에게 사전천명하는 면밀함이 있었어야 했다.

대북 관계의 사전천명 전략에서 문재인 정부의 최대의 실책은 이 정권이 어떤 식으로든 전쟁이란 대안은 결코 택하지 않는다는, 곧 북이 무력과 평화공세 중 어느 쪽으로 나오든 이쪽에선 오직 유화주의로만 나가겠다고 못박아버린 점이다. 중국 앞에 밝힌 ‘3불’노선 선언은 그 자승자박의 완성이다. 남북 핵 게임에서 100퍼센트 패배를 선약해 놓은 것이다. 전쟁을 위협해 오는 적에겐 전쟁으로 맞설 수 있다는 결의를 보여야만 정작 전쟁을 억제하고 뮌헨조약의 영국이나 페탱의 비시 정부 꼴 되는 걸 피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북이 제한적 핵도발의 유리함을 실행에 옮길 경우 예상되는 가장 음울한 예상은 피폭된 우리 내부에서 또 다른 괴물, 곧 비시 정부와 같은 ‘서울 코뮌’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미 당한 핵 공격은 고난이지만 북과 타협하여 남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이라도 보전해야 하겠다며. 북도 이에 호응하여, 핵공격 사태를 제멋대로 야기했다는 북 내부의 ‘모험주의자’ 지휘관 일부를 처형하고는 상황 타개를 정리하고 남북 협상에 나선 후 핵전 승리자의 보상을 굳힌다.

핵 피폭 후 남측의 코뮌정부는 거국적 성격을 표방하나 본질상 친중 및 친북성향의 괴뢰 정부가 된다. 이 코뮌 정권에 반대하는 일부 반공주의자, 자유민주주의자, 시장경제주의자 등은 남쪽 혹은 어딘가에 이에 반대하여 망명 정부를 세우지만 국방, 외교 능력은 미지수다. 내적으로는 적폐 놀음, 대외적으로는 어설픈 평화 구호 놀음에 일관하던 정권이 남겨 넣은 방어 자원은 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치안을 내세우며 신좌파 코뮌 정권은 이 망명 정부의 토벌에 나선다. 그 와중에 남해안엔 보트 피플이 이어지고 발동선 값은 폭등한다.

비시 정부와 위 서울코뮌의 공통점은 폭력에 굴복하고 임시적 평화의 착시에 안주하려는 피난민 에스프리가 지배하는 것이다. 무책임한 정권이 큰 폭력에 기생하며 제 권세 누리는 것이다. 그런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반미로 방위 능력을 스스로 자해하고 북핵 게임에서 필패의 전략들을 취하면서도 자주를 표방함은 확신도 없는 축문을 제 귀에 끊임없이 입력하는 무녀의 자기최면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결국 남북 치킨 게임에서 남측은 고스란히 치킨이 되어 버린다. 도대체 정부의 으뜸 책무가 무엇이던가. 자위를 포기했던 프랑스 비시 정권은 결국엔 독일의 직할 점령지로 몰락하여 역사에서 사라졌고 전후 철저히 심판을 받았다. 그나마 그것을 심판할 프랑스가 살아남았을 경우에 생긴 일이다. 이 정부는 현 안보정책의 위기를 인정하고 근본 틀을 새로 짤 자세가 되어 있을까?

올림픽 참여하겠단 북의 한 마디에 정권과 온 언론이 감격하여 그 중계에 몰입하는 나라가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정권이 한심하고 때로는 국민도 무섭다. 여당 정책위위장의 진의 담긴 실언으로도 보이는 ‘평양 올림픽’은 철부지 핵 놀이꾼도 나름 스포츠와 예술을 사랑할 줄 안다는 ‘고상한 불량배’의 선전장이 되어 간다. 다시 만난 남북 게임의 첫 수부터 패착으로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이다. 대화 자체보다 무엇을 위한 협상인가가 더 중요하며, 궁극적으로 비핵화 아니라면 스포츠든 개성공단이든 금강산이든 다 무익하다. 북측이 평창의 여흥 누린 후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를 요구하곤 정작 비핵화는 애매한 은유만 남긴 채 손 털고 가버리면 짝사랑에 실연한 자의 낙심만 애잔할 것이다.

올림픽은 순간이고 정권은 몇 년이되 대한민국은 항구적이어야 한다. 쇼트트랙의 짜릿한 흥분은 순간에 불과하고 그 몇 시간 후 직면할 엄연한 핵 폭력 앞에서 느낄 허무는 어찌하려고. 두 달 시간 얻은 뒤 북핵 능력은 또 저만치 가 있을 텐데. 그 밑에 날로 굴종해 가는 한국판 비시 정부가 줄 안보 불능은 어찌 감당할 것인지. 혹 우리는 이미 핵력에 굴복하여 치킨이 되어 버린 서울코뮌 체제 밑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가?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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