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칼럼] 황교안의 자격을 물을 자격
[이정훈 칼럼] 황교안의 자격을 물을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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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자유민주주의의 아버지 존 애덤스...'도덕적 개혁'과 '공화적 갱신' 제공
집권여당으로 체제전복 세력 통진당과 공생했던 오합지졸들이 '황교안의 자격'을 묻는 기가막힌 현실
지금은 한미동맹을 지키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행동과 결과의 리더가 필요한 시기
황교안의 자격을 묻는 정치인들이여,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성찰해 보라
이정훈 객원 칼럼니스트
이정훈 객원 칼럼니스트

1952년 제이콥 탈몬(J. L. Talmon)은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의 기원”이라는 명저를 출판했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측면도 있지만 ‘전체주의적 파시즘’의 전조가 되었다고 상세히 밝혔다. 링컨과 마르크스, 루스벨트와 무솔리니처럼 양립 불가능한 정치의 길을 걸었던 지도자들이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서 다른 교훈을 얻었고 전혀 다른 정치를 추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역사는 이렇게 아메바처럼 단세포적 사고에 고착된 편협한 인간들의 신념과 다르게 복합적이다.

프랑스 혁명에 비판적인 필자는 탈몬의 주장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2차 세계대전 후 세계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주에 주목한다. 대한민국 건국 세력에게 건국의 영감을 준 미국적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실천적-제도적 기틀을 마련한 인물은 메사추세츠의 위대한 청교도 법률가 존 애덤스(1735-1826)였다. 칼빈주의자였던 존 애덤스의 정치사상은 18-19세기 미국의 자유주의(liberal)와 공화주의(republican) 양대 학파에 모두 계승된다. 필자가 주목하는 그의 탁월함은 ‘도덕적 개혁’과 ‘공화주의적 갱신’이라는 정치적 실천 원리다. 급진적 혁명과 다르면서도 품위 있게 스스로의 모순을 성찰-갱신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적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만 폭력을 지양한다. 그는 ‘법의 지배’를 기초로 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작동 원리를 제공했다.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탄핵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대통령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의무 위반을 파면 결정의 중대사유로 인정한 판결문을 읽을 때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아니,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본질적으로 부정하는 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준 소감이 어떤가?”라는 질문이 필자의 질문 의도에 더 가깝다. 탈몬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대통령탄핵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얻은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 때문이다.

신재민의 용감한 폭로도, 민간인이었던 최순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권력형 비리 게이트인 국회의원 손혜원의 국정농단 사건도,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는 엄청난 상황 속에서 국회의원 서영교의 진짜 사법농단 사건은 그냥 국회의사당 앞 한강 물처럼 흘러만 간다. 우리의 생존기반인 한미동맹은 흔들리고 북핵 문제에 중요한 역할을 해 줄 우방 일본과는 적대적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 경제는 몰락 중으로 양극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미친 권력을 견제할 세력도 능력도 없다. 100석 이상을 보유한 야당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존재감 없는 사실이 가끔 경이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실천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한 비겁하고 실패한 정치가들이 투사인양 마이크를 잡고,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온 어르신들을 선동한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표현으로 말이다. 그리고 선동가들은 황교안이라는 인물의 자격을 묻는다. 대중은 표현이 강렬하고 자극적일수록 “투사”로 지지하며 기꺼이 선동되는데 주저함이 없다.

필자는 1956년 서독이 동독공산당과 연계됨은 물론이고 소련 공산당과 내통하는 독일공산당을 체제전복 세력으로 지목하여 해산시킨 기념비적 위헌정당해산 결정의 역사적 의미를 독일의 자유민주평화통일과 연계하여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등장이었다. 독일공산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결정이 없었다면 평화적 독일 통일이 가능했을까? 말로는 무엇을 못하겠는가? 해산된 통진당과 국회에서 공생하면서 집권 여당의 유리한 고지에 있으면서도 북한과 연계된 대한민국 전복세력을 어떻게 해산시킬 수 있을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오합지졸들이 지금 황교안의 자격을 묻고 있다.

통진당을 ‘위헌정당’으로 지목해 해산시킨 쾌거는 훗날 우리가 자유민주평화 통일을 독일처럼 달성할 수 있다면, (지금은 그 반대의 상황이 우선 떠오르지만) 독일공산당 해산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헌정사의 탁월한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실행한 그 실천력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대통령권한대행의 임무와 권한에 대한 이해도 없이 배신자 또는 탄핵의 종범이라는 온갖 음모론을 퍼뜨리는 자들을 보면서 필자는 우리의 정치의식과 수준에 심히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헌절차도 모르면서 열정만으로 개헌반대 운동에 투신하는 자칭 우파 대중의 슬픈 현실과 거친 언행 말고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저급한 선동으로 당권만 손에 쥐면 문재인 세력의 몰락과 더불어 상당수 의석을 그냥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한심한 전략이 바로 주사파의 재집권을 돕고 망국을 가속시킬 것이라고 확신하게 만든다. 지금은 위기의 순간에도 한미동맹을 지키기 위해 사드 배치를 신속하게 실행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했던 행동, 즉 말잔치와 선동이 아니라 행동과 결과를 보여주는 리더가 필요한 시기다.

다시 존 애덤스로 돌아가 보자. 그의 도덕적 개혁론과 공화주의적 갱신은 구체제를 무조건 옹호하여 몰락의 길로 국가를 끌고 가거나 기득권이나 지키는 수구 집단이 집권할 수 없는 선진정치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냉전 시대에 악의 제국 소련을 무너뜨린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세워진 것이다.

필자는 특정 정치인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선진적 법치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한국이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직면한 고뇌를 우리가 리더를 선택하는 방식과 정치적 경쟁을 펼치는 형상을 통해 표현하고자 함이다.

유권자의 수준에 딱 들어맞는 정치인을 보유하게 되는 것은 현실 정치의 냉정하고도 당연한 결과물이다. 우리가 변해야 하는 이유는 아주 선명하다. 현 정권의 국정농단 앞에서도 무력한 우리 자신을 보면서도 아직도 존 애덤스가 외친 “도덕적 개혁”과 “공화적 갱신”이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그리고 이러한 개혁과 갱신을 실천할 수 있는 리더보다 당장 듣기에 속이 시원한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인물들이 더 좋다면,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망국의 길에서 유튜브의 음모론에 심취하거나 계속 거리에서 울분을 쏟아내는 것으로 소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는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황교안의 자격을 묻는 자격 없는 정치인들에게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성찰해 보라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물론 유권자들이 변하지 않으면 경고가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정훈 객원 칼럼니스트(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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