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영화들 “이래도 80년대 저주하지 않을래?라며 윽박질러
-하지만 80년대는 고도성장과 물가 안정의 시대였다
-전두환과 5공에 대한 재평가 필요하다
-그 진실이 퍼져야 뒤틀린 운동권이 설 자리 없어져

조우석 객원칼럼니스트(KBS 이사)
조우석 객원 칼럼니스트

1000만 관객이 들었던 한국영화의 상당수는 대선이 치러지는 해에 전략적으로 개봉됐다. 그건 영화판이 작품 자체를 대선용 기획상품으로 개발하며, 좌익-좌파 후보에게 젊은이 표를 몰아주는 선전선동 역할을 임무로 알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한국영화가 돈파-좌파의 사악한 결합, 즉 좌익 상업주의로 굴러간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일테면 노골적인 노무현 옹호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관객수 1200만 명)의 경우 2012년 대선 3개월을 앞두고 개봉했다. 그 직후에 개봉됐던 게 요즘 난리인 ‘1987’의 예고편 격인 ‘남영동 1985’이었는데, 고문장면으로만 두 시간을 가득 채우니 멀쩡한 관객이라면 진저리가 쳐진다.

다행스럽게도 그 영화는 관객 30만이란 초라한 성적에 그쳤지만, 좌익 영화는 그래도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다. 몇 달 전부터 TV 영화채널에 시도 때도 없이 방영돼 우리 눈을 더럽히는 중인데, 물론 ‘1987’을 많이 보게 하려는 홍보용 떡밥이다. 지난여름 개봉된 ‘택시운전사’ (관객수 1218만 명) 역시 철두철미 대선용 상품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 영화 개봉 당시 좌익-좌파는 느긋했다. 대통령 탄핵에 이미 성공했고, 대선에서도 승리해 목표를 조기 달성해뒀으니 남은 건 대한민국 현대사를 무한 왜곡-저주하면서, 그걸로 돈다발이나 세어보자는 심보였다. 광주 5.18을 다룬 최악의 영화 ‘화려한 휴가’ 역시 대선이 코앞이던 2007년 개봉했다.

그런 작품에 대중은 깜빡 속아 넘어가니 환장할 노릇이지만, 내 눈에 미학도 여운도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래도 80년대를 저주하지 않을래? 이래도 대한민국이 반칙-특권이 판치던 더러운 나라였다고 믿지 않을래?” 어디 한국영화뿐인가? 이 나라의 인문사회과학을 포함한 온갖 지식정보가 온통 그렇게 반사회적이고, 결정적으로 오염됐다.

그래서 신군부의 80년대를 향해 침을 뱉고, 전두환을 악마라고 손가락질하는 운동권적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에만 충실하다. 지난 글에서 나는 영화 ‘1987’, 그 전의 ‘남영동 1985’, 그리고 ‘택시운전사’ 따위가 주입시키려는 1980년대에 대한 인식이 과연 맞는가를 따져 보겠다고 호언했다.

1980년대 재인식 없이 올바른 현대사는 없으며, 청와대 권력까지 장악한 386세대의 구원도 불가능함은 물론 이 나라의 앞날도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영화 ‘1987’과 달리 박종철이 공산주의 신봉자이며, 87년 항쟁의 최종 승리자는 주사파라는 인식에서 더 나가 현대사의 고비였던 80년대를 제대로 알아보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왜 80년대 재인식이 중요한가? 386운동권이 태동한 게 당시이고, 그걸 기점으로 70년대 반정부 투쟁을 하던 재야세력은 반체제-반대한민국을 외치는 운동권 세력으로 완전 탈바꿈했다. 그래서 중요한데, 광주5.18을 빌미로 해서 반미 구호가 등장하는 건국 이래 첫 정치사회적 변화도 이때 이뤄졌다.

그렇다. 반대한민국 세력은 우남의 건국, 박정희의 부자 나라 만들기 과정에서 등 돌렸던 비판 세력을 한 축으로 하고, 신군부의 80년대를 부인했던 운동권 세력이 또 한 축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따져 물어야 한다. 80년대가 정말 문제 있는 건 아닐까? 경찰은 양심적 대학생들을 물고문해 죽이고, 신군부 자체가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뒤 탄생한 부정의한 권력은 아닐까?

그것이 잘못임을 당당히 입증해야 현재의 종복 좌익세력, 주사파 세력을 지적-도덕적으로 압도할 수 있다. 80년대의 인식이라는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우익은 존립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단언하는 바이지만 80년대는 저주 받아야 할 시기가 아니며, 전두환 역시 악마가 아니다.

외려 그 정반대가 맞다. 지난해 나온 <전두환 회고록>이 밝힌 대로 무역수지 흑자, 한국형 원자력도 높이 평가해야 하고, 다양한 규제 해제(연좌제 금지, 통금 해제, 교복자율화)는 개방사회의 시작을 알렸다. 지금 우리는 2% 경제성장에 목매고 청년실업과 사회양극화에 신음하지만, 그때는 전혀 안 그랬다.

신군부가 ‘포스트 박정희’의 연착륙에 성공한 결과 86~88년 3년 연속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뤘고, 물가는 3% 미만으로 안정됐다. 누구 말대로 모두가 중산층이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에 살았다. 그게 엄연한 진실이다. 불과 30년 전의 체험이라서 명백한 동시대의 체험이기도 하다.

그걸 이념의 안경을 쓰고 왜곡-곡해하는 게 운동권인데, 사람들은 이제 그런 장난에 지쳤다. 진실에 목마르다. 필자인 내가 느끼는 체감도 그러한데, 지난 해 ‘전두환과 80년대의 진실’ 시리즈를 유튜브 강의 12회로 내보냈는데,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때는 장사를 해도 잘됐고, 사회도 안정됐으니 정말 최고였다는 댓글이 수두룩했다.

80년대의 의미는 그 이상이다. 경제학계의 원로인 안병직 교수, 그의 제자 이영훈 교수 등의 학문적 개종과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의 전향도 당시에 이뤄졌음을 염두에 둬보라. 그들은 80년대 들어 무역수지 첫 흑자를 달성하고, 3저 호황으로 번 달러로 외채 망국론을 삽시간에 잠재우는 기적을 지켜보면서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서 얼치기 변혁이론인 마오이즘이나 종속이론을 내동댕이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가 자립적 자본주의로 간다는 비전에 대한 공감이었다.(안병직-이영훈 대담집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58쪽) 그런 열린 태도 대신에 이른바 사구체 논쟁에 코 박던 시대착오적 무리도 있었다. 그들이 훗날 저질 운동권으로 성장했는데, 아직도 80년대를 저주 받은 시대로 색칠한다.

누군 물을 것이다. 신군부의 효율엔 나름 인정한다 해도 광주 5.18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들을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저들은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를 만들어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고 집권했던 전두환을 악마로 그리고 있지만, 그것 또한 황당한 운동권 논리에 불과하다.
 

영화 포스터. 왼편부터 영화 <화려한 휴가>, <남영동1985>, <1987>, <택시운전사>

광주5.18이 정권욕에 사로잡힌 신군부가 저지른 학살극이란 건 한마디로 근거 없다. 당시 전두환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계엄사령관도 아니었다. 단지 합수본부장이자 정보책임자 신분이라서 발포 명령과 무관하며 광주사태 당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건 오래 전 12.12 검찰 수사 등에서 확인된 얘기다.

차제에 진실을 말하자. 전두환 집권을 도운 것은 역설이지만 김대중이었다. 서울의 봄 당시 대권에 눈 멀었던 그는 김영삼에게 세력이 밀리자 호남을 등에 업은 채 민중봉기 방식의 뒤집기에 올인했다. 그게 광주사태 직전 서울역 앞 운동권의 대규모 시위로 표출됐다.

그 일환으로 최규하 정부를 협박했다. 5월 22일까지 정권을 넘기지 않을 경우 민중봉기를 일으키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은 것이다. 오래전 정치학자 노재봉 교수가 “광주사태 본질은 김대중의 외곽을 때리는 기술”이라고 지적했던 것이 그래서 설득력 높다. 좋다. 만일 그 이전에 전두환이 성공적으로 김재규에 대한 사형집행을 못했을 경우 어찌됐을까?

궁정 쿠데타 성공 속에 김재규-정승화 일당이 집권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또 다른 역(逆)쿠데타를 부를 경우 대한민국은 중남미형 쿠데타 빈발 국가로 전락했다. 여차여차 해서 직후 김영삼-김대중이 집권에 성공했다고 치자. 그 경우 나라는 어지럽고 IMF 외환위기를 포함해 1990년대의 혼란은 10년 이상 앞당겨 80년대 대한민국을 덮쳤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 더 확인하자. 왜 운동권과 좌익은 5공, 신군부, 전두환 그리고 80년대라면 그렇게 부르르 떨까? 자명하다. 넥타이부대로 상징되는 중산층의 분노를 촉발시켜 그들을 반대한민국 세력에 합류시키려는 고단수의 전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저번에 언급했던 사실상의 좌우합작 체제, 즉 민주화의 외피를 쓴 공산주의 세력과 자유민주 세력이 동거하기 위해선 그런 ‘조작된 분노’가 필요했다.

이제 전두환과 80년대의 진실이 눈에 들어오시는가? 당신의 선택은 둘 중의 하나다. 운동권의 꼭두각시로 살 것인가, 현대사를 편견 없이 받아들여 자유인으로 살 것인가? 자, 이 글의 마무리다. 정말 80년대에 대한 재인식이 문제다. 당시를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시기로 보느냐, 반대로 박정희의 패러다임이 나름 유지-연장됐던 시기로 보느냐에 따라 인식이 확 갈린다.

전두환과 5공 재평가는 그래서 절실하다. 그래서 영화 ‘1987’을 보고 눈물 훔쳤다는 얼간이들이 사라졌으면 좋겠고, 그런 걸 부채질하는 엉터리 언론도 부디 정신 차리길 원한다. 무엇보다 그런 삼류 문화권력-언론권력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필자에게 주어진 임무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조우석 객원 칼럼니스트(KBS 이사,전 미디어펜 주필)

<편집자 주>외부 칼럼은 PenN의 편집방향과 일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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