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코프 일기로 본 북한역사 #15, 스티코프, 북한 역사교과서 목차까지 짜서 제공
스티코프 일기로 본 북한역사 #15, 스티코프, 북한 역사교과서 목차까지 짜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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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2.01 10:05:32
  • 최종수정 2019.02.0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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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 창출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레베데프 소장은 “북한의 역사는 소련군의 진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기회가 날 때마다 “북한의 역사를 만들어준” 소련 당 중앙과 소련군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설과 서한, 발언들을 남겼다.

[편집자 주] 티렌티 포미치 스티코프(Terenti Fomitch Stykov), 1907년 2월 28일부터 1964년 10월 25일까지 살았던 소련의 군인. 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스티코프가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남긴 일기를 발굴해 연구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스티코프의 일기를 통해 드러난 소련의 '북한 김일성 세우기 프로젝트'를 2004년 12월 30일 책으로 만들어 중요한 한국근현대사 자료를 보충했다. 전 교수의 '스티코프 일기' 연구는 미국과 일본에 집중됐던 해외소재 한국사 자료가 서유럽과 동유럽, 러시아 지역까지 확대됐다는 평가를 받는 연구 업적이다. 소련군 정치장교였던 스티코프가 남긴 일기는 단순히 개인사를 넘어 소련의 한반도 정책과 1945년 해방 직후 남북한의 정치, 경제 상황, 한국전쟁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적 원천이 되고 있다. 특히 스티코프를 정점으로 하는 북한 주둔 소련군사령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사태전개에도 깊게 개입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스티코프의 일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소련공산당이 38선 이북 지역에 소련을 추종하는 공산 위성정권을 세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적나라하게 개입하여 괴뢰정부를 세웠는지를 입증하는 내용증명이기 때문이다. 스티코프는 일기 형식의 비망록을 통해 소련공산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정해준 사실, 북한 헌법을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이 직접 만들어준 사실, 심지어 북한의 역사를 기술할 때 지침이 되도록 역사책의 목차까지 짜 준 사실, 김일성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북한정권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내각의 장차관은 물론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회의 대의원을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의 재가를 얻어 정한 사실 등을 적어놓았다. 따라서 이 자료를 독파하면 북한이 얼마나 소련을 추종하는 괴뢰집단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내용증명이다.

절판이 되어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스티코프 일기'를 펜앤드마이크(PenN)는 전 교수의 해제부터 책 그대로를 온라인 공간으로 옮긴다. 다만 책의 제목이 '쉬띄꼬프의 일기'로 되어 있는 것을 요즘 사용하는 용어로 바꾸어 '스티코프 일기'로 바꾸었다. 게재 순서는 전 교수의 해제를 시작으로 스티코프의 일기를 1946년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를 제1부, 1946년 12월 2일부터 1947년 2월 4일까지를 제2부, 1947년 7월 7일부터 10월 4일까지를 제3부, 1948년 7월 26일부터 10월 2일까지를 제4부로 편집하고 있는 책의 흐름을 따를 예정이다. 책 후반부에 별도로 첨부돼 있는 1946년 9월 28일 여운형의 북조선 방문에 대한 스티코프의 보고나 소련 군인으로 1945년 해방 후 평양 소련군정에서 소장 계급으로 민정 사령관을 지냈던 안드레이 알렉세예비치 로마넨코(Andrei Alekseevich Romanenko)와 여운형의 대화 기록도 순서에 따라 게재할 예정이다.

쉬띄꼬프 일기 2부
(1946. 12. 2~1947. 2. 4)

[1946년 12월 25일부터 26일까지]

 


1946년 12월 25일

끄라프초프에게 남북조선의 정치 상황에 대한 자료 수집에 착수하도록 지시하다.

소꼴로프에게 지방정권기관들의 선거 총결 자료들을 준비하도록 지시하다.

군관구 극장 여배우 라리나의 무대 경력 50주년을 맞아 축전을 보내다.

빤쉰이 조선 방문 결과에 대해 보고하다. 전연방공산당(볼)사 교과서 편찬 사업의 경과에 대해 이야기하다. 혁명기와 혁명 이후 시기의 장(章) 수와 장의 규모가 부정확하게 이야기되다. 좋지 않은 느낌이 난다. 

까라비노프가 방문하다. 재정 관련 서류들에 서명하다. 요동반도 주재 민정청 정원과 조선 주재 민정청 정원 관련 서류를 놓고 가다. 

1만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 증기선을 타고 일본에서 북조선으로 귀환하고 있다. 어떠한 조치를 취애햐 할지 지시를 내리다. 

로마넨꼬가 전화하다. 박헌영과의 대화 내용을 전하다. 그는 훈령과 절차에 동의하고 있지만 법령 공포 후에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령이 공포되기 3일 전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성명서로 법령에 반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박헌영이 김규식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그는 이승만과 김구의 정체를 대중 앞에 폭로한 것처럼 김규식의 정체도 폭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흥분하지 말고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고 지시하다.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그의 옳지 못한 결정들을 근거로 폭로해야 한다고 조언하다. 

[편집자 주] 1945-50년 해방공간에서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을 비롯한 좌익들은 사안이 생길 때마다 소련군정의 정치사령관 스티코프에게 의견을 묻고, 그의 지시를 받아 행동했다. 심지어 박헌영은 스탈린으로부터 신전술 지령을 받아 1946년 가을, 9월 총파업과 10월 대구폭동을 일으켰으며, 이때 시위대의 구호와 슬로건은 물론, 활동방향, 자금까지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았다. 이런 내용을 스티코프는 자신의 일기에 낱낱이 기록해 놓았다. 위의 내용 중 "박헌영이 김규식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는 부분이 그 증거다. 

치스짜꼬프(치스짜꼬프 이반 미하일로비치 대장, 소련 제25군 사령관)의 명의로 새해를 맞이하는 조선인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다. 하지도 축하 메시지를 발표하다. 

조소합작주식회사 문제로 김일성과 대화하다. 김일성이 꼬스띌레프스끼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며, 그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줄 것을 요청하다. 협정의 의미에 대해 나의 설명을 들은 후 그가 그냥 가다. 김일성은 삐라와 관련하여 기분이 좋지 않다. 삐라에는 이승만이 미국의 앞잡이이며 김일성은 소련의 앞잡이라고 쓰여 있다. 삐라에는 또한 북조선으로부터의 양곡반출을 반대하는 선동적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삐라에는 양곡이 소련으로 반출되고 있다고 쓰여 있다. 육류 조달 계획 - 2000톤 이상을 요청하고 있다. 전리품 중에서 군대에 군복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편집자 주] 소련군정은 북한을 ‘민주기지화’ 하는 과정에서 저항세력을 철저히 탄압했다. 북한의 민주기지화란 곧 공산화는 뜻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공산화에 반대하는 자들을 체포하여 집단 수용하기 위해 1947년 특별 노무자 수용소를 함경북도(궁심·학포·하면·고건원·아오지·오봉), 평안남북도(고방·덕천·성흥·신창 등), 황해도 등 17개소에 설치했다. 설치된 지역은 대부분이 탄광·광산지대였다. 이것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모태다.

나는 북조선 주민에게 양곡을 공급하는 문제, 국가 예비를 조성하는 문제에 대한 결정을 채택해야 한다고 결론짓다.

군용열차에서 우리 군인들이 하차하여 주민들에게 난폭하게 굴고 약탈행위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살인까지 범한 사건이 발생한다. 

소련군대는 철수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국민당에게 넘길 것이고, 인민위원회 위원들은 뿔뿔이 도망치고 있으며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서기장 강양욱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는 내용의 삐라가 확산되고 있다. 강양욱이 서명한 결정서를 공포하라는 조언을 주다. 

소련 병사와 장교들의 난폭행위와 약탈행위에 대해 보고할 것을 지시하다.

[편집자 주]  ‘위대한 붉은 군대’ ‘친근한 벗 소련군’의 북한 진주는 약탈로부터 시작하여 굶주린 이리떼처럼 살인, 강도, 강간, 약탈, 폭행을 일삼으면서 평양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소련은 극동전선의 모자라는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하바로프스크, 민스크, 모스크바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잡범들을 출옥시켜 활용한 때문이다.  
평양 시내에서는 밤이 되면 소련군 순찰병이 공포의 대상이었다. 순찰병의 일부가 약탈과 강간을 자행하여 8월 말~9월 초에는, 특히 부녀자들은 밤에 밖에 나다니지 못했다. 시민들은 자위수단으로 골몰마다 널빤지로 벽을 쌓았고, 집집마다 소련군이 기어들어올 경우 놋그릇을 두들겨 위험을 이웃에 알렸다. 심지어 소련군을 위대한 해방자, 친근한 벗이라고 추켜세운 한재덕의 집마저 소련군의 습격을 당해 각종 시계, 반지, 지갑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생활도구를 약탈당했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주민들에게 귀중품 강탈, 부녀자 강간 등의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하기와라 료(萩原遼)의 기록에 의하면 일본군이 만든 방공호 속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리고 조선인들은 “아, 또” 하고 귀를 막고 그 자리를 황급히 떠나는 것이 일상사였고, 소련군 여군 병사에 의한 조선인 남자 사냥도 있었다고 한다. 

흥남비료공장 등의 기계와 설비들을 해체하여 소련으로 보내면서 민심이 이반되기 시작했다. 소련군 범죄가 늘어나자 9월 6일 경 소련주둔군 사령부의 포고가 나오면서 소련군 병사들의 만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포고령에 따라 만행을 저지른 소련군 병사가 공개 총살당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스탈린은 1946년 1월 “북조선 인민들을 괴롭히는 군인들을 붙잡아 즉시 총살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민심이 수습되지 않자 1947년에는 뜯어갔던 기계와 시설을 다시 흥남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원산시 위수사령부에서는 강도 강간 등으로 붙잡힌 소련 군인 10여 명을 즉시 총살했고, 함흥에서도 10여 명이 총살됐다. 원산시 위수사령관 흐레노프 소좌가 주민들에게 금품을 뜯어내고 일본인 여자를 농락한 사실이 드러나자 치스차코프 사령관이 현지에 와서 그의 계급장을 떼고 소련으로 강제 귀국시켜 군사재판에 회부한 일도 있었다. 

24명이 영화관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다. 서울에서 5명이 도착하다. 

불가닌이 전화하다. 나의 건강상태와 향후 나의 계획에 대해 묻다. 모스크바로 갈 필요가 있겠는가? 현지에서도 치료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의사들을 만나 상의해서 그 결과를 1946년 12월 26일 알리기로 약속하다. 

 

1946년 12월 26일 

의사 샤삐로, 추릴로프, 치르꼬프가 다녀가다. 의사들은 재차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완강히 고집하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침 6시에 쁘로닌이 모스크바에서 선거 문제로 전화하다. 선거구, 분구 선거위원회의 구성과 선동과 정치사업의 진행에 대해 보다 자주 소식을 전해줄 것을 요청하다. 

1946년 12월 22일 소로낀이 모스크바를 출발했다. 그는 선거에 관한 일체 서류를 가져올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인쇄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전문도 가져올 것이다. 

뜨베르도흘레보프 동지에게 지시를 전달해야 한다.

끄라프초프를 호출하여 로동당의 정치교양 고재 작성 계획에 대해 조언을 주다. 조선의 정치상황에 대한 보고서 준비를 서두르라고 지시하다.

북조선로동당 정치교양 교재 계획안을 작성하다. 전영방공산당(볼)사 교과서, 소련역사 교과서, 식민지 예속국가들의 현대사 중 [조선] 부분 등 자료를 살펴보다. 

<교과서 편찬 계획>

서론

교과서는 어떤 목적을 지니는가? 누구를 독자로 하는가? 교과서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 교과서는 조선역사 교과서나 당사 교과서가 아니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책임 있게 밝혀야 한다. 조선의 지리적 역사적 과거, 독립을 위한 조선민족의 투쟁, 일본인들의 지배와 찱취, 교과서는 일제 압제로부터 해방 이후 북조선의 정치적 고양기, 민주개혁의 시기를 포함하고 있다. 

제1장 조선 -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1. 조선의 지리적 위치
2. 영토와 인구
3. 국가제도
4. 사회경제제도 : 농업관계, 공업의 발생과 발전, 민족문화, 신분제도, 법률관계

제2장 1895년 이전 외세의 조선침략 기도

1. 일본의 침입 1592년-1598년
2. 몽고의 침입
3. 만주(청)의 침입
4. 유럽 열강(프랑스, 미국)의 조선 침입
5. 1876년 조일조약
외세의 조선침략 기도에 대한 조선인민의 투쟁을 서술한다. 

제3장 조선의 국권상실과 일본식민지화(1904-1945년)

1. 청일전쟁(1894-1895년)과 그것이 조선에 미친 영향
2. 조선 쟁탈을 위한 로일전쟁
3. 로일전쟁과 일본의 조선 강점
4. 일본의 조선병합(1910년)
5. 일본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 착취

제4장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조선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조선

1. 독일, 일본, 이탈리아 군벌의 전쟁준비
2. 아시아 강점을 위한 일본의 준비와 지향
3. 일본이 중국과 소련을 공격하기 위한 병참기지로 조선의 활용
4. 일본의 대미전 참전
5. 조선에 대한 카이로, 얄타, 포츠담 협정
6. 일본의 정책과 조선부르주아지의 반역행위에 반대한 조선인민의 투쟁

제5장 소련의 대일전 참전과 일본 압제로부터 조선의 해방

1.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
2. 일본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최후 통첩과 일본의 반응
3. 대일 최후통첩에의 소련의 참여
4. 소련의 대일전 참가, 일본의 투항
5. 소련군대의 조선 진출
6. 인민대중의 정치의식의 고양과 인민정권의 수립
7. 정당·사회단체의 조직
8. 모스크바 삼국외상회의의 조선 문제에 대한 결정

제6장 인민위원회 정권의 강화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창설

1.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창설과 당면과업
2. 진정한 인민정권기관으로서의 인민위원회
3. 민주개혁과 인민위원회의 제법령
4.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

제7장 북조선공산당과 북조선신민당의 북조선로동당으로의 통합

1. 조선공산당 약사, 인민대중의 이익을 위한 조선공산당의 투쟁
2. 조선신민당 약사
3. 합당, 서신 교환과 회담, 합당 절차
4. 합당대회외 대회에서 결정된 사항들
5. 조선로동당 강령
6. 조선로동당 규약
7. 사회단체에 대한 당의 방침
8. (남)조선공산당에 대한 당의 방침

제8장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수립

1. 통일전선 수립의 목적
2.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 가입한 정당들
3.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 가입한 사회단체들
4.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강령, 규약, 사업

[편집자 주] 스티코프를 위시한 소련군정 지도부는 북한의 교과서 편찬내용 및 세세한 목차까지 작성하여 제시했다.  스티코프는 1946년 12월 26일자 일기가 그 증거물이다. 말하자면 북한 역사 교과서 편찬계획과 관련하여 북한의 역사 교과서 준거안을 소련군정 지도부가 작성하여 넘겨준 것이다. 이처럼 소련이 작성한 준거안에 의해 날조된 북한의 역사 교과서와 친북, 친공산주의 사관이 국내 좌익들에 의해 남한 쪽을 파고 들어 친북, 친공 사관이 남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북한 정권을 창출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레베데프 소장은 “북한의 역사는 소련군의 진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기회가 날 때마다 “북한의 역사를 만들어준” 소련 당 중앙과 소련군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설과 서한, 발언들을 남겼다.

모스크바로 불가닌에게 전화를 걸다. 그가 자리에 없다. 그와 통화할 수 있도록 연결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끝내 통화하지 못하다. 

의사들(추리꼬프, 샤삐로, 치르꼬프)의 입회하에 진찰을 받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다.  

[#1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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