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카라카스서 반정부-친정부 시위 동시진행
美포함 미주 우파국가, 과이도 의장 임시대통령 인정
인권단체, 이틀간 시위로 베네수엘라 전국에서 13명 사망

후안 과이도 의장 [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후안 과이도 의장 [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베네수엘라에서 2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같은 날 마두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야권 지도자를 임시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다는 성명을 냈다.

로이터·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우파 야권과 지지자 수만 명은 이날 오전 수도 카라카스에서 국기를 흔들고 마두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런 가운데 우파 성향의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35)은 자신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언하고 정권 퇴진운동에 나섰다.

이날은 1958년 베네수엘라에서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 독재정권이 대중 봉기로 무너진 날로, 마두로 대통령은 재취임한 지 13일 만에 퇴진 위기에 직면했다.

과이도 의장은 시위대를 이끌며 "재선거를 요청하는 군의 지원 속에 임시로 대통령을 기꺼이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회에 앞서 올린 트윗에서 "전 세계의 눈이 우리나라로 쏠리고 있다"며 "베네수엘라는 오늘 거리에서 다시 태어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이도는 앞서 마두로를 권력 강탈자라고 규정하고 과도정부 수립을 위해 열리는 이날 시위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군은 카라카스 중산층 지역인 엘 파라이소 등지에서 시위대를 향해 고무총탄과 최루탄을 발포하며 해산을 시도했다. 타치라 주 산 크리스토발 시에서는 진압 경찰과 시위대간에 충돌이 발생, 2명이 총격으로 사망하고 5명이 부상당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집회 참가자들이 국기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집회 참가자들이 국기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반정부 시위에 앞서 미주기구(OAS)는 베네수엘라 정부에 평화적인 반정부 시위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미주기구는 성명을 통해 "사회적 항의와 표현의 자유는 모든 민주 사회의 근본적 가치"라며 "과도한 공권력으로 시위를 억압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밝혔다.

마두로 정권 지지자들도 카라카스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붉은색 옷을 입은 채 반정부 시위대를 겨냥해 '반역자' '매국노'라는 구호를 외쳤다.

마두로 대통령은 수도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 밖에 모인 수천 명의 지지자를 상대로 한 연설에서 "헌법에 따른 대통령으로서 제국주의 미국 정부와 정치·외교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며 미 외교관들을 향해 72시간 내에 출국할 것을 명령했다.

군부는 과이도 의장의 임시 대통령 선언을 거부했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부 장관은 트윗에서 "군인들은 불투명한 이해관계에 의해 강요되고 불법적으로 자칭한 대통령(과이도 의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군은 우리의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 주권의 보증인이 될 것"이라며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고수했다.

마두로 정권 지지자들 [EPA=연합뉴스]
마두로 정권 지지자들 [EPA=연합뉴스]

이날 반정부 집회에 앞서 전날 밤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지지자들 간의 충돌과 약탈로 초래된 혼란 속에 13명이 사망했다고 AFP 통신이 경찰과 시민단체를 인용해 전했다.

사회갈등관측소는 16세 남성이 카라카스에서 시위 도중 총격을 받고 치료 중 숨졌다고 전했다.

경찰은 브라질 국경과 접한 남동부 볼비라르 주의 주도인 볼비바르 시에서 약탈 도중 3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인권단체는 각지에서 일어난 시위로 지난 이틀간 13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볼리바르 주 산 펠릭스에서는 수십명의 시위대가 마두로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자 베네수엘라 사회주의의 상징인 고(故)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에 방화하기도 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국제유가 하락 속에 미국의 경제제재가 더해져 초래된 극심한 식량난 등 경제빈곤을 못 이겨 많은 국민이 해외로 탈출하는 가운데 지난 10일 두 번째 6년 임기를 시작했다.

마두로는 지난해 5월 치러진 대선에서 68%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야권은 유력 후보들이 가택연금, 수감 등으로 선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치러진 대선이 무효라며 마두로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퇴진을 요구해왔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미주 13개국도 지난해 대선을 공정하지 못한 부정선거라고 규정하고 마두로를 새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5일 취임한 과이도는 마두로의 취임 다음 날인 11일 "마두로를 대신해 임시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하며 다시 한번 야권이 주도하는 정권 퇴진운동을 개시했다.

베네수엘라 북부 바르가스 주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과이도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행정학 석사를 마친 친미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2007년 반정부 학생시위를 주도하고 2011년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해 대다수 미주 우파국가들은 야권의 정권 퇴진운동을 지원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다"며 "다른 서방 국가들도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EU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목소리가 무시될 수 없다"면서 "자유롭고 신뢰할 만한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루이스 알마그로 미주기구 사무총장도 즉각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북미의 캐나다와 브라질, 칠레, 페루, 파라과이, 콜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 중남미 우파정부들도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쿠바, 러시아, 볼리비아, 멕시코 등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계속 인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치 상황이 악화할 경우 마두로 정권을 더 압박하려고 이르면 금주 중으로 석유 등 에너지 부문에 대한 추가 제재를 내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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