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 칼럼] 불행한 기부, 외로운 기부
[황승연 칼럼] 불행한 기부, 외로운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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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가 기부자나 사회 모두에게 축복인 나라 미국, 기부가 불행이 되는 나라 한국
국회에서 증여세에 관한 법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과 같은 기부는 요원
타인의 성공을 시샘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유전자 탓
부자의 노력을 폄하하고 선의를 왜곡하는 사회주의 정서 탓
기부의 선의를 의심하는 사회 풍토와 법을 바꾸어야 신뢰사회 가능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작년 11월, 미국의 블룸버그 회장은 자신의 모교인 존스홉킨스 대학에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18억 달러(약 2조 원)를 기부하였다. 자신도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 국가장학금, 학자금대출, 근로장학금 등으로 학교를 졸업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곳에 총 64억 달러(약 7조2천억 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냈다.

2017년 미국인은 총 4100억 달러(약 460조 원)의 기부를 했다한다. 이는 우리나라 정부의 1년 예산보다 많다. 빌 게이트 부부는 48억 달러를 기부해 1위였고,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부부가 20억 달러로 2위를 했다. 워런 버핏은 매년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5%를 기부하고 있고, 작년의 기부액은 34억 달러로 책정되었으며 현재까지 그의 기부 총액은 467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만든 자선 재단을 통해 기부를 하고 있다. 또 미국의 이름 있는 많은 대학들은 대부분 기부에 의해 만들어 졌고, 지금도 기부가 대학 예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부자들과 비교하여 우리나라 부자들은 기부를 잘 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 언론들은 종종 부자들을 불법, 편법, 탈세, 부의 세습, 갑질 등의 단어를 써서 탐욕의 화신으로 묘사하곤 한다. 간혹 부자들은 존재해선 안 될 악으로, 국민들의 돈을 약탈하는 도둑으로 간주되곤 한다. 무엇이 우리나라 부자들을 이렇게 만들었으며, 왜 우리나라 국민들은 부자들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황필상 박사의 불행한 기부

새해 첫날 안타까운 부음 기사를 읽었다. 지난 12월 31일 황필상 박사의 별세 소식이었다. 빈민촌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막노동을 하다 군대에 다녀와 26세 늦은 나이에 아주대학교를 입학하였다. 대학 졸업 후 프랑스 정부 장학생에 선발되어 프랑스 국립과학응용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를 지냈다. 교수직을 떠나 1991년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를 창업하여 큰 성공을 이루었다. 2002년 가족들을 설득해 당시 시가가 177억 원에 달하는 회사의 주식 90%와 현금 15억 원, 총 192억 원을 모교인 아주대학교에 기부하였다. 아주대학교는 이 기부금으로 ‘황필상 아주장학재단(현 구원장학재단)’을 설립해 2008년까지 733명의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그런데 2008년 세무당국은 갑자기 구원장학재단에 140억 원의 증여세를 부과하였다. 공익법인 출연재산이 영리 법인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인 경우 5%(성실 공익 법인의 경우 10%)를 초과하는 지분에 대해서 증여세를 부과한다는 세법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기업의 오너들이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으려고 공익 법인을 만들어 주식을 증여하고 이 공익법인을 통해 회사를 지배하려는 편법 증여, 편법 상속의 꼼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장학 재단의 재산은 압류당하고 그동안 지급되었던 장학금 지급은 중지되었다.

세금은 장학재단 뿐 아니라 연대납세자로 지목된 황필상 박사 개인에게도 적용되어 가족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압류를 당하는 고통도 겪었다. 재단 측은 2009년 세금부과가 잘못이라며 증여세 부과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 재판부는 2010년, ‘장학재단에 기부한 행위가 경제력 세습이 아닌 순수한 장학사업을 위한 것이므로 편법증여로 볼 수 없다’며 재단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세무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를 하였다. 2011년 2심 재판부에서는 ‘장학재단이 황필상 박사가 재산을 출연해 설립한 비영리법인으로서 특수관계가 성립하므로 회사의 승계의 위험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세무당국의 증여세 부과가 적법하다고 판결하였다. 2009년부터 시작된 이 고통스러운 재판이 대법원 판결까지 8년간 계속되었다. 그동안 140억의 증여세와 연체가산세 85억까지 더하여 납부해야할 세금은 총 225억이 되었다. 결국 2017년 4월, 대법원에서는 ‘경제력 세습과 무관하게 순수한 기부를 목적으로 한 주식 증여에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최종 판결하였다. 최종 승소 판결을 마치고 나오면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왜 기부를 해서 범죄자로 몰리나 후회를 많이 했으나, 그 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기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재판이 종결된 지 1년 8개월 후 2018년 마지막 날, 재판 진행 중 얻은 암이 악화되어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기부로 인하여 8년간 큰 고통을 받고 불우한 말년을 지냈다. 가난으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그의 숭고한 기부는 불행한 기부가 되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20여 년 전의 그의 유언에 따라 모교인 아주대학교 의료원에 기증되었다.

송금조 이사장의 외로운 기부

대학에 큰 돈을 기부한 후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낸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경암교육문화재단 송금조 이사장의 얘기이다. 1923년생인 그의 세대가 다 그러했듯이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에서 크게 성공한 후 교육문화사업을 벌인 그는 부산대학교에 기부를 약정하고 그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는다. 그에게 2003년 어느 날 부산대학교 총장이 찾아와 경남 양산에 제 2 캠퍼스를 짓는다며 기부를 부탁하였다. 양산은 그의 고향이었다. 부산대 기부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기부 약정액수는 당시에 기부액 중 최고액인 305억 원이었다. 기부 약정액수 중 195억 원을 몇 차례 나누어 지급하고 110억이 남아있었던 어느 날, 기부금이 원래 기부목적과 다르게 사용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에 대해 대학 측에 항의하고 사과를 원하였다. 하지만 총장은 항상 변명과 거짓말로 일관하며 나머지 약정금의 조기 납부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아름다운 기부 약정이 치욕스러운 채무가 되어 대학과 9년 넘게 송사를 벌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학에, 기부금이 목적과 다르게 쓰인다는 항의를 한 후, 기부 목적이 ‘캠퍼스 부지대금’이라고 확인한 약정서를 받았다. 이미 납부한 195억 원 중 다른 곳에 전용한 75억 원도 곧 채워놓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부산대 발전기금이사회에서도 만장일치로 이를 확인하고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의결서를 작성해 보냈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 되는 듯했다.

그러나 총장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일부 교수들은 기부금 유용을 거론하며 이에 책임이 있는 총장을 공격했다. 특히 총장선거를 앞두고 기부 받은 캠퍼스부지 대금을 건물 신축과 교수들의 연구비로 지원한 것을 비난하였다. 수세에 몰린 총장 측은, 송이사장이 기부금을 내기 싫어서 억지를 부리고, 총장선거에 개입하여 총장을 낙선시키려 한다는 등으로 말하면서 기부자를 비난했다. 더욱이 송이사장이 기부한 돈이 탈세한 돈이라거나 더러운 돈이라는 말을 퍼뜨리며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또 전용한 돈을 채워놓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총장은 재선에 성공하였다.

학교는 195억 원 중 부지대금 34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161억 원을 다른 곳에 사용한 것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 월간지에 기부자를 모욕하는 내용의 거짓 기사가 나왔다. 기부금이 기부목적과 달리 유용된 것 뿐 아니라 명예를 훼손당하는 상황에 이르자, 송이사장은 남은 기부금 110억 원의 잔존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채무부존재확인’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의 결과, ‘학교는 기부자에게 사과하고 나머지 기부금의 청구를 포기하라, 기부는 현재 상태로 완료된 것으로 본다’며 나머지 기부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재판으로 기부목적을 확인받고 기부금 유용을 밝히려고 항소하였다. 그러나 2심은 달라졌다. 조정재판부에서, 총장이 ‘기부금이 원래 목적과 달리 전용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과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조정을 거절하였다. 그 후 있었던 2심의 결과는 조정결정과 반대로 ‘기부금을 용도에 맞게 집행하였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기부 약속 후 9년이 지난 2012년 10월, 결국 대법원도 대학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 소송이 끝난 후 대학의 교수평의회가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기부금이 기부자의 기부목적대로 사용되지 않았다며, 총장은 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기부금 관리체제를 재검토하고 투명성과 효율성을 확대하라’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올바른 기부문화를 정립해야한다’는 취지로 낸 소송은 결국 기각되고 대학은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송이사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기부에 실패했다‘라고 썼다. 또 기부금을 사적인 목적으로 남용하고 순수한 기부자를 채무자로 만드는 참담함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부산대 기부가 일생의 오점”이라 했다. 대학에 기부를 권했던 그의 아내는 이 기부금 사건과 관련된 10년간의 과정과 소송의 자료를 모아 책을 냈다. 책의 이름은 ’외로운 기부, 지난 10년간의 편지‘였다. 송이사장은 지금까지 경암교육문화재단에 1,300억 원의 기금을 출연하여 각종 교육문화산업을 벌였다.

기부에 감사하고 기부자를 존경하고 기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회가 신뢰사회

황필상 박사나 송금조 이사장 두 분 모두 우리나라가 가장 가난하고 어려울 때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운명을 한탄하지 않고 난관과 역경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해 사업에서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성취를 젊은 세대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의 선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숭고함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거의 10년의 긴 기간 동안 소송에 휘말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었다. 이들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았을까? 무엇이 이들의 선의를 왜곡하게 되었을까?

우리 사회는 개인의 성취에 대하여 특히 경제적인 성취라는 결과 대하여 시샘을 한다. 그들의 노력은 보지 않고 그들이 이룬 성취에 대해서는 평등이라는 기준을 들이댄다. 평등의 이름으로 개인의 성취의 결과를 뺏으려 한다. 기업을 하여 돈을 번 사람들은 숨죽여 살아야 한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혹사시키고 약탈한 사람으로 인식되곤 한다. 늘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증여세 제도를 보면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부자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법이 그러하다.

증오와 사랑이 싸우면 늘 증오가 이긴다. 부자에 대한 시기와 증오는 항상 빈자에 대한 긍휼과 연민을 이긴다. 적어도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고 본다. 부자들의 성공을 시샘하고,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며, 그들의 도움에 고마워할 줄 모른다. 작금의 일이 아니다. 이는 오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유전자이다. 우리나라의 법과 법적용은 이러한 문화의 반영이다. 문화가 바뀌고 법이 바뀌어 개인의 기부에 감사하고 존경하는 사회풍토가 없으면 신뢰사회는 요원하다. 기부에 과세하고 국가가 세금으로 모든 것을 다 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 사회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기부가 없다.

황필상 박사와 송금조 이사장, 그분들이 겪었던 고통은 과연 무엇인가? 제우스신은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고통스러운 벌을 내린다. 고통의 이유를 그리스 신화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고 인간을 사랑한 죄!”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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