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경찰의 5.18 체험기(1), “북한군 개입설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식 밖 주장”
전남경찰의 5.18 체험기(1), “북한군 개입설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식 밖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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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군의 광주교도소 공격에 대한 새로운 주장 제기. 즉 광주인근 모든 경찰서가 피해를 입었으나 유독 담양으로 시작하는 동부권 경찰서는 아무 피해가 없었으며 시민군의 활동도 타 지역에 비해 미약하였던 점에 주목한 결과, 당시 광주 교도소의 위치가 담양으로 통하는 지방도로와 고속도로 사이에 위치하여 교도소 경계 부대에 의해 시민군의 담양권 진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으며 담양권으로 진출하려는 시민군이나 일반 시민들의 활동을 교도소 공격으로 오인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했을 것으로 추정
[편집자 주] 이 자료는 전남지방경찰청이 발간한 『경찰관 증언과 자료를 중심으로 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 자료다. 전남지방경찰청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수집 및 활동조사 TF 명의로 된 이 자료는 1980년 5월 광주사태 당시 전남경찰청 소속 경찰의 활동상황을 정리해 놓았다. 이 자료를 통해 광주사태 당시 광주 일대에서 시위진압에 나섰던 경찰들은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제1회 내용은 위 자료 서두에 수록된 강석복 전남지방경찰청장의 ‘5·18 민주화운동과 경찰’이다.
이 글에서 강석봉 청장은 북한군 수백 명이 광주에 잠입하여 시위를 주도하고 사라졌다는 북한군 개입설에 대하여 강력하게 부정했으며, 흥분된 공수부대를 시내작전에 투입하여 한두 시간 만에 300여 명이 넘는 인원을 검거하는 등 무차별적인 폭력을 자행하여 초기 시민 감정을 크게 자극하고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시민군의 광주교도소 공격 문제와 관련,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는 다른 주장을 했다. 즉 광주인근 모든 경찰서가 피해를 입었으나 유독 담양으로 시작하는 동부권 경찰서는 아무 피해가 없었으며 시민군의 활동도 타 지역에 비해 미약하였던 점에 주목한 결과, 당시 광주 교도소의 위치가 담양으로 통하는 지방도로와 고속도로 사이에 위치하여 교도소 경계 부대에 의해 시민군의 담양권 진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으며 담양권으로 진출하려는 시민군이나 일반 시민들의 활동을 교도소 공격으로 오인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진압 중인 공수부대. 경찰은 시위진압 훈련을 받지 않은 흥분한 공수부대를 시내에 투입하면서 과격한 진압이 이루어져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했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진압 중인 공수부대. 경찰은 시위진압 훈련을 받지 않은 흥분한 공수부대를 시내에 투입하면서 과격한 진압이 이루어져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했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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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과 경찰

강석복 전남지방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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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주요 당사자적인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4·19 혁명 등 역사적 경험을 교훈삼은 지휘부의 비무장조치와 무분별한 공권력 행사의 자제로 경찰에 의한 시민들의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고, 계엄 하 경찰역할의 위축과 보조적 소극적 업무수행으로 그간 수차례 진상 규명과 조사과정에서 큰 비난 없이 한걸음 비켜서 있었다.
당시 전남경찰국 소속 수많은 경찰관들은 10일간의 비극적 현장을 함께 하며 생명이 위협받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직접 업무를 수행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목격하였다. 아직도 광주 진실에 대한 논란이 끝나지 않는 현실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관들의 객관적이고 생생한 증언과 자료는 진실규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37년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의 주요 증언 대상자들이 사망하고 관련 기록과 자료는 상당수 사라졌으며, 5·18 당시 경찰활동에 대한 자체보고서 한 번 정리한 적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 대선을 앞두고 4월초 전두환 회고록이 발행되면서 “광주사태 초기 경찰력이 무력화되고 계엄군이 시위진압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전남경찰국장의 중대한 과실 때문이었다.”라는 5·18 경찰 책임론이 주장되었으나, 경찰활동에 대한 진상조사는 물론 자료와 기록이 없는 우리 경찰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더 늦기 전에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자료를 수집해서 역사왜곡을 바로 잡고 진실규명에 도움이 되도록 5·18에 대한 경찰의 주체적 보고서 한 권은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에 소수인원으로 TF팀을 꾸려 금년 4월부터 5개월간의 활동기간을 거쳐 전남경찰의 5·18관련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흥분된 공수부대를 시내작전에 투입

5·18의 성격과 역사적 의미에 대한 정치적, 법률적 판단과 평가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나, 당시 광주시민들의 민주화 항쟁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매도하는 주장이 계속되어 광주시민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고 있다.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5·18과 관련된 몇 가지 사항에 대해 꼭 경찰이 말하고 밝혀야 할 내용들이 있다.

첫째, 5·18직전 광주 시내의 상황이 학생시위로 무질서와 혼란이 극에 달해 군의 개입이 없어서는 안 될 상황이었는지에 대하여,
당시 광주시내의 상황은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민주화, 학원자율화 등을 요구하는 학생시위가 계속 되었고 폭력행위로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으나, 경찰과 학생들은 일정한 룰(rule)이 있었으며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 하에 항상 대화 채널이 가동되어 있었다. 특히 5·18 직전인 5월 16일은 경찰의 보호아래 평화적 가두시위가 있었으며, 5월 17일은 대부분의 진압부대가 휴식과 야유회를 실시하는 등 평온한 분위기였다.

둘째, 학생과 시민들의 공격에 흥분한 공수부대의 과격진압은 우발적이었고, 이것이 광주항쟁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에 대하여
당시 투입된 공수부대의 공격적 검거 위주의 진압방식과 잔혹행위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측이든 별 이유 없이 동의하는 사실이다. 다만, 신군부 집권세력은 의도성 없는 현장 병사들의 우발적 과격 행위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치안당국인 경찰과 협의 없이 경험 없는 흥분된 공수부대를 시내작전에 투입하여 한두 시간 만에 300여 명이 넘는 인원을 검거하는 등 무차별적인 폭력을 자행하여 초기 시민 감정을 크게 자극하고 시가지 투입작전 실시 전 이미 공수 1개 여단을 증파하는 등 광주에 대한 군부대의 지속적 증원을 지속하였으며, 악화되는 상황에서 길고 위협적인 진압봉으로 긴급히 교체지급 하는 등 강경 일변도의 작전을 계속하여 상황을 극단화 시켰다는 점에서 당시 계엄 확대 조치에 대한 국민저항을 광주시민들의 초기 반발을 이용하여 공포감을 조성하고 억누르려 하는 의도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5·18기간 중 많은 유언비어가 떠돌았고 당국에서는 유언비어를 5·18의 주요 원인으로 발표하였다.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고 고립된 공포 상황 하에서 유언비어의 발생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원인과 그 현상은 구별되어야한다.
따라서 신군부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이 목적을 가지고 군을 동원하여 시민들에게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 하는 것에 대해 저항한 것이 발생 원인이라면 그 과정에서 유언비어가 생성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당시 계엄당국에서 지역감정이 포함된 유언비어 내용을 역으로 이용하여 광주시민과 일반국민을 분리시키고 이간질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5월 20일 야간에 광주세무서 카빈 17정 피탈

셋째, 시민들이 총기를 탈취하여 무장하고 발포하여 자위권 차원의 군 발포가 불가피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5·18 당시 대부분의 사망자는 총격전에 의해 발생되었다는 점에서 총기발사 책임자 규명과 시민군 총기 피탈 무장시점에 대한 논란이 있다. 발포책임자 규명은 아직 진행 중이나 당시 시민들의 무장총기 대부분이 경찰관리 무기라는 점에서 5·18직후 치안본부에 의해 무기피탈 경위 조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광주시내 경찰무기는 5월 19일 소산이 완료되었으며, 5월 20일 야간 광주세무서 칼빈 17정이 피탈되었으나 실탄이 없었으며, 최초 무기실탄 피탈은 5월 21일 13시 30분경 나주서 남평지서에서 발생하였고, 이후 나주, 화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피탈되어 시민들의 무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군의 도청 앞 집단 발포가 이루어진 5월 21일 13시 전까지는 시민군의 총기발사는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군의 발포는 5월 20일 야간 광주역 부근에서 이미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점에서도 시민들의 발포로 군의 자위권 적인 발포가 불가피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넷째, 북한군 수백 명이 광주에 잠입하여 시위를 주도하고 사라졌다는 북한군 개입설에 대하여
이 주장은 5·18당시에는 언급된 적이 없으며, 당시 작성된 군과 정보기관 작성 서류 어디에도 없는 내용으로 최근 일부 인사들에 의해 주장되고 있으며, 전두환 회고록에도 많이 암시되어 있다. 당시 경찰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집회 시위 관리였으며 시위 상황이 발생하면 경찰은 시위대의 인원, 구성성향, 주장, 시위용품 등을 세밀히 분석하여 대응 방향을 정하였다.
이런 업무는 주로 정보 보안 형사들에 의해 이루어 졌고 당시 광주에는 약 130여 명의 정보 보안 형사들이 활동함과 동시에 시내 주요지점 23개소에 정보센터를 촘촘하게 운영하였는데, 이런 형사들의 눈을 피해 광주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활동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식 밖의 주장이라는 한결같은 증언이다.
또한, 계엄 상황 하에서 경찰들뿐만 아니라 타 정보기관의 활동도 최고조에 달해 있었으며 5월 21일 이후에도 경찰의 기본적인 정보활동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당시 경찰 통신요원들은 시민군이 점령하고 있던 도청에 대간첩작전 통신망 복구명목으로 수시로 출입하였는데 이에 협조하는 시민들의 행동에서도 이런 문제를 주의하고 경계하는 내용들이 보인다.

안병하 전남경찰국장, 2000명의 경찰관 대피 지시

다섯째, 계엄군 철수 이후 광주 시내는 무장시민군에 의해 살인과 약탈 등 범죄가 판치는 무법천지였는지에 대하여
5·18과 관련하여 광주시민들이 자부심과 긍지로 삼는 것은 무정부 상태 하의 공포와 생필품 부족 속에서도 서로 돕고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었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큰 혼란 없이 질서를 유지하였다는 내용이다.
당시 계엄당국과 정보기관 등에서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는 시민군에 의한 3건의 일가족 집단 살인사건은 확인한 결과 하나의 사건을 부풀리고 그 내용도 왜곡되었으며, 그 밖에 당시 수많은 금융기관도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었다.
5·18 종료 후 신고내용, 기록, 증언 등에 의하면 당시 광주 시내는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광주시민들의 높은 시민정신은 평가받아야 한다.

5·18 광주사태 당시 전남도 경찰국장(현 전남지방경찰청장)으로 재직하며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않았던 고(故) 안병하 경무관. 지난 2017년 추모 흉상이 건립되었다(연합뉴스 제공).
5·18 광주사태 당시 전남도 경찰국장(현 전남지방경찰청장)으로 재직하며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않았던 고(故) 안병하 경무관. 지난 2017년 추모 흉상이 건립되었다(연합뉴스 제공).

특히 5월 21일 15시 경부터 전남경찰국장의 지시에 의해 아무런 보호 안전대책 없이 개인별로 무작정 대피하였던 2,000여명이 넘는
도청 경비 경찰관들은 광주시민들의 헌신적인 도움과 보호로 단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무사히 복귀하였으며, 지금도 당시 경찰관들은 시민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5.18 당시 전남경찰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당시 전남경찰국장이던 안병하 경무관이다.
당시 계엄당국과 전두환 회고록에 근무지를 무단이탈하고 진압업무를 실패하여 광주의 불행을 야기한 무능한 지휘관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확인결과 안 국장은 5.18을 맞이하여 단 한 번의 근무지 이탈 없이 최선을 다하여 수습을 위해 노력했고, 상부의 강경진압을 거부하고 시민의 안전을 강조하는 소신을 유지하였으며 초기에 광주시내 무기를 소산시켜 탈취방지 뿐만 아니라 경찰무장으로 인한 더 큰 비극을 막았다는 점에서 사후 그 공적이 평가되어 순직과 5 18 유공자로 처리되었으며 금년도 경찰영웅으로 선정되어 흉상 제막을 준비 중이다.
금번 조사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당시 관계기관에서 작성된 상황일지 등 문서와 기록의 왜곡, 편향 기재 등 신빙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계엄정국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계엄군의 과오나 잘못을 기록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으며 시위대와 시민의 부정적인 면은 과장, 부각되거나 왜곡되어 기록되었다.
전두환 회고록은 “5 18과 관련된 수많은 기록과 진술들을 역사의 진실을 말해줄 소중한 기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바로 가해자의 입장에서 작성된 수많은 기록과 수사과정에서 확보된 대상자들의 책임 회피성, 변명성 진술 등이 이런 자신감의 근거로 보인다.
기존 기록들에 의해 밝혀지거나 인용된 내용들에 대해서도 오류와 진위를 잘 살펴보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5 18의 바른 진상은 기존 기록에 의존하기 보다는 관련자들의 증언과 참여를 통해서만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본다.

광주교도소 공격을 둘러싼 논란

광주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일반 국민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고, 당시 계엄 당국과 일부 인사들이 광주시민의 폭도성을 주장하는 확실한 근거로 인용하는 것이 교도소에 대한 시민들의 지속적 공격이다. 대규모 정예 특전부대가 주둔하는 요새화된 시설에 칼빈 총으로 무장한 소수 시민군의 지속적 공격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무모한 행위임에도 기록에 의한 군의 주장과 교도소 부근 사망자 발생 등으로 인해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이번 활동 중 총기피탈 조사 과정에서 광주인근 모든 경찰서가 피해를 입었으나 유독 담양으로 시작하는 동부권 경찰서는 아무 피해가 없었으며 시민군의 활동도 타 지역에 비해 미약하였던 점에 주목한 결과, 당시 광주 교도소의 위치가 담양으로 통하는 지방도로와 고속도로 사이에 위치하여 교도소 경계 부대에 의해 시민군의 담양권 진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으며 담양권으로 진출하려는 시민군이나 일반 시민들의 활동을 교도소 공격으로 오인하였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시민군 공격의 무모함과 비현실성뿐만 아니라 교도소 공격이 없었다는 당시 교도소장등 관계자의 증언과 담양경찰서의 피해 경미, 담양거주 비무장 일반시민의 총격피해 등을 종합하여 보면 시민군의 교도소 지속 공격은 오인, 과장되었거나 왜곡된 것으로 보인다.
5.18 당시 전남경찰의 활동과 업무수행 과정에서 잘못된 점은 먼저, 공수부대의 초기 과격진압과 시민들의 무차별적 폭력행위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한 점이다. 계엄군의 행위를 제지하던 많은 경찰관들이 봉변을 당하였다는 수많은 증언도 있으나 시민보호의 무한책임이 있는 경찰이 보다 적극적으로 계엄당국과 군 책임자들에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조치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광주 외곽경찰서의 좀 더 신속하고 체계적인 무기 소산조치와 경찰관서 피습에 따른 대비가 이루어졌어야 했으며, 급박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경찰 철수 지시로 많은 경찰관들이 위험에 노출되었으며 시위 진압 중 순직한 동료 경찰관들의 주검을 제때 수습하지 못하고 장기간 방치한 사례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기록과 자료를 정리 보관하고 참여 경찰관들의 생생한 증언 등을 통해 5.18에 대한 경찰 자체 진상조사의 의지와 노력이 없었던 점과 포고령 위반자 검거 등 계엄 업무 참여과정에서 있었을지 모르는 경찰관의 과잉 행위 등에 대해서도 반성이 필요하다.
전남경찰 TF팀은 금년 4월 초부터 아무런 뒷받침 없는 어려운 여건 하에서 생존 선배 한 분 한 분을 수소문 하여 137명의 소중한 증언을 확보하였고,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치안본부 작성 전남사태 관계기록 발굴과 함께 사실관계가 잘못된 내 외부의 경찰기록들을 찾아내는 등 당시 자료의 왜곡 편향성에 대해서도 확인하였다. 금번 조사과정에서 확보된 객관적인 증언과 수집된 자료, 보고서는
국가기관인 경찰이 주요 당사자 입장에서 스스로 직접 작성한 5.18 관련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역사적으로 5.18과 관련된 진실을 알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확신하며 계속적으로 자료를 찾아내고 증언 등을 확보하여 미흡한 점을 보완해 나갈 것이다.
2017. 10. 11.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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