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 계엄군 실탄지급현황, "5월 20일 21시50분, 3공수에 실탄 배부 및 장착"
1980년 광주 계엄군 실탄지급현황, "5월 20일 21시50분, 3공수에 실탄 배부 및 장착"
  • 김용삼 대기자
    프로필사진

    김용삼 대기자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19.01.27 10:35:04
  • 최종수정 2019.01.27 10:35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0년 5월 20일 21시50분, 3공수 실탄 배부 및 장착 지시. 그로부터 1시간 20분 후인 23시10분 3공수 16대대가 시위 군중에게 포위된 11, 12, 13, 15대대 구출 위해 실탄(공포) 발사
[편집자 주] 이 자료는 서울지검에 제출된 광주 투입 계엄군의 실탄 자급 일시 자료다. 자료에 의하면 5월 20일 21시50분에 광주에 투입된 3공수여단에 실탄이 배부되어 장착했으며, 그로부터 1시간 20분 후인 23시10분에 3공수 16대대가 시위 군중에게 포위된 11대대, 12대대, 13대대, 15대대를 구출하기 위해 실탄을 발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80년 5월 광주 시가지에서 시위대와 대치중인 공수부대. 시위대가 급격히 불어나 통제불능 상태가 되자 5월 21일 21시50분, 3공수부대에 실탄이 지급되었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1980년 5월 광주 시가지에서 시위대와 대치중인 공수부대. 시위대가 급격히 불어나 통제불능 상태가 되자 5월 20일 21시50분, 3공수부대에 실탄이 지급되었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
광주사태 최초 투입부대 및 실탄 지급일시
------------------------------------------------------

5월 18일
02:29 충정부대 배치(20개 학교 14/1132명. 장교 14명, 부사관 포함 사명 1132명이란 뜻)
15:40 7공수 61/539명, 데모진압 투입
16:28 11여단 45/213명, 선발대 도착(조선대 주둔)

5월 19일
00:50 11공수 본대 도착(조선대 주둔)
04:00 7공수와 11공수 임무 교대
19:00 전교사 잠정부대 17/283명 31사단 배속

5월 20일
07:04 3공수 254/1189명 도착(전남대)
15:00 데모 진압 투입
21:50 3공수 실탄 배부 및 장착 지시
23:10 3공수 16대대, 포위된 11대대·12대대·13대대·15대대 구출키 위해 공포 발사 구출(실제 실탄)
5월 21일
08:50 20사단 107/1544명 선발대 도착
16:00 7·11여단 도청에서 조선대로 철수
17:05 7·11여단 실탄 분배 지시
17:25 3공수 전남대에서 교도소 이동
17:50 광주시 외곽도로 차단 지시(차단완료 19:00)
20:30 각 부대에 자위권 행사 지시(실탄 장전). 군부대라는 것을 경고 후 발사(전교사)
23:15 전교사 및 전남대 주둔 병력에 실탄 장전 및 유사시 발포 명령 하달

5월 22일
04:55 20사 60연대 도착(87/1563명)
10:30 전남지역 경찰·여비군·군인은 자위권 행사 지시(2군 작상전 466호)

5월 24일
09:00 부대 배치조정, 20사 교도소 및 외곽도로 봉쇄, 3·7·11공수 1전비(전투비행단)에 집결
18:49 확인사격 지시(전교사). 수하 불응, 응사 시(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