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당시 동아일보 광주주재기자의 5.18 체험기, “시위대 500명 신군부 측이 의도적으로 광주 투입”
김영택 당시 동아일보 광주주재기자의 5.18 체험기, “시위대 500명 신군부 측이 의도적으로 광주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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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아일보 광주주재기자였던 김영택 씨는 "신군부가 시위를 악화시키기 위해 연고대생이라는 시위대 500여 명을 의도적으로 투입했으며, 이들은 광주 무등갱생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영택 씨의 주장은 그의 친지가 미확인 소문을 근거로 이야기한 내용이었음이 밝혀졌다
[편집자 주] 이 자료는 1980년 광주사태 당시 동아일보 광주주재기자로 활동했던 김영택 씨의 검찰 진술 내용이다. 김영택 기자는 검찰에서 “5월 22일 계엄군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나타난 500여 명의 시위대는 신군부 측이 광주 시위를 악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들여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영택 씨의 주장은 확실한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술인의 친지의 미확인 소문을 토대로 한 내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980년 광주사태 당시 광주 시내에서 위력시위 중인 공수부대. 당시 동아일보 광주주재기자였던 김영택 씨는 "신군부가 시위를 악화시키기 위해 연고대생이라는 시위대 500여 명을 의도적으로 투입했으며, 이들은 광주 무등갱생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영택 씨의 주장은 그의 친지가 미확인 소문을 근거로 이야기한 내용이었음이 밝혀졌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1980년 광주사태 당시 광주 시내에서 위력시위 중인 공수부대(사진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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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조서(제2회·1996년 2월 7일·요지)
진술인 : 김영택(당시 동아일보 광주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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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진술인은 5.18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당청에 왜 서신을 우송했나요.
답) 서신 내용에 기재된 바와 같이 5.18 광주사태는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측에서 12.12사건을 통해 군권을 장악하고 다시 정권까지 탈취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광주시민들을 폭도화시킨 후 이를 진압함으로써 결국 정권장악에 이르게 된 것으로 생각되므로 그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공하여 주기 위해서 제가 위와 같은 서신을 우송하여 드린 것입니다.
문) 그럼 전두환 등 신군부 측에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광주사태를 유발하고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것이라는 말인가요.
답) 예, 제가 5.18 광주사태 당시에 동아일보 광주 주재기자로 재직하면서 느낀 바로는 분명히 5.18 광주사태는 전두환 등 신군부 측에서 의도적으로 야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답) 5월 22일 15시08분경 저는 도청 앞 광장에서 취재 중이었는데, 항쟁본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방송이 있었습니다. 즉, 광주도청 앞을 비롯하여 금남로 등 주요 시위지역 곳곳에 500여 명 정도의 대학생들이 광주항쟁 지원차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내용의 방송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은 이미 20사단 병력까지 동원하여 광주가 철옹성처럼 봉쇄되어 외부 사람들은 한 사람도 드나들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다수의 대학생들이 광주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전두환 등 신군부 측에서 의도적으로 투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다음날인 5월 23일 13시경 광주도청 앞을 비롯하여 금남로 등 주요 시위지역에 복면을 한 시위대가 나타나 시위를 더욱 과격하게 확산시키며 주도했는데, 그것 또한 전두환 등 신군부 측에서 처음부터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광주 시민 등 시위대들을 자극하여 시위를 확산시킴으로써 정권장악을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이루어진 일련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최규하 정부의 무능·한계 인식시키고자

문) 왜 전두환 등 신군부 측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광주 시위현장에 투입시켜 시위를 확산시켰다고 보는가요.
답) 광주사태를 의도적으로 악화시킴으로써 최규하 정부의 무능과 한계를 대외적으로 노정토록 하여 군부가 전면에 나서야만 나라가 안정되고 발전될 수 있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이를 통하여 자신들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도하에 그와 같은 행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문) 진술인은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시위현장에 투입된 상황을 실제로 보았나요.
답) 예, 제가 당시 취재하면서 위와 같은 항쟁본부에서 스피커를 통하여 발표하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그 당시 도청 앞 광장에 20~30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도착하자 기존의 시위대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했고, 서로 간에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켰습니다.
문) 다른 시위현장에서는 위와 같은 광경을 보지 못했는가요.
답) 저는 당시 도청 앞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 광경만을 보았을 뿐 다른 곳에서의 광경은 보지 못했습니다.
문) 그들이 직접 시위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나요.
답) 예, 그들은 위와 같이 환영을 받은 후 기존의 시위학생들과 함께 어울렸고, 그들의 복장도 기존의 시위대들과 구별되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시위를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릅니다.
문) 그전에도 연·고대생 30여 명이 광주시내에 도착했다고 했는데, 어떤가요.
답) 위와 같이 대학생으로 보이는 500여 명이 광주시내에 나타나던 날 10시45분에 저는 도청 앞에서 취재하고 있었는데, 항쟁본부 스피커를 통해 연·고대생 30명이 광주에 도착했다고 하며 위와 같은 방법으로 환영행사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문) 위와 같이 대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신군부 측에서 의도적으로 투입했다면, 왜 시위대 측인 항쟁본부에서 그들을 환영했을까요.
답) 그것은 시위대들이, 그 대학생들을 신군부 측에서 의도적으로 위장 투입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그 다음날인 5월 23일 오후경 복면부대가 나타나 시위를 더욱 과격화시키고 확산시켰다고 했는데,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위하던가요.
답) 저는 당시에 도청 앞 및 금남로 일대에서 복면부대들이 하는 시위광경을 지켜보았는데, 그들은 수십 대의 버시와 트럭 등 차량을 타고 다니면서 몽둥이를 각자 하나씩 들고 차량을 치면서 “전두환 물러가라”, “신현확 물러가라”, “계엄 해제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를 통하여 주위에 있는 기존의 시위대들로 하여금 시위를 과격하게 하도록 유도했으며, 그때부터 시위는 더욱 가열되고 확산되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시위대학생 등이 총기를 반납하고 대화로써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며 총기를 반납하지 못하도록 제지하고, “우리;는 끝까지 투쟁을 하여야 한다”고 외치면서 시위를 과열시켰습니다.
문) 복면부대들이 언제까지 시위를 주도했나요.
답) 그들은 5월 26일, 재진압작전이 임박하자 어디론지 전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복면부대, 광주 무등갱생원들로 시위에 투입했을 가능성
 
문) 진술인의 서신내용을 보면 위 복면부대들은 정규 정보원이 아니라 무연고자인 광주 무등갱생원 원생들로서 광주사태 당시 위와 같은 의도하에 이용당한 후 전부 집단으로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설을 접했다고 하는데, 어떠한 경위로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되었나요.
답) 저는 최근까지도 전두환 등 신군부 측에서 정권찬탈을 기도하고 기위대들을 폭도화시키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광주사태를 의도적으로 악화·확산시킬 의도로 정규 정보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5년 12월 초순경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저의 친지로부터 그 당시 투입된 복면부대원들은 정규 정보원들이 아니고 광주 무등갱생원 원생들로서 그들은 시위에 투입되어 위와 같이 이용당한 후 집단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이에 따라 저는 단순히 첩보 제공의 차원에서 김상회 부장검사에게 사신을 보냈을 뿐입니다.
문) 진술인은 그와 같은 소문을 직접 확인하여 본 사실이 있나요.
답) 제가 직접 그 소문의 진위 여부에 대해는 확인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문) 진술인에게 위와 같은 소문을 전해준 진술인의 친지는 그와 같은 소문을 어떻게 듣게 되었다고 하던가요.
답) 단순히 광주 일대에 그러한 소문이 있다고만 했을 뿐 그 구체적인 소문의 진원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말한 사실이 없습니다.
문) 진술인은 검찰에 위와 같은 첩보를 제공했으면서도, 그 첩보의 진원지인 진술인의 친지를 왜 밝힐 수 없다고 하는가요.
답) 오랫동안 언론기관에서 기자로 재직한 저로서, 그 첩보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위와 같은 소문의 진위에 대해 자신이 없고, 더 나아가 확실하지도 아니한 소문으로 인하여 쓸데 없는 파문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소문을 진술인에게 전해준 진술인의 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그 소문의 진원지 등을 확인하여 줄 수 있는 것은 아닌가요.
답) 제가 다시 한 번 저의 친지와 접촉하여 그 소문에 관하여 확인하여 보기는 하겠으나, 더 이상 새로운 내용의 말이 있을 것이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문) 무등갱생원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아는가요.
답) 그 점에 관하여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광주 동부경찰서 관할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뿐입니다.
문) 진술인의 서신상에 광주사태 진압 이후 무등갱생원들이 전부 사라졌다고 했는데, 그 점에 관하여 확인한 사실이 있나요.
답)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의 친지가 전해준 소문내용의 일부일 뿐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문) 광주사태 당시 무등갱생원 원장이었던 박금현이 갱생원을 새로 짓고 다시 갱생원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인가요.
답) 그것 역시 저의 친지가 저에게 전해준 소문내용이 일부일 뿐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문) 무등갱생원 원장이라고 하는 박금현의 인적사항에 대해 알고 있나요.
답) 광주 무등갱생원장을 상당히 오랜 기간 했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매우 연로할 것이라고 생각될 뿐 그 이상 자세한 인적사항에 대해는 알지 못합니다.

5.18 광주사태는 신군부의 사전음모

문) 진술인은 ‘5.18 재수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제하의 서신에서 광주사태가 전두환 등 신군부 측의 사전음모에 의하여 계획된 사건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그 이유는, 저의 저서인 『광주 5.18 민중항쟁』의 333~342면에 상세히 기재되어 있고, 위 서신상에도 요약되어 있는데, 계엄사가 주도하여 재야인사들이 학생들의 시위를 자제하도록 당부하는 성명을 신문에 싣지 못하도록 하거나 가급적 작게 싣도록 한 점, 5월 17일 당국의 민주화 일정을 관망하기 위해 시위를 중지하기로 결의한 전국 56개 대학 학생회장단을 연행한 점, 김대중과 만나지도 않은 정동년을 김대중 배후조종에 의한 5.18 주동자로 몰아 사형선고까지 한 점, 시위와 아무 관련이 없는 신혼부부 또는 정상적으로 직장에서 일하는 가정부들까지 마구 구타하며 연행한 점, 5월 18일 공수부대가 시내에 투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동국대에 주둔 중인 최웅 11공수여단장에게 “우리가 밀리고 있으니 빨리 출동하라”고 명령한 점, 시내를 빠져나가려는 선량한 시민들을 시내로 몰아넣고 총질을 마구한 점, 신군부 측에서는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와 동시에 국가보위를 위한 비상기구의 설치를 기도하면서 시위자제를 결의한 학생들을 강제로 연행하는 등 시위를 오히려 자극했다는 점, 자기들의 정권찬달 음모계획이 누설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5월 17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록 등 9건의 군 작전관계서류를 없애 버렸다는 점 등입니다.(끝)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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