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술 우위론 [유태선 시민기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술 우위론 [유태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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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天才)란 어떤 사람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재주 또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천재 연구가 조성관에 의하면 천재들은 "지구별에서 살면서 인류사회를 윤택하게 만든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수십 년을 어떤 목적을 위하여 집중하고 몰입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천재들 중에는 평생을 특정 목적을 위하여 헌신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면서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사람들도 있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이다.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이면서 음악가였던 레오나르도는 서기 1481년 밀라노 공국의 영주 루도비코 스포르자 (Ludovico Sforza)에게 보낸 자기 소개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저는 1. 가볍고 튼튼하며 불이나 전투에 의하여 손상되지 않는 다리를 설계할 수 있고 2. 성을 포위하여 공격할 때 해자의 물을 제거하고 다리와 사다리를 만들 수 있고 3. 적들의 진지나 요새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4. 모든 종류의 대포에 대하여 알고 있고 5. 소음을 내지 않고 땅굴을 파서 적진에 침투하도록 할 수 있고 6. 보병의 적진 침투를 위한 덮개 있는 차량을 만들 줄 알고 7. 필요하다면 대포 또는 박격포를 만들 것이며 8. 대포의 사용이 쉽지 않다면 투석기를 만들 수도 있으며 9. 해전에 대비한 공격용 및 방어용 무기를 만들 수 있고 10. 평화 시에는 설계 및 건축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각종 조각, 회화 작업도 가능합니다.

위 편지를 읽어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기술자로서 생계를 유지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미술은 부업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는 미완성 작품들을 많이 남겼고 후원자들의 지원이 중단되면 자신이 심혈을 기울이던 작품이더라도 미련 없이 작업을 중단하였다. 일부 평론가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하여 같은 시대의 조각가, 화가, 시인이었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i)와 같은 예술혼(藝術魂)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재 다능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왜 현대인들에게는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고 있을까? 우선 그의 과학 및 공학 분야의 지식이 후대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초보적인 수준이기 때문이고 더욱 중요한 이유는 그가 그린 그림들 중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이 명화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가 직접 펜을 들어 미술이 문학보다 우월한 표현수단인 이유를 적은 글을 후대에 남겼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인류 역사에서 시인은 귀족의 바로 아래 사회적 지위를 차지해 왔지만 화가는 단순한 기능인으로 분류되어 왔고 음악가는 국왕이나 귀족에게 고용되지 않는 경우 천민과 다를 바 없었다. 고대와 중세 시대에 활약했던 시인들의 이름은 후대에 전해져 오고 있지만 화가들과 음악가들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잊혀졌다.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회화 (painting)가 시 (poetry)보다 우수한 표현수단이며 언어의 한계까지 고려하면 시는 음악 (music)보다도 나을 것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남긴다. 실제로 그는 회화, 조각 등 미술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데 더하여 바이올린의 원리를 고안했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 (science)이란 자연 (nature)에서 파생된 것이고 회화 (painting)는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하면서 이들의 관계를 "과학은 자연의 딸이고 회화는 자연의 손녀이다"라고 언급한다. 그는 이제까지 회화가 과학의 한 분야로 분류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하여 "화가들은 언어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도 그 목적을 훌륭하게 달성해 왔으며 자신의 본업인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느라 글을 쓸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과학이란 반드시 수학적 표현 (mathematical demonstration)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현실에서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한 정신적 담론 (mental discourse)의 영역에 해당하는 시는 과학으로 분류될 수 없다.

반면 회화는 대수학 (arithmetic), 기하학 (geometry), 그리고 이에 기반한 원근법 (perspective)에 기반하여 완성되며 그 구성요소를 점 (point), 선 (line), 면 (surface), 형 (body)으로 구분할 수 있으므로 과학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시각보다 하급의 감각인 청각에 의존하는 음악도 수많은 악기들에 의한 화음 (harmony)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학적 원리가 적용되므로 마찬가지로 과학의 한 분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는 신의 작품 (the works of God)인 자연을 그대로 표현하는 반면 문학은 인간의 작품 (the works of Man)인 가상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1. 시인이 "나는 이 세상의 위대한 것들을 표현하는 이야기를 창조하고 있다"고 한다면 화가는 "나도 그와 같은 이야기는 그림을 통하여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시인이 "시는 새로운 주제를 발명 (invention)하고 그 표현을 위한 측량 (measure)으로 이루어진 과학이다"라고 한다면 화가는 "회화도 마찬가지로 주제를 선정하고 비례의 법칙을 적용하여 사물을 표현한다"고 반박할 수 있다.

2. 만약 시가 도덕철학 (moral philosophy)을 포용하는 개념이라면 회화는 자연철학 (natural philosophy) 그 자체이다. 즉, 시가 인간 정신의 작용 (the operation of the mind)을 글로 묘사하는 것이라면 회화는 인간 정신에 의한 행동 (the action of the mind)을 신체의 움직임을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3. 화가는 "나는 개의 주인을 묘사한 그림을 통하여 개가 짖게 하고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시인은 "나는 문학 작품을 통하여 사람들이 여러 가지 주제, 특히 보이지 않는 논점에 대하여 토론하게 하고 나아가 무기를 들게 할 수 있으므로 시가 회화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4. 시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응하는 적절한 단어들을 선택한 것에 불과하며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하기 위하여 해당 작품을 낭독해 줄 사람이 필요하므로 그림처럼 효과적인 표현수단이 아니다.

5. 시인은 단어를 통하여 자연의 실제 모습을 완전하게 제시할 수 없는 반면 화가는 그림을 통하여 자연의 실제 모습을 즉각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문학은 미술에 미치지 못 한다.

결론 부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시인은 물질적인 것들 (corporal things)을 표현하는데 화가보다 못 하며 정신적인 것들 (invisible things)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음악가보다 못 하다"고 논의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레오나르도가 문학이 음악에 미치지 못 하는 표현수단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학과 음악을 대표하는 시와 노래 모두 순차적으로 자연의 모습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적 한계가 있지만 시인은 독자들에게 동시에 여러 문장을 읽게 할 수 없는 반면 음악가는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등 여러 가지 다른 소리들을 화음 (harmony)을 통하여 한번에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문학이 미술 및 음악에 미치지 못 하는 표현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화가나 음악가에 비하여 사회적으로 너무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시인은 연설자, 철학자, 천문학자, 지질학자 등 다른 과학자들의 지식을 빌려와서 그에 적합한 단어들을 선택하여 전시하는 사람에 불과하므로 시장에서 여러 가지 상품들을 판매하는 상인과 다를 바 없다. 반면 화가와 음악가는 각각 원근법과 화음을 통하여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하므로 예술가인 동시에 과학자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술 우위론에 대하여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문학, 미술, 음악 간의 우열을 논하는 담론 자체가 회화나 노래의 영역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해야 할까? 아니면 이런 분열적인 논쟁이야말로 천재 화가의 편협함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해야 할까? 아무래도 인류 역사에 다시 나오기 힘든 천재의 의견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은 듯 싶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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