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칼럼] 2019년, 우물 안 개구리들의 이전투구를 끝내고 포스트 대한민국으로!
[김규나 칼럼] 2019년, 우물 안 개구리들의 이전투구를 끝내고 포스트 대한민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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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디어드 키플링 소설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모함과 거짓이 정치가 되는 나라, 왕을 꿈꾸는 사람만 너무 많은 나라
정치는 사리사욕이 아닌, 국민과 나라를 위해 자기희생을 불사해야 하는 일
왕이 되고 싶은 자, 자격 없음을 알게 된 국민의 분노를 감당할 각오는 되어 있는가.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우린 왕이 되기 위해 떠날 거요!"

천하의 잡놈과 사기꾼이 왕이 되길 꿈꾸었다. 피치와 드라보트는 거사의 성공을 위해 서로 협력할 것과 술과 여자를 금한다는 서약서를 쓰고 산 넘고 물 건너 사막 건너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목적했던 땅에 도착한다. 그곳은 왕도 대통령도 없는 원시 부족, 족장과 주민들은 드라보트를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고 믿게 된다. 그들이 가지고 온 스무 정의 총과 주민들이 신이라 믿는 석상에 코를 비비며 "내가 신의 친구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기이한 우연까지 겹치자 사제들마저 드라보트를 신의 아들이라 인정하고 왕관을 씌워준다.

"모든 것은 정치 수완에 달려 있어. 머리만 잘 쓰면 한 나라를 마치 언덕길에서 사륜마차가 굴러 내려가듯이 쉽게 지배할 수 있어."

정치가 그리 쉬울 리 없건만, 하늘이 그들만 축복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행운은 거듭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거들먹거리며 가난한 현지인들을 등쳐먹고 살던 사기꾼이었으니 비상하게 돌아가는 머리와 잡다한 지식,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는 말주변도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었다.

처음엔 크게 한 몫 챙겨 나갈 심산이었겠지만 왕이 된 드라보트는 선정을 펼친다. 원주민의 언어를 배워 그들 말에 귀 기울이고 억울함을 풀어주었으며, 부하와 사제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다리를 건설하고 지역 간의 잦은 분쟁도 해결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신뢰와 사랑이 커질수록 드라보트는 진실을 말할 기회, 자신이 신이 아니고 인간이라는 사실을 밝힌 다음 안전하게 그 세계를 빠져나갈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만다.

"조그만 나라 따위엔 관심 없어. 난 제국을 건설하고 말거야. 우리는 황제가 될 거야."

드라보트는 더 큰 야망을 키우며 왕비를 얻어 자식을 나을 계획까지 세운다. 애초에 왕이 될 운명이었다고, 신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믿어버린 것도 같았다. 불안을 느낀 피치는 서약서를 잊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드라보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욕망의 어느 단계에 오르면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절제의 능력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을 모르고 언제까지나 탄탄대로일 거라 자신의 운명을 확신하는 순간, 인간은 자폭의 순간까지 쾌속으로 달릴 수밖에 없다.

분에 맞지 않는 커다란 행운이란 인간의 파국을 기대하며 미소를 감춘 악마의 초대장이 아닐까. 사람의 딸이 어찌 신과 결합하겠느냐며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간택된 왕비가 왕에게 키스해야 할 순간, 겁에 질린 여인이 그의 목을 물어뜯은 것이다. 드라보트가 놀라 비명을 지른 것은 당연했지만, 왕의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자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그토록 숭배했던 왕이 자신들과 똑같이 상처 나고 피 흘리는 인간일 뿐이라니.

"신도 악마도 아닌 사람일 뿐이야."

누군가 크게 외치자 사제와 주민들은 일제히 드라보트에게 달려든다. 거짓의 가면이 벗겨질 때, 신처럼 떠받들었던 사람들의 배신감은 폭동으로 이어진다. 눈앞에는 죽여 버리겠다며 몰려든 군중, 등뒤에는 천 길 낭떠러지. 쫓기다 총까지 맞은 드라보트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피치와 나누었던 맹세를 저버리지 않고, 아내와 자식을 욕심내지 않았다면 왕좌는 영원할 수 있었을까? 그 순간 후회했을지도 모르지만, 드라보트는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협곡 사이, 자신이 건설한 흔들다리 위에 올라 비장하게 소리친다.

"신사답게 죽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겠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이제 다리를 끊어!"

그가 신인 줄 오해하고 왕으로 떠받들었던 사람들은 마지막 포효마저 조롱했지만, 드라보트 자신은 비로소 진짜 인간, 진짜 문명인, 진짜 왕이 된 순간이었다. 그는 끝도 없는 협곡 아래로 떨어지며 바위 이곳저곳에 몸이 부딪쳐 산산조각 깨져 죽고 만다.

동료였던 피치도 주민들에게 붙잡혀 두 손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나 도시로 돌아온다. 그가 유일하게 안고 온 것은 황금왕관을 쓴 말라비틀어진 드라보트의 머리뿐.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피치의 몸 또한 오래 견디지 못하고 곧 숨을 거둔다. 이것이 거짓의 가면을 쓰고 왕이 될 수는 있었으나 본래 왕이 될 자격은 없었던, 그러나 왕이 되고 싶었고 용감하게 왕위에 도전했으며 잠시나마 왕좌에 앉았던 사내의 최후이다.

1975년, 숀 코널리가 주연한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던 이 소설은 <정글북>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이 1888년에 출간한 작품이다. 식민지를 무한히 넓혀가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읽을 수도 있고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비극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는 초라하던 인간성조차 죽음 앞에서 비장하게 반짝이는 순간은 가능하다고, 인간이란 이토록 신비한 존재가 아닌가,라며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나라에도 왕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너무나 많다. 그러나 최소한 피치와 드라보트만큼 도전했던 것일까 궁금하다. 목숨 걸고 얼음산을 넘어서, 적어도 그들처럼 도전이라도 했던 것일까, 묻고 싶은 것이다.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내걸고 좁은 지역을 돌며 고작 손이나 흔들었을 뿐, 누군가의 명성을 빌려 손쉽게 유권자의 표를 얻었을 뿐 아니었는지. 그런 다음 이내 국민을 잊고 국민과의 약속을 파묻고 다음 선거 시즌까지 어깨에 힘주고 다녔을 뿐 아니었을까.

시대의 무능과 국가 위기 사태에 분개하여 군대를 일으켜 적장의 목에 칼이라도 들이대며 쟁취한 권력이기라도 한 것인지.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세워서,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켜들고, 여론이라는 명목으로 국민 뒤에 숨어서 호시탐탐 감 떨어질 기회만 엿본 것은 아니었는지. 또 누군가는 모사와 계략을 일삼으며 여성 대통령을 옷 벗겨 갖은 모욕을 주고 조리돌림 하여 끌어내린 것 아니었던가. 최소한 사람이 할 짓은, 적어도 사내가 할 짓은 아니지 않았던가.

이 작품에서 피치와 드라보트를 사기꾼이라고 끝까지 비난하고 싶지 않은 것은, 거짓으로 권력을 잡았을지언정, 그들은 사나이답게 목숨 걸고 왕이 될 땅을 찾아갔고, 왕좌에 도전했고 왕답게 행세하다 왕처럼 죽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안정되면 난 빅토리아 여왕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 왕관을 바칠 거야. 나는 여왕 폐하의 기사가 될 거야.”

무엇보다 드라보트는 빅토리아 여왕의 자리까지 욕심내지는 않았다. 그릇이 작다고 해야 할까. 자기 분수는 어느 정도는 알았다고 해야 할까. 충성심은 있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세속에서는 잡도둑이었을망정, 사기꾼일 뿐이었을망정 그들의 우정 또한 진실했다.

"피치. 네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나 때문이야. 나를 용서한다 말해줘."

드라보트는 위기에 처한 사실을 알았을 때 피치에게 용서를 구한다. 피치 또한 아무런 원망 없이 그를 용서해주었고 초주검이 되었으면서도 그 먼 길, 친구의 머리를 끌어안고 돌아온 것이다.

2019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세계 지도와 국제 정세는 숨 가쁘게 바뀌고 있는데 언제쯤이면 우물 안 개구리들의 이전투구를 면하게 될까, 깨어 있는 국민들의 시름은 깊다. 그러나 좁은 우물일수록 자정과 혁신이 어려운 반면, 외부의 힘이 가해질 때 환경은 급변하게 된다. 위정자들이 아무리 반미반일, 친중친북 정책을 고집한다 해도 한국은 지정학 상 세계정세에서 외면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고도 감사한 일이다. 따라서 반 대한민국 세력이 아무리 이 나라를 무너뜨리려 애를 써도 포스트 대한민국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순간은 머지않았다. 그때까지 우리 대한민국 수호세력 국민들께서는 조금만 더 힘을 내시길 바란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한때 왕이 되고 싶었던 자들, 기어이 왕이 되었던 자들, 지금도 여전히 왕을 꿈꾸는 자들은 포스트 대한민국의 문이 열리는 순간,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될까. 지금도 한쪽에서는 왕이 되어 보겠다, 왕으로 모시겠다 자기들끼리 파티를 성대하게 열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부고발자들이 나오며 사분오열, 물고 뜯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드라보트와 같은 장엄한 최후, 피치와 같은 비장한 우정을 통한 최후의 인간성 승화를 기대하는 것조차 너무 큰 바람이지 싶다.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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