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시도한 한국의 '사회적 대화' 실패는 예견된 결과
노동계가 대기업을 적폐세력으로 보는 현 정권에서 대화 되겠나
현재 경영계는 정부나 노동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약한 존재
현 정부의 '사회적 대화 복원'은 정부-노동계의 권력 나누기 장 가능성 커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양대 노총 위원장과 청와대에서 만나 이른바 ‘사회적 대화’의 복원을 요청하였다. 문재인표 한국형 사회적 대화가 어떤 모습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후보시절 공약이나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의 최근 기자회견을 살펴보면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 기존의 노사정위원회와 대비하자면 우선 참여의 확대가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비조직노동자까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 취약계층을 포함시키고 대통령도 참여한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의제 및 기구의 확대도 예상된다. 노사간 전통적 의제 뿐 아니라 원ㆍ하청 등 기업간 거래 및 기업지배구조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문성현 위원장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대화기구의 위원 구성이나 의제, 운영방식, 심지어 명칭까지 개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해체하는 수준으로 까지 변화를 주겠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난 20년동안 사회적 대화를 시도해 왔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리고 그것은 예견된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압축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토양에 시대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0년간 노사정위원회에 공익위원으로서 또는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직접 참여해 본 경험이 있다. 결과는 이룬 것도 없이 시간만 많이 썼다는 자괴감이었다. 무엇보다 대화란 당사자가 필요성과 효용을 느껴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노사정 모두 간절함이 없었다. 정부 주도로 대화체를 만드니 참여하겠다는 것 외에는 없다. 사회적 협약의 거의 유일무이한 성공사례로 꼽히는 1982년 네델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을 살펴보면 당시의 경제위기에 당면하여 경영자협회 회장과 노총위원장이 단 둘이 자발적으로 만나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 기초가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절박함과 자발성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러니 적극적이지 못하고 정부의 눈치만 살핀다. 정부 또한 말만 노사 당사자 우선이지 실제로는 정부가 원하는대로 가도록 조종하며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이런 저런 이유로 대화체를 무력화시킨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이유는 서로 상대방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악’이라고 비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현 정권에서는 대기업을 ‘거악’이라고 하면서 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회만 되면 없애버려야 할 대상으로 보는데 대화가 될 수 없다. 예컨대 내가 참여한 위원회에서는 파견 등 민간고용 서비스산업의 활성화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것을 다 인정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50미터쯤 벌어져 있던 간격을 수개월에 걸친 대화 끝에 한 5미터쯤까지 좁혔다. 그래서 결의 초안을 만들어 노사에게 회람시켰다. 본부와 상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후 돌아와서는 다시 50미터쯤 되돌려진 주장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사공익 각자의 입장을 담은 보고서조차 공동으로 채택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은 그대로 놔둔 채 정부는 이른바 ‘한국형 사회적 대화’를 복원시키겠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실상은 여전히 당사자가 아닌 정부 주도의 협의체이다. 노동계는 여전히 발 한쪽만 문 안에 들여놓고 다른 쪽은 문 밖에 놔둔 채 자신들에게 판이 유리해질 때까지 약속을 맺지 않는다. 현재의 경영계는 이미 정부나 노동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여기에 비정규직, 소상공인 등 다양한 계층을 참여시키겠다고 하는데 이들이 과연 어떤 대표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은 집행 권력을 가진 정부와 목소리 권력을 가진 노동계간의 권력 나누기 장이 될 것이다. 즉 노정협의체가 여러 단체를 들러리 세운 채 사회적 대화라는 미명으로 화장을 고치고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민노총은 노정협의회의 공식화를 내걸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의회민주주의가 무력화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적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존중 사회로 가는 기본계획을 수립 실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근로자가 아니어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 보장, 경찰공무원 등의 노조활동 허용, 노동이사제 도입 등 시장경제 원칙에 반하며 관련법 개정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다수 있다. 절대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부와 노동계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의견이 수렴되었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국회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법 통과가 어려워도 촛불시위가 탄핵국회를 압박했듯이 분위기를 만들어 가면 유약한 야당이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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