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코프 일기로 본 북한역사 #12, "박헌영에게 122만 루블 제공, '특별한 곳에 사용'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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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1.16 14:44:56
  • 최종수정 2019.01.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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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넨꼬를 접견하다. 그의 구좌에 있는 돈 122만 루블에 대해 논의하다. 그 돈을 박헌영에게 전달하고 구좌를 정리하라고 명령하다. 박헌영에게 지출된 돈의 총계를 확인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하다. 특별히 필요한 곳에 122만 루블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전문을 박헌영에게 보내라고 지시하다."

[편집자 주] 티렌티 포미치 스티코프(Terenti Fomitch Stykov), 1907년 2월 28일부터 1964년 10월 25일까지 살았던 소련의 군인. 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스티코프가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남긴 일기를 발굴해 연구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스티코프의 일기를 통해 드러난 소련의 '북한 김일성 세우기 프로젝트'를 2004년 12월 30일 책으로 만들어 중요한 한국근현대사 자료를 보충했다. 전 교수의 '스티코프 일기' 연구는 미국과 일본에 집중됐던 해외소재 한국사 자료가 서유럽과 동유럽, 러시아 지역까지 확대됐다는 평가를 받는 연구 업적이다. 소련군 정치장교였던 스티코프가 남긴 일기는 단순히 개인사를 넘어 소련의 한반도 정책과 1945년 해방 직후 남북한의 정치, 경제 상황, 한국전쟁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적 원천이 되고 있다. 특히 스티코프를 정점으로 하는 북한 주둔 소련군사령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사태전개에도 깊게 개입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스티코프의 일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소련공산당이 38선 이북 지역에 소련을 추종하는 공산 위성정권을 세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적나라하게 개입하여 괴뢰정부를 세웠는지를 입증하는 내용증명이기 때문이다. 스티코프는 일기 형식의 비망록을 통해 소련공산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정해준 사실, 북한 헌법을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이 직접 만들어준 사실, 심지어 북한의 역사를 기술할 때 지침이 되도록 역사책의 목차까지 짜 준 사실, 김일성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북한정권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내각의 장차관은 물론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회의 대의원을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의 재가를 얻어 정한 사실 등을 적어놓았다. 따라서 이 자료를 독파하면 북한이 얼마나 소련을 추종하는 괴뢰집단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내용증명이다.

절판이 되어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스티코프 일기'를 펜앤드마이크(PenN)는 전 교수의 해제부터 책 그대로를 온라인 공간으로 옮긴다. 다만 책의 제목이 '쉬띄꼬프의 일기'로 되어 있는 것을 요즘 사용하는 용어로 바꾸어 '스티코프 일기'로 바꾸었다. 게재 순서는 전 교수의 해제를 시작으로 스티코프의 일기를 1946년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를 제1부, 1946년 12월 2일부터 1947년 2월 4일까지를 제2부, 1947년 7월 7일부터 10월 4일까지를 제3부, 1948년 7월 26일부터 10월 2일까지를 제4부로 편집하고 있는 책의 흐름을 따를 예정이다. 책 후반부에 별도로 첨부돼 있는 1946년 9월 28일 여운형의 북조선 방문에 대한 스티코프의 보고나 소련 군인으로 1945년 해방 후 평양 소련군정에서 소장 계급으로 민정 사령관을 지냈던 안드레이 알렉세예비치 로마넨코(Andrei Alekseevich Romanenko)와 여운형의 대화 기록도 순서에 따라 게재할 예정이다. 

쉬띄꼬프 일기 2부
(1946. 12. 2~1947. 2. 4)

[1946년 12월 2일부터 11일까지] 

 

1946년 12월 2일

로마넨꼬. 남조선로동당 대회 총과 보고를 하다.

총 585명이 참가하다.

공산당 395명
인민당 140명
신민당 50명
노동자 220명
농민 155명
사무원 210명
농촌단체 350명 

임시집행부 14명이 선출되고 의장에 허헌이 선출되다.

구재수(신민당)가 국내외 정치정세에 대해 보고하고, 이기석(인민당)이 합당경과에 대해 보고하다. 

대회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채택하다.

1. 당 강령을 가결한다.
2. 당 규약을 가결한다.

대회는 당 중앙위원회 조직위원회와 검사위원회를 다음과 같이 선거하다.
1. 허헌, 2. 이승엽(공산당), 3. 구재수(신민당), 4. 이기석(인민당), 5. 김영재(공산당) 

대회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조선 문제에 대한 결정을 이행할 미소공동위원회 사업의 신속한 재개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미·소 양군 사령부와 미·소 양국 정부에 보내기로 결정하다. 

대회는 또한 당 기관지 '로력인민'을 발행하기로 결정하다.
대회는 테러분자들의 공격을 염려하여 예정된 시간 보다 5시간 일찍 폐회하다.
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의 회의장을 나서는 순간 2개의 수류탄이 폭발, 신문기자 2명이 부상을 당했다. 

도당위원회 지도자 의회가 소집되어 사회로동당에 대한 남조선로동당의 방침과 로동당의 당면과업에 대한 박헌영의 서한을 심의한다.
대회는 이승엽을 당 기관지 편집장으로 승인하다.
대회는 허헌을 남조선로동당 위원장으로 선출하다.

당 지도부는 다음과 같이 결정되다.
위원장 허헌 부위원장 박헌영(공산당) 이기석(인민당)

정치위원회

1. 허헌-신민당
2. 박헌영-공산당
3. 이기석-인민당
4. 구재수-신민당
5. 김영재-인민당
6. 이승엽-공산당
7. 김상룡-공산당

상임위원회를 13명으로 구성하다. 공산당 5명, 신민당 4명, 인민당 4명.
중앙위원회 성원을 45명으로 확정하다. 공산당 29명, 인민당 9명, 신민당 7명

중앙위원회 성원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하도록 지시하다.
공산당 20~23명 
인민당 15명 
신민당 7-10명

대회에서 각 정당은 다음과 같은 당원수를 대표하다.
공산당 670,444명 
인민당 23,700명
신민당 7,488명

지시를 내리다.
1. 성공적으로, 그러나 어렵게 성취된 합당사업에 대해 박헌영에게 축하할 것.
2. 다른 정당들이 파악할 수 없도록 당 중앙위원회를 구성한다. 
3. 박헌영은 향후 행동방침에 대한 지령을 허헌에게 하달한다.
4. 박헌영이 수행할 마르크스·레닌주의이론의 선전사업에 대한 방침을 숙고한다.
5. 김일성과 박헌영은 업무상 긴밀한 연계를 확보한다. 
6. 급사를 통해 당 대회 자료 모두를 보내도록 지시하다.

전연방공산당 중앙위원회로 보낸 남조선 3당 합당 사업 총결 보고서를 준비하도록 끄라프초프(끄라프초프 이반 바실리예비치 중과, 특별임무 수행, 연해주군관구 소속.)에게 지시를 내리다. 

주치의 샤삐로는 1946년 12월 3일부터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하다. 병세가 회복되고 있다. 

9편집자 주해방 직후 남한 지역에는 박헌영 주도의 조선공산당 외에도 연안파의 지도를 받는 백남훈의 조선신민당 남한지부,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당 및 군소그룹의 좌익세력들이 분포되어 있었다. 이 40여 개의 좌익단체들은 후에 우익진영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이라는 좌파 통일전선체를 형성했다. 소련의 지시에 의해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이 결집하여 1946년 8월, 북조선노동당(북로당)을 결성하자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이에 대응하여 박헌영 주도로 기존 3당 세력을 흡수,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을 결성했다.

이때의 남로당 결성은 박헌영과 남한의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독자적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달 전인 1946년 10월 23일 열린 스티코프, 김일성, 박헌영 3자 회담에서 남로당 결성이 공식 결정되어 실행에 옮긴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날 회담에서는 위원장에 허헌(신민당), 부위원장에 박헌영(공산당)·이기석(인민당)·김삼룡(공산당), 그리고 7명의 성원으로 정치위원회를 구성하며, 13개의 국을 설치하고, 45명의 성원(공산당 20명, 인민당 8명, 신민당 7명, 사회단체 10명)으로 중앙위원회를 조직한다는 내용도 결정됐다. 1946년 12월 2일 스티코프는 로마넨꼬를 통해 남로당 대회에 대한 활동 내용을 보고 받은 것이다.)

1946년 12월 3일

모스크바로 보낸 남조선 3당 합당 사업 총결과 남조선로동당 결성대회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교정하다. 

의사 샤삐로가 왕진 오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닐거나 아파트 내를 거니는 것을 허락하다.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 

 

1946년 12월 4일 

의사 샤삐로가 왕진 오다.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 샤삐로는 신병 치료를 위해 보로비흐로 요양을 떠날 것을 고집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를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 

 

1946년 12월 5일

의사 샤삐로 왕진 오다. 건강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 샤삐로는 하루에 두 번 거리를 산책하도록 권하다. 그는 여전히 병 치료를 위해 요양을 떠날 것을 고집하고 있다. 

 

1946년 12월 6일 

로마넨꼬에게 전화하다.

철도운수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 겨울용 연탄을 제조할 타르가 없다. 3천 톤이 필요하다. 조선인들로 조직된 군부대의 보급상태가 열악하다. 피복과 군화가 지급되지 않고 있다. 탈주병이 생기고 있다. 소련군대 보급품 중에서 5,000쪽의 군화와 모포를 지급하다. 병사들의 위생상태가 형편없다. 100 퍼센트 이가 득실거린다. 일본군대가 사용하던 2,000벌의 피복이 있다. 이것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승만은 정보에 의하면 미국으로 출국한 것이 분명하다. 
박헌영에 대한 재정지원을 신속히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문일(문일은 88특별여단에서 근무하던 소련군 특무대좌였는데 김일성 그룹과 함께 해방 후 북조선에 들어와 김일성의 비서로 일했다.)은 박헌영에게 39만 엔이 지출되었다고 보고하다. 
더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시를 내리다.
1.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 외무국의 설치를 서두를 것.
2.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권고할 것.
기업소 지배인들을 위한 강습소의 현황에 대해 물어보다. 사업 진행 상황이 나쁘다.
로동당원 교육용 교재 편찬 사업도 형편없이 진행되고 있다. 
박헌영과 김일성이 가깝게 지낼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하다.

후르소프(후르소프 이반 세르게예비치 소장, 소련 제25군 군사평의회 위원. 후방국장)가 보고하다. 철도운수 상황이 어렵다. 석탄이 없다. 기관수들의 사보타지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석탄이 없다는 구실로 기관차 6량의 불을 꺼버렸다. 원산에서는 도 인민위원회 관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 소련군대 정치 부서에서 근무하던 교관의 자살 사건이 있었다. 그는 형편없이 타락한 인간이었다. 조선인 여자들과 동거했고 중국인들을 살해하기도 했다. 

조또프가 오다. 일련의 전문들에 서명하다.
끄라프초프가 오다. 로마넨꼬로부터 남조선로동당 대회 관계 문서들이 도착하다. 자치기관 선거와 관련한 남조선로동당의 정책대안을 강구하도록 지시하다.

 

1946년 12월 7일 

의사 샤삐로가 왕진 오다. 건강 상태는 이전과 같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다.

레베제프가 발병했다고 보고 받다. 고열이 있는데 , 말라리아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로마넨꼬를 접견하다. 그의 구좌에 있는 돈 122만 루블에 대해 논의하다. 그 돈을 박헌영에게 전달하고 구좌를 정리하라고 명령하다. 박헌영에게 지출된 돈의 총계를 확인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하다. 특별히 필요한 곳에 122만 루블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전문을 박헌영에게 보내라고 지시하다. 

지시를 내리다. 미국인들의 정책에 대해, 8시간노동제에 대해, 지방자치기관의 선거에 대해 논설들을 준비하도록 지시하다. 이것은 북조선에서 실시된 것과 같은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남조선 근로자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양보전술이다. 

혼도슈꼬가 전화하다. 조선과 요동반도의 정세에 대해 보고하다. 그에게 모로조프와 쟈블리꼬프 장군이 소지한 예금통장의 현금잔고를 조사하라고 명령하다. 

전연방공산당(볼) 중앙위원회 수슬로프 동지가 전화하다. 북조선로동당 당증 발급을 위해 필요한 용지에 대해 논의하다. 양질의, 그러나 우리 것과는 비슷하지 않은, 용지를 요청하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선거와 남조선 좌익 3당의 남조선로동당으로의 합당 결과에 대한 보고를 그에게 올리기로 약속하다.

로마넨꼬에게 보낼 전보를 준비하라고 끄라프초프에게 명하다. 미국인들의 정책, 8시간노동제, 지방자치기관 선거 관련 논설들의 출판에 대해 지시하다.

 

1946년 12월 8일

의사 샤피로가 왕진 오다. 레베제프의 병세에 대해 알려주다. 오진을 하다. 감기나 말라리아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했는데, 재검 결과 트롬볼과 관련된 파상풍에 걸린 것으로 밝혀지다. 나의 상태는 이전과 같다. 그는 치료차 휴양을 떠날 것을 완강히 요구하고 있다. 

학교와 집에서의 행실에 대해 빅또르(쉬띄꼬프의 장남 빅또르 쩨렌찌예비치 쉬띄꼬프를 말한다)와 대화하다. 어떻게 처신하기로 결정했는지 말해줄 것을 그에게 물어보다. 빅또르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본 후 1946년 12월 9일쯤 대답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1946년 12월 9일 

의사 샤피로가 왕진 오다. 레베제프의 상태에 대해 알려주다. 병원으로 호송, 입원시켰으며 페니실린 피하주사를 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과는 긍정적이다. 나를 검진하다. 상태는 호전되고 있다. 12월 12일 산보를 위한 외출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하다. 

끄라프초프를 호출하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산하에 조선역사편찬위원회를 창설하는 문제, 남조선 관련 사건들과 정책들을 다룬 논설들의 출판, 입법기관과 지방자치기관 관련 자료들의 수집 등에 대해 로마넨꼬 앞으로 보낼 전문들에 서명하다. 

모스크바에서 쁘로닌이 전화하다. 
1. 이바노프에게 더 자주 전화하라고 전해줄 것을 요청하다.
2. 선거(소련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말한다.) 관련 암호 명령서들을 발송했다고 한다.
3. 우리 군관구에 3개의 새로운 선거구가(조선 1, 요동반도 2) 설치되었다고 한다. 
4. 관구(선거)위원회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1946년 12월 20일까지, 분구(선거)위원회의 구성원에 관해서는 1946년 12월 30일까지 보고하는 것이 필요하며, 5일 전까지에 알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5. 대의원 입후보자들은 우리 측에서 내세울 것이다. 다른 측이 입후보자들을 내는 것을 용인치 않겠다. 

끄루삐닌과 대화하다. 당증 발급용 용지에 대한 문의하다. 도와주겠다고 약속하다. 삐로프의 일은 괜찮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의 컨디션은 좋지 않다고 한다. 생일에 축하 전문을 보내다. 

빅또르와 학업에 대해, 학교와 집에서의 행동거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행동을 모범적으로 하고, 전 과목의 학습교재를 열심히 탐독하고, 모범적으로 학업생활에 임하며, 좋은 점수를 받겠다고 약속하다. 노어(러시아어) 선생에게 그를 도와줄 것을 요청하다. 나는 그에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학교에서 그가 배우는 각 과목의 의미와 향후 그것들이 어떻게 활용되는가에 대해 설명해 주다. 그에게 학습한 자료들의 저자와 간단한 내용을 기록할 공책을 주다. 

 

1946년 12월 10일

샤피로가 왕진 오다. 검진하다. 상태는 예전과 같다. 심장박동 상태는 호전되다.

북조선 공업에 필요한 전문가들 파견 문제로 모스크바에 보내는 문서를 교정보다, 82명의 기술자와 4명의 사무원의 파견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쓰다. 

후르소프가 전화하다. 서울의 라디오방송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고 보고하다. 여운형이 사회로동당의 지도적 지위에서 물러났다. 그는 "좌우합작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또한 "나는 정치적으로 준비가 덜된 사람이다. 때문에 나에 대한 좌익단체들의 비판은 전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2월 6일 민주당이 분열되었다는 라디오방송 보도가 있었다. 일부 중앙위원과 83명의 평당원들의 당에서 탈퇴했다. 그들은 중앙위원회의 정책과 그 지도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성명했다. 그들은 성명에서 당 지도부는 사적인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지도부 내에서 자리다툼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음과 같은 보도가 있었다. 기자들이 좌익 지도자들과 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미소공동위원회에 대해 질문했다. 좌익 지도자들은 조선 문제의 긍정적인 해결은 모스크바 결정을 정확하게 이행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성명했다. 

기자들은 남조선 주둔 미군사령관 서리에게 일련의 질문들을 제기했다. 첫째로 미소공동위원회 사업의 재개에 대해 질문했다. 미군사령관 서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우리는 소련군 장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미군정은 항상 미소공동위원회 사업이 재개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소련군사령부는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조선의 통일문제에 관해 미국 정부는 하지 사령관이 이 문제에 답변한 것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둘째로 사회 여론의 형성을 위해 신문을 발행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질문했다. 셋째로 한국군의 선서에 대해 질문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에 대해 미군사령관 서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라디오 도청은 <보도>를 통해 신속히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통신장교들을 불러 왜 미군정에서 라디오 도청을 문제 삼는가 질문하다. 특정 신문은 발행을 금지시켰다. 다른 신문들을 이용하기 바란다. 선서는 검토해 보겠다. 

샵쉰이 전화다. 나는 그에게 강진이 조선에 어떻게 왔으며 그가 누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지 묻다. 대답을 회피했으나 그가 강진을 일에 끌어들였고, 그를 다시 알렉세에프에게 인계했다고 한다. 이렇게 그를 활용한 것이다. 강진은 12년 전에 코민테른의 지시로 조선에 들어왔다. 

병참관 표도로프를 호출하다. 그런데 그가 도책했을 때 원수(메레츠꼬프를 가리킨다.)도 도착하여 사건이 발생했다. 원수는 표도로프를 엄하게 질책했다. 끄라프초프에게 신속히 전문을 찾아내어 나에게 가져오라고 명령하다. 

 

1946년 12월 11일

메레츠꼬프가 다녀가다.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 대화하다. 

자또프가 다녀가다. 미소공동위원회 서울 회의와 미소양군사령부대표회의와 관련된 일련의 계산서들에 서명하다. 모스크바와 서울 출장시 내가 개인적인 용도로 지출한 3,539 루블 90 꼬뻬이까를 그에게 돌려주다. 이제 그와는 정산이 완전히 끝나다. 

레베제프의 부인과 그의 건강상태에 대해 대화하다. 병세가 호전되어 완치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로마넨꼬가 전화하다. 나의 전보를 받았고, 지시 이행에 착수했다고 보고하다. 다음과 같은 논문들을 배포하고 있다.

1. [조선의 민주발전에서] 북조선의 지도적 역할과 북조선에서 실시된 개혁조치를 남조선에 반영하는 문제,

2. 8시간노동제에 대해, 특히 북조선과 비교하여,

3. 입법기관에 대해,

4. 한국민주당의 붕괴에 대해.

그에게 박헌영이 다녀갔는데 박헌영은 남조선의 자치기관선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어떠한 노선을 취해야 하는지 문의했다고 한다. 

미하일로프에게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로의 산업기관 이관 결과 보고를 준비하라고 지시하다.   

[#1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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