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소련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
[홍찬식 칼럼] 소련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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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과 ‘반공주의’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반공 보수'에 추가메뉴 붙어 우파 이미지 변색
유럽에는 '반공 좌파'도 존재하나 국내에는 공산주의 야만적 사례 존재
국내 좌파들, '반공 보수'에 대해 험담...우파에겐 없는 죄 씌우면서 북한엔 착해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요즘 대학생들은 소련을 모릅니다.” 명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전하는 말이다. 강의실에서 “소련이라는 나라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당혹스러웠지만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소련이 붕괴한 것이 1991년의 일이니, 요즘 대학생들은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다. 하지만 소련을 모른다면 한반도의 분단과 6.25전쟁, 냉전 체제 속의 남북한 대치 등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 험난한 길목마다 소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우파들이 겪고 있는 곤경은 따지고 보면 이런 세대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파를 공격하는 수단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반공 보수’라는 딱지 붙이기다. 여기에 “색깔론을 펴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반공이념에 빠져 있다”는 등의 추가 메뉴가 올라가고, 급기야 ‘극우’ ‘수구’라는 모욕적인 수사까지 동원되면 우파의 이미지는 금세 칙칙하고 어두운 것으로 변색되고 만다.

'반공 보수' 프레임의 중대한 함정

이런 ‘반공 보수’ 프레임은 심지어 우파 내부에서도 작동한다. 자유한국당의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7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당 안에 ‘반공 보수’가 많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들은 북한이 우리를 속일 것이라는 불신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서 “동북아 질서가 변하는 만큼 우리의 사고 체계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좌파의 논리대로 ‘반공 보수’를 나쁜 것으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꼴이다. 우파의 자기 쇄신을 거론할 때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반공 보수’에서 벗어나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반공 보수’라는 말에는 중대한 함정이 존재한다. ‘반공’과 ‘반공주의’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 점이다. ‘반공’은 공산주의의 야만과 폭력성에 맞서 나라와 체제를 지키려는 현실적인 대응이었던 반면, ‘반공주의’는 말 그대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정치 이념이다. ‘반공’은 공산화된 아시아 대륙의 한 귀퉁이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우파들은 체제를 굳건히 지켜온 ‘반공 보수’라는 말에 오히려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반공주의’가 과거에 정권 유지를 위해 악용됐던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국내 좌파들은 엄밀히 말하면 ‘반공주의’에 반대해온 반(反)반공주의자들이다. 이들의 결정적 한계는 우리 쪽 반공주의의 잘못에는 끝없이 분노하면서도 공산주의의 폭력성에는 눈을 감는 것이다. 적(敵)의 적은 동지이기 때문인가.

유럽의 '반공좌파'와 고려인 대량 학살

유럽에는 ‘반공좌파’가 있다. ‘친북좌파’가 주류인 한국에선 나오기 어려운 조합이지만 좌파이면서도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각종 반인류적 범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형성된 과정은 이렇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 등에는 좌파가 득세했다. 소련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한 프랑스 젊은이가 소련에 대해 쓴 글을 보자. ‘나는 낙원을 믿었다. 금발의 집단농장 여성들이 있는 곳, 아이들과 탁아소가 있는 세계, 맑은 눈을 가진 건장한 트랙터 기사들이 일하는 곳. 공산주의가 나를 두 팔로 안았을 때 나는 장밋빛 인생을 보았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과 소련이 충돌할 경우 누구 편을 들겠느냐”는 여론조사 질문에, 응답자의 52%가 소련 편을 들겠다고 답했다. 미국 편은 13%에 불과했다. 전후 유럽을 휩쓴 소련 열풍이었다.

하지만 1950년 소련의 지원으로 6.25전쟁이 일어나자 유럽의 소련에 대한 시선은 차갑게 냉각되기 시작했다. 1956년 헝가리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소련은 탱크 1500대, 군대 15만 명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본격적으로 소련과 지도자 스탈린에 반대하는 운동에 나섰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진보적 폭력’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이들은 각종 자료와 증언을 끈질기게 수집하고 추적해 1997년 ‘공산주의 흑서(黑書)’를 펴낸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 처형 숙청되거나 희생된 사람들이 소련에 2000만 명, 중국에 6500만 명, 북한에 200만 명에 이른다고 고발했다. 다른 공산국가까지 포함하면 모두 1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인류 역사에서 단기간에 이뤄진 최대 규모의 학살로 기록된다.

공산주의의 야만적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찾기 어렵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의 외조부는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이다. 소련의 스탈린은 1937년 연해주에 있는 한인 18만 명을 멀리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들은 듣도 보도 못한 낯선 땅에 어느 날 갑자기 버려졌다. 그 속에 포함됐던 김한 선생의 행방은 알 수 없었으나 소련의 기밀자료를 통해 1938년 한인 2500명과 함께 처형됐음이 얼마 전 드러났다.

죄목은 일본의 간첩 노릇을 했다는 것이었다. 강제 이주에 반발하는 한인 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일본 밀정으로 몰아 자행한 대량 학살이었다.

국내 좌파의 편향성부터 바로 잡아야

소련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반공 보수’에 대한 국내 좌파들의 험담은 더 쉽게 먹혀들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냉전 시대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지만 국내 좌파들의 편향성이 그대로인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다.

‘적폐 청산’을 구실로 한국의 우파들에게 ‘없는 죄’까지 씌우면서도 북한에는 그렇게 착할 수 없다. 이들에겐 한국의 우파보다 북한이, 미국보다는 중국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 국내 좌파들은 유럽 좌파를 이상적 모델로 떠받든다. 그러나 유럽의 지식인들이 분노했던 공산주의 야만이 반복되는 북한에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말하지만 평화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실증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번번이 말을 뒤집는 북한에 속지 말자고, 북한 핵에는 단호하자고 외치는 ‘반공 보수’가 왜 잘못인가.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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