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규제 강화-中 판매감소로 혼돈 불가피
美·日·유럽 기업, 생사 건 구조조정...한국, 강성노조 압박
국내 자동차 생산량 '마지노선'인 400만대로 추락

 

세계 자동차 업계가 카마겟돈(car-mageddon)에 대비해 선제적 구조조정과 신사업 개척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카마겟돈은 자동차(car)와 아마겟돈(armageddon·대혼돈)을 결합한 단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현지시간) "자동차 업계에 '카마겟돈(car-mageddon)' 공포가 커지고 있다"며 세계 자동차 업계의 긴박한 움직임을 보도했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미국 포드자동차는 유럽 공장 15곳에서 수천 명을 감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재규어랜드로버도 직원 4500명을 줄이기로 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 연말 북미사업장에서 인력 1만여명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선언했다. 닛산은 멕시코에서 1000명을 감원하고 폴크스바겐은 독일에서만 7000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강성 노조의 압박으로 구조조정에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 업계와는 대조적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지난 1일 임원을 55명에서 23명으로 줄였다. 상무·부장·차장 등을 '간부'라는 직급으로 통폐합했다. 도요타의 영업이익은 역대 최고치로 예상되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에 대비,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도요다 아키오 CEO는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다. 100년에 한 번 있을 만한 변혁기이다"라며 '위기 경영'을 선언했다.

세계 자동차 업계가 이처럼 비상에 걸린 이유는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중국을 포함한 세계시장의 자동차 판매가 줄어든 데다 전자·IT 기업이 잇따라 자동차 시장에 뛰어드는 등 '삼각파도'가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재규어랜드로버 CEO 랠프 스페스는 "심각한 위협이 무더기로 몰려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유럽의회는 2030년까지 자동차의 CO₂(이산화탄소) 배출을 40% 줄이도록 지침을 정했다. 폴크스바겐·BMW 등은 "비현실적 목표"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큰 흐름은 바꿀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시장 수요도 낙관할 수 없다. 중국승용차연석회의(CPCA)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승용차 판매량이 2272만대에 그쳐 전년보다 6% 감소했다. 자동차 판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연간 승용차 판매량이 감소한 건 1990년 이후 처음이다. 캐나다 투자은행 RBC 캐피털 마케츠는 "승용차와 픽업, 소형 트럭 등 전 세계 경량 차량 생산량이 지난해 3분기 2.9% 줄어든 데 이어 4분기에도 4%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두 분기 연속 감소한 건 글로벌 금융 위기가 강타한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자동차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전통적 자동차 회사의 앞날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독일 프라운호퍼 노동경제연구소는 2030년까지 독일에서만 엔진과 변속기 생산과 관련된 기술 인력의 3분의 1(7만5000여명)이 실직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변신 없이는 죽는다는 각오로 뛰고 있다. 폴크스바겐 최고전략책임자인 미하엘 요스트는 최근 "2040년쯤이면 더는 내연기관차를 판매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제대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402만8724대로 3년 연속 줄어들었다. 연간 생산량 400만 대는 국내 자동차산업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통한다. 생산량이 400만 대 밑으로 떨어지면 완성차 공장 가동률이 하락해 일감이 줄어든 부품업체들이 줄도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0대 자동차 생산국 중 생산량이 3년 연속 줄어든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한국 자동차 산업이 살아남으려면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고 파격적 혁신을 감행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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