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에 따라서는 한국만 '북핵 인질' 될 위험성도 적지 않아 주목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北中정상, 北 ICBM 해체 및 외부 이동 방안 논의했을 가능성"
文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서 '北 ICBM' 폐기 언급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 "달성 어려운 '北비핵화' 대신 'ICBM 제거'로 對北정책 수정?"
전문가들 "韓日에 대한 미국의 방어협정 깨뜨릴 우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폭스 뉴스 화면 캡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폭스 뉴스 화면 캡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2차 미북(美北)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밝히면서 북한과 대화하는 궁극적 목적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미국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ICBM과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폐기하면 미국의 상응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한 지 하루만에 나온 발언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날 ‘미국인의 안전’을 강조한 것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막는 것이 미국 행정부의 우선순위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대화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다”며 “미국인의 안전이 궁극적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인들에 대한 위험을 어떻게 하면 계속 줄여나갈 것인지에 대한 많은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 미국의 성공으로 남아있는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 등 북한의 위협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며 “완전하고 최종적인 비핵화(full and final denuclaerization)를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지난 9일 워싱턴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최근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에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며 달성하기 어려운 비핵화 목표 대신 ICBM 제거 쪽으로 대북 정책이 수정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홍콩의 유력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도 이날 김정은과 시진핑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보유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해체를 위해 이를 북한 밖으로 옮기는 방안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중국 정부 내부 소식에 밝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도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이 우선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보다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ICBM 폐기를 제시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친서 교환을 통해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어려움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라도 김정은이 선제적인 비핵화 조치로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은 지난 8일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핵생산과 확산을 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신년사가 대북 제재 해제로 이어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대신 “좋은 소식은 북한과 대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들은 공개된 자리로 나왔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세상의 빛으로 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북한과의 협상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당신과 오늘 아침에 공유하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미국은 김정은을 비롯해 다른 북한의 대화 상대자들과 이야기할 때 (비핵화에 대해) 명백히 했다”며 “올해 이 부분에서 큰 진전을 이루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희망에는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가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야 미국의 제재 완화가 이뤄지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핵심명제에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국제 전문가들에 의해 검증된 ‘완전히 비핵화된 북한’”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이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폼페이오 장관의 이날 발언에 대해 ‘미국의 단기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지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수습에 나섰다. 비핵화는 동결, 감축, 폐기 단계로 차례로 거칠 수밖에 없는 만큼 즉각적인 위협인 북한의 미사일 활동 중단을 먼저 요구하는 것뿐이라는 설명이었다. 또한 만약 미국이 북한과 ICBM 제거 수준에서 비핵화를 합의할 경우 한국과 일본에 대한 방어 공약을 배신하는 것이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11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최근 폼페이오 장관이 잇따라 미국 국민의 안전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위협 문제만 해결되면 미국이 북한과 합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그러나 미국이 이같이 행동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어 협정을 깨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야기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대신 ‘FFVD’라는 불분명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협상 목표에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과 핵 협상 경험이 있는 전직 공직자들은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에 대해 과도기적 혹은 단기 목표를 설명하는 차원이지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VOA에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지만 이는 단계적으로 달성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라며 “비핵화는 동결, 감축, 폐기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데 미국은 우선 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 제거를 우선 순위에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만약 북한 ICBM 제거 대가로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면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위협이 되는 북한 핵무기 제거를 달성하기 위한 협상력을 잃게 된다”며 “미국이 ICBM 위협 제거에만 초점을 맞춘 채 북한과 합의를 할지도 모른다는 한국과 일본의 두려움을 여기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는 VOA는 “미북협상의 진전을 보려면 양측 모두가 선제조치를 내놔야 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먼저 탄도미사일 관련 조치를 취하고 미국이 반대급부로 일부 제재 완화를 내놓는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핵무기 폐기 조치가 먼저 시작되든, 탄도미사일 제거 절차가 먼저 이뤄지든 모든 절차가 북한 비핵화로 이어진다면 문제는 없다”고 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미국과 북한이 ICBM 제거 수준의 합의를 할 경우 국제안보를 무너뜨리고 한국, 일본과의 동맹을 훼손시킨다는 사실을 미국 행정부도 알고 있다”며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예상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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